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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Nov 30. 2024

지금이 옳다는 위안

1.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에서 제공하는 유/무료 강의가 있다. 이 협회의 일은 연구개발(R&D)의 직무역량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므로 교육의 방향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기술혁신’, ‘경영지원’, ‘직무역량’ 등 분야별 교육을 연간 130여 회나 한단다 (이미 몇 번 강의를 수강한 동료의 말에 의하면 강사에 따라 강의의 질적 수준에 복불복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팁이 있긴 하다). 뭘 들어볼까 하다가, ‘프로젝트 관리와 평가’라는 제목의 하루짜리 강의를 택했다. 직무 관련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었다. 다만 제목만 딱 봐서는 듣고 있으면 종일 지루하겠다..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 즉 편견 가득한 느낌의 주제였다.


수강 신청을 할 때만 해도 별다른 기대감 없었는데 실제론 7-8시간 이어진 강연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혹자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교과서적 내용이라 평하기도 했다. 동의한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연구개발의 트렌드나 전략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회사에서 적용하거나 차용하여 쓰는 개념들을 정리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교육 내용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절절하게 와닿은 이유는 “직접 경험하고 있으니까”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2.

제목처럼 강연의 상당한 내용이 지금 우리 조직에서 다루는, 그리고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 관리 업무를 포함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관리라는 새로운 업무 영역에 참여하며 수개월 동안 배우고 실행하고 사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고민하고 실행하기를 반복하며 익숙해지도록 익혔던 업무 내용이다. 그게 몇 시간의 강의에 고스란히 들어 있어, 한편으로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같이 듣던 누군가는 ‘남들은 이미 저렇게 다 하고 있었나 보네요’라고 했다. 그러게, 우리만 이렇게 세련되지 않게(?)으로 일하는 방식이었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지금 하는 업무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알고는 싶고, 알아가다 보니 뭔가 보이는 것 같은데, 교육을 통해 통째로 리마인드 하게 되니 뭐랄까, 업무의 방향과 과정에 더 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3.

솔직히 긴가민가한 구석이 있었다. 사람의 생각은 대개 자기 경험의 범주와 범위를 넘어서기 어렵다. 책이나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 내지는 상상할 수 있다지만, 상상의 경계조차 경험의 한계로부터 약간 더 확장될 수 있을 뿐이다. 과거에도 새롭게 도입하려던 프로젝트 관리를 비롯, 연구개발의 운영 제도나 조직의 변경은 몇 년을 버티지 못했다. 나의 긴가민가한 의심은 철저히 회사 생활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시도와 실패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이런 성격의 업무가 힘든 건 단지 도입하고 시도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 일하는 문화를 바꾸는 것이기에 그렇다. 문화는 개인이 아닌 단체의 양식이다. 즉 사람의 마음을 얻고 끌고 와야 하므로 고단한 과정이다.


4.

그런 과거의 경험을 뒤로하고 ‘지금 이 길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아’라는 믿음을 서서히 가지게 되는 근거는 결국 현실의 체험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경험했던 디테일한 것 그대로를 전문가인 제3자(강연자)의 입을 통해 다시 들으면, 주관적 경험이 적당한 객관성의 옷을 입는다. 그래, 맞는 말하네 하면서 저절로 동의하게 된다. 확신이 강화되는 셈이다.


놀라운 건 나의 고민과 업무 중간 겪었던 많은 일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함으로써 뜻밖의 위로를 받는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안되면 어쩌나 또는 이게 맞나 하는 의심은 누그러지고 있다. 아직 그 끝은 알 수 없다. 바라건대 나는 이번 직무에서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 볼 수 있기를, 그래서 배운 것이 쓸모 있음을 증명하는 과정에 동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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