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사를 보면 한국에서 이직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20, 30대의 이직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몇 년 전 싱가포르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현지인들과 얘기했던 기억으로는, 보통 2-3년 정도 커리어를 쌓고 동종 업계로 이직을 하면서 연봉을 20% 이상 높여 가는 것이 트렌드(?)라고 했다. 함께 얘기한 친구들 나이도 대게 20대 중후반이었으니, 능력 있고 기회 된다면 몸값을 올리고 직위도 좋게 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반면 한국 근로자 중 4050은 대부분 제자리를 가급적 지키려고 하는 추세라 한다. 나이가 들면 점점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쉽사리 회사를 바꿀 마음을 먹기란 요원하다. 아, 물론 경력 많고 인건비 비싼 경력직을 채용하고 싶어 하는 회사도 많지 않다. 대단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어서 모셔가는 것이 아닌 이상 중년의 이직은 나를 낮추는 자세로 접근함이 더 현실적이리라. 그러니 옮기기 싫어서라는 것은 그럴듯한 핑계가 될 수 있지만, 실은 옮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수 있다.
서른 살 가까이 되어서 들어간 첫 번째 회사에서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죽 달렸다. 그렇게 달린 시간이 어느새 20년이라는 세월로 돌아왔다. 그냥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아니 벌써? 정도 되겠는데, 나의 30대와 40대를 모두 이 회사에서 보냈다(바쳤다..라는 진부한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뭐랄까, 어딘가 대단한데..라는 생각이 든다. ‘근면성실’. 이런 말의 중요성에 대해 주입받고 살아온 세대의 일원으로서 긴 근속 기간이 주는 가치가 자랑스러운 모습의 한 단면이기는 하다. 때로는 알람 소리에 눈뜨면 기계 마냥 일어나서 씻고 당연히 가야 하는 곳으로 여긴 적도 있고, 정말 가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가듯 발걸음을 옮긴 적도 있다. 많은 사람과 열심히 일하며 지내는 것이 기본이긴 했으나, 일이 기다려지고 내일 하루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에 잠든 적은 거의 손에 꼽을 듯하다. 솔직히 말해,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어쩔 수 없이 먹고 살려니 꾹꾹 누르고 참으며 지낸 인생 또한 아니라서, 무던하게 출퇴근을 반복한 모습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니 한 직장에서의 20년 근무에 대단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일부러 무시할 것은 절대 아니다. 누적된 시간이 주는 경험의 복리라는 힘은 나를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사람을 소개받는데 어려움 없었고, 덕분에 결혼을 했다. 아이도 낳아서 기르고 있고 노후를 위한 연금을 나와 반반 내주는 고마운 상대다. 학회를 핑계로 미국이며 유럽이며 해외 출장도 보내줬다. 어찌어찌하다가 덜컥 해외 연구소 근무까지 해 보았다. 한때는 회사 자원을 써가며 매년 논문을 쌓는 커리어도 가져봤고, 회사를 소개하는 자리에 나아가 자랑스럽게 발표하기도 했다. 회사의 경험을 녹여낸 글을 쓰다 보니 출간작가라는 이름까지 갖게 되었다. 깊이는 크게 깊지 않았을지라도 넓고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20년의 시간 안에서 난 참 많은 것을 얻고 누리는 기회를 가졌구나 싶다. 물론 적어도 이 회사에서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훨씬 짧다는 것 또한 직시하고 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그게 3년 뒤일지, 5년 일지, 아니면 버티고 버텨 정년의 그 순간일지는 누구도 모른다.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미래의 모습. 어쩌면 지난 20년 동안 대단한 미래를 꿈꾸며 지나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심하게 하루하루를 쌓다 보면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간과 기회들, 그리고 그것들이 과거라는 이름으로 전부 지나가 버린 것이 안타깝다. 점점 나의 시간이 줄어든다는 게 정녕 아쉽지만 남은 시간마저도 ‘놓쳐버린 과거의 안타까움’으로 채우지 않도록 해야겠다.
나에게 말한다.
수고 많았고, 잘했다.
나에게 바란다.
앞으로도 잘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