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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Dec 10. 2023

내 커리어는 망한 걸까?

“아빠는 팀장이야?”

“아니”

“왜 아니야?”

“그러게”


아이와의 짧은 대화를 듣던 엄마가 말을 막아섰다. 남편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아내의 개입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게 왜 나는 팀장이 되지 못했을까.


팀장은 회사가 정해 놓은 직급이다. 회사마다 팀장이 있더라도 관리하는 사람의 규모나 범위에 큰 차이가 있다. 삼성과 같은 대규모 조직에서 팀장은 우리 회사로 치면 상무급이라 들었다. 연구소의 경우 팀장이 스무 명 내외의 인력을 관리한다. 반면 본사는 열 명도 안 되는 조직이 팀으로 활동한다. 내 동기들 중에는 이미 팀장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무관의 위치에서 오랜 시간 담당연구원으로 지내는 사람도 있다. 남아 있는 입사 동기들 중엔 팀장이 더 많고 일반 연구원은 더 적으니, 어쩌면 이 회사에서 내 커리어는 실패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불현듯 찾아들 때가 있다.


팀장이 된다는 건 기본적으로 그의 능력 - 그러니까 회사 일을 하는 데 있어 필요한 역량과 그로 인한 적당한 성과 - 이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자연스러운 결과물로서 승진을 하고 팀장이라는 완장을 차게 된다. 나는 역량과 성과 측면에서 부족한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해 반사적으로 아니오라고 답이 나오지만,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량과 성과를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 남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면, 그리고 그 조직 안에 ‘평가’라는 제도가 자리 잡고 있으면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역량, 성과에 대한 평가의 기준과 그에 대한 눈높이는 각자 다르다. 지금 남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내 기준일 뿐이다. 나를 평가하는 상사의 눈에 부족하다면, 그건 경쟁력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의 상사 기준에 그렇다는 것이다. 다른 상황과 조건이 주어지면 나의 경쟁력은 더 높아질 수 있다(반대로 끝없이 추락할 수도 있음은 명심한다).


그러므로 남들에게 그나마 인정받는 위치지만 조직의 중요 위치로 승진하지 못한 건 내가 이루어 놓은 결과물의 가치나 기여가 남들과 비교해서 부족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것이다. 예전엔 이런 부분에 대해 절대평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절대적 가치와 기준이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승진을 못했다는 이유로 20여 년의 커리어가 망했다고 생각되지 않아 참으로 다행스럽다. 다행이지만 아쉽기는 하다. 객관화 과정을 거쳐도 감정적 치유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팀장이 아니라서 다행인 것도 있다. 팀장이나 상무가 되면 외로운 자리에 홀로 있게 된다. 대인 관계의 서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리가 사람들 사이의 심리적 선을 그어 놓은 결과이다. 어제까진 같은 편에 있던 사람이 분명한데 발령이 나면 영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런 점에서 동료들과 부대끼고 사는 현재 위치는 덜 외롭고 아직 (내 생각엔) 내 편이 더 많다. 기분 나쁠 땐 동료들과 함께 팀장, 소장을 도마 위에 올려두고 이리저리 흉보기에 참여할 수 있다. 그것도 연차 쌓여서 하기엔 좀 부끄러운 것이지만 여하튼 팀장 대비 자유로워서 좋다.


무엇보다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 새로운 업무나 자리가 났을 때 간절히 원한다면 포지션 이동이 가능하다. 팀장이 되면 내려놓을 것이 많다. 그깟 완장쯤이야, 하고 생각할 수 있으나 막상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어떤 팀장은 ‘모든 팀장들이 다 팀장 하기를 꺼려한다, 내려놓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그러기를 바란다면 그럴 수 있는 것이 우리 회사의 방침이다. 하지만 그를 포함해 누구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팀장을 내려온 경우를 본 적 없다. 상실감을 생각하면 직위는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비해 내가 가진 위치란 고작 파트의 리더일 뿐이다. 파트 리더는 언제든 누구로든 바뀔 수 있다. 고집한다고, 갖고 있겠다고, 손에 쥐기를 바란다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에는 그마저도 욕심 냈는데 지나 보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 대신 조직 안에서 경력 변화를 위해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건 꽤 큰 장점이다.


책임감에 있어서도 자유롭다. 많은 업무에 함께 관여하고 당연히 일부 업무에선 책임의 자리에 있으나 의사결정자로서 최종 관문은 항상 팀장 이상에게 있다. 여러 부서의 눈치를 상대적으로 덜 살피기도 하고, 상황 논리로 애써 부서원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도 적다. 물론 위치 상 어쩔 수 없는 경우마저 못 본 체 하는 건 아니다.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가 크다.


이렇게 생각의 타래를 타고 가다 보니, 오히려 팀장아 되지 않고 담당 연구원으로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오랜 회사 생활 속에서 맘대로,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커리어 패스야 어쩌겠나. 현상과 결과는 같을지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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