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해서 어리바리 신입 시절을 정신없이 보내고 이제 회사 일 좀 눈에 익네 싶어지는, 그러나 여전히 뭘 좀 모르던 때에 덜컥 작은 파트의 리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회사 조직도에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어느 팀에나 있는 중간 관리자였다. 지금에 와서 보면 자기 앞가림조차 잘 못하던 때인데 다른 사람까지 관리하라는 일을 줬으니 무모한 건지, 나를 키우고 싶었던 건지, 아무 생각 없었던 건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그때 팀장님은 피부 미백/브라이트닝 연구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던 사람이다. 다행히(?) 내가 맡은 건 노화 연구라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다. 영역 싸움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기술의 전문가가 내 직속 상사면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파트가 커지면서 미백과 노화 연구 두 영역을 모두 맡게 되었다. 겁이 났다. 특히 피부 미백연구라고 하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회사 사람 누구나 내 팀장 이름을 떠올리는, 일종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미백 이론이나 기술에 대해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다 나온다는 인식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가끔 놀라기도 했다. 어떻게 툭 치면 다 나올까? 내겐 없는 능력이 부럽고 부담이었다. 괜한 주눅이 들었다. 회사 경험의 짧음은 차치하더라도 기술 자체뿐 아니라 연구의 전략 등에 대한 지식과 경험 모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회의 자리에서 가장 땀나는 경우는 어떤 것을 결정할 때 미백 연구와 관련해서 내 의견을 묻는 상황이었다. 특히 팀장과 함께 회의를 들어가는 때는 더 심했다. 회의를 하면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나, 이건 이렇게 결정해도 되는 건가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 질문을 하고, 내가 대답을 했는데 그것이 팀장의 생각과 다르다면 어쩌나,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오류가 있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있다. 정작 그분이 퇴사를 한 이후엔 오히려 더 겁이 났었다. 크게 의지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오류를 범했을 때 중심을 잡아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음의 위안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무방비 상태로 내 실력이 노출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걱정만큼 무슨 일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사소한 일은 있었을지 모르나 잊지 못할 그런 기억은 없으니 무난히 나는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했지 싶다. 막상 내 상사-전문가-의 자리를 대신하고 심지어 그가 회사를 떠나자마자 갑자기 내가 미백 기술의 전문가라고 불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람들은 마치 일부러 이전 사람을 잊기라도 하듯 언급조차 없었다. 내가 하는 말을 존중해 주고 나의 의견을 잘 받아 주었다. 점점 자신감을 갖고 일을 하게 된 건 당연하다.
전임자의 그늘이 지나치게 크면 후임 입장에선 걱정이 앞선다.
-내가 제대로 못하면 비교가 될까?
-혹시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건 아닐까?
-그와 다르게 일을 처리하면 혹시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해외 근무를 마치고 막 돌아와서 다시 시작할 때였다. 상당히 초반에 파트 운영에 대해 유관 부서의 누군가 나를 붙잡고 얘기를 했었다. ‘너의 전임자가 이러이러하게 업무를 도와줬으니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전임자와 비교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처음엔 그게 참 고맙게 느껴졌다. 동료로서 내 입지와 평판을 걱정해 주는 마음에 감동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요즘 표현으로 가스라이팅 당한 건 아닌가 싶다. 동료의 조언이 오히려 내 생각과 판단을 틀에 갇히게 만들었던 까닭이다. 비교당하기 싫은 마음에 한동안 판단의 기준을 내 생각보다 남에게 먼저 두었다. 무조건 전임자를 따라 해야 할 의무나 이유도 없고 반대로 할 필요도 없다. 작은 조직을 맡든 혼자서 일을 하든 궁극적으론 나만의 색깔을 가지면 된다.
결론은 이렇다. 이전의 책임자와 나는 다르다는 걸 굳이 드러내려고 있던 것을 없애지도 말고, 없던 일을 만들어 내지도 말자. 전임자를 뛰어넘는 전략 같은 건 없다. 그저 일이 ‘잘 되도록 하는’ 방법을 기준으로 고민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당신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