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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Oct 26. 2024

배운다는 마음, 그 한 끗 차이의 힘

언젠가부터 더 이상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으려 했었다. 그러나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조직에서 인정받으며 그럭저럭 잘 나간다 생각될 땐 열심히 봤다. 피가 되고 살이 될 조언이라 여겼다. 미래의 리더라면(?) 이 정도 책은 읽으며 준비해야지 하며 자신감 넘치던 시절이었다. 제목은 달라도 실상 비슷한 내용의 반복적인 것이 많지만 다 필요하고 중요하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읽은 것은 실천하려 애썼다. 글로 배운 리더십과 현장은 정말 다르다 해도 안 본 것보다는 나았다.

독서를 통한 그런 노력과 마음가짐만큼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된 이후엔 영 흥미를 잃게 되었다. 조직에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승진시켰고, 손에 닿을 듯 앞까지 왔던 기회는 늘 잡히지 않았다. 그러니 뭐 하러 자기 계발서를 봐? 쓸모도 없는데. 이런 책들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 건, 앞으로는 필요 없을 자격 요건을 갖출 이유가 없음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지난 추석 전날,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와보니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마인드셋>(캐럴 드웩)이 그것인데, 제목 위에 ‘스탠퍼드 인간 성장 프로젝트’라 적힌 문구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거창하고 거만해 보인달까. 여하튼 사정을 알아보니 상무님 본인이 읽어 본 뒤, 같이 일하는 전략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읽기를 권하며 선물한 것이었다. 추석 이후에 아이슬란드 여행을 가기로 한 나로서는, 책이 필요하긴 했지만 들고 갈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물론 후배가 준 다른 책이 먼저 있기도 했지만). 또 뻔한 자기 계발서가 아니겠는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겠지, (뭔지는 모르지만) 마인드셋을 잘 갖추고 일하라는 주장이겠지. 별다른 기대 없는 편견으로 책은 오랜 시간 펼쳐지지 않았다.


기대 없었음에 대한 서두가 긴 까닭은 반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직속 상사가 준 책인데 읽은 척은 해야지 싶어 어렵게 시작한 처음에는 예상대로 그저 그런 얘기 아닐까 했다. 이 책의 내용은 이렇다. 마인드셋은 크게 ‘고정 마인드셋’과 ‘성장 마인드셋’이 있다. 예상하다시피 당연히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이 남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두 마인드셋의 가장 큰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며,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어떤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장 마인드셋이 있다면 ‘노력하면 성장하고 달라질 수 있다’. 여기까지는 사실 예상 가능한 전개다. 그런데 내게 와닿은 부분은 고정 vs. 성장의 차이를 여러 가지 상황에서 비교하는 사례를 보니, 내가 상당히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또는 되어 있었다) 걸 알아차렸다는 점이다. 살짝 충격을 받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나이가 들고 경험한 것이 누적되며 변한 건지 모르겠다. 내가 갖고 있던 셀프 이미지는 ‘역량은 개발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지만, 이 책에 따르면 난 그런 믿음이 부족한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이었다. 따지고 보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조차도 고정 마인드셋의 발현이다.


사실 가장 도움이 된 내용은 ‘세상은 배우려는 자와 배우지 않으려는 자로 나뉜다’는 표현에 담겨 있었다. 고정 마인드셋을 가지면 어차피 능력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므로 작은 것도 잘 배우려 하지 않는다. 아니, 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인데? 책을 보며 늘 배우고 성장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내가 그동안 했던 행동과 노력을 부정당하는 것인가? 그러나 실제로 내 마음이나 행동거지를 보면 배움 보다는 ‘완벽한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오히려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배움을 멀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열린 자세가 아니었던 것이다. 성장 마인드셋을 갖는다는 건, 나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임이다.


부서를 옮기고 거의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보고서를 잘 쓰려고 엄청나게 고민했다.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컸다.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 완성본을 제출했는데 결과적으로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마치 나의 능력이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단지 보고서의 내용이나 방향성이 잘못된 것인데, 작성자인 내 ‘능력’을 평가받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이어야 했고, 결과물은 당연히 상사가 엄청나게 좋아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결과물이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일 때문에 굉장히 많이 상심했다. 이후 많은 일에서 자신감을 잃었고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사람인가 라는 의심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상사와 솔직한 얘기를 하다 보니 어차피 완벽하게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일은 없으니, 혼자만 고민하는 시간을 상대적으로 줄이고 다른 사람에게 중간 결과를 일찍 보여 줌으로써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조언해줬다. 여태 그런 조언을 상사로부터 받아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맘에 안 드는 결과물을 고치라고만 한다.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며 일하는 방법을 바꾸라고 알려 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놓였을 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번 일을 통해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으니, 또 하나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이다. 소위 원영적 사고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은 상황을 해석하는 방향을 어디로 향할 것인가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구체적인 설명이 쉽지는 않지만, 그동안 내가 만든 이미지와 틀 안에 자신을 가두고 벗어나면 큰일 날 것처럼 두려워했던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정말 최근에는, 내 생각이 완벽하지 않은 걸 전제하고 쉽게 물어보고 있다. 정답이 아니라 최선의 방안을 찾는다고 마음을 먹으니 한결 홀가분하다. 만약 틀린다면? 그동안 몰랐던 걸 배우는 거니까 좋은 것이다. 이걸 깨우쳐서 조직에서 더 인정 받겠다 같은 목적이 아니라 그냥 인생 자체를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면 마음도 편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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