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쌀쌀해진 날씨를 더 춥게 만드는 건 퇴사자들의 인사말이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근무하는 연구소에는 보통 퇴사하는 사람들이 떠나기 직전 구성원 전체를 향해 메일을 남기는 문화(?)가 있다. 잘 모르는데 오가며 얼굴이라도 몇 번 마주쳤던 사람들의 퇴사 메일에 대한 감흥은 그리 크지 않지만, 개인적이든 일 때문이든 관련이 있었던 사람들이 보내오는 작별의 인사엔 가끔 마음이 쿵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동안 받았던 퇴사 메일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건, 22년을 다녔던 선배가 보내온 것이었다.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제가 요즘 읽는 책 중에 박웅현 님의 여덟 단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글로 회사생활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개처럼 살자”
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내일의 꼬리 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개처럼 살려고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때는 책 여덟 단어를 읽지 않았던 때라, 앞뒤 다 떼어 놓고 위의 내용만 보내온 선배의 메일에 무척이나 아리송했다. 의미를 헤아리기보다는 ‘개처럼 살겠다’는 표현의 과격함이 지나치게 생경하고 강하게 다가와, 뭔 소리야..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다. 강한 인상을 남긴 덕분에 아직 지우지 않고 메일함에 남아 있다. 그 사이에 나는 책을 읽기도 했고, 훨씬 더 연차도 찼다. 이제 그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시점에 이르니, 그의 인사에 담긴 뜻이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얼핏 알 법하다.
나라면 퇴사할 때 메일을 어떻게 쓸까, 이런 생각을 제법 진지하게 해 본 적 있다. 닥치게 되면 쓰든가 말든가 할 일이지만, 미리 좀 준비해 두고 싶은 쓸데없는 계획형 인간. 쓰자고 마음먹으면 장문의 이야기를 펼쳐 놓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떠나려는 사람이 남기는 글이라는 게 남은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어 아주 간단하게 마무리하지 않을까 하는 반대 방향으로 생각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래도 나름 작가 행색을 하는 중이니, 인상 깊은 퇴사 메일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도 우습다.
전에는 퇴사자의 인사가 남의 일과 같았다. 먼 미래의 것, 나와는 상관없는 것. 그러니 선배든 후배든 퇴사 인사와 메일을 보낼 때면 ‘잘 가시오, 난 여기서 아직 버틸게’였다. 그랬는데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 급격하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3년 전 봄, 회사 출근길 양 옆으로 늘어선 벚꽃길을 자동차로 달리며 ‘내가 이 벚꽃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몇 년 남았을까’를 상상했었다. 지난 한 달 사이에 10년 넘게 알고 지냈던 지인들의 퇴사 인사가 영 마음에 걸리는 건 이제야 실체를 가진 현실이 될 수 있음에 대한 자각이려니 싶다. 지금은 나도 곧 저들과 비슷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싶어지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뭐 대단히 비장한 건 아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이다. 언제까지 영원한 것이 있겠나, 들고 나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슬픈 것은 알고 지내던 사람이 퇴사하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느껴짐에 있다. 사라진 이들의 존재감은 가끔 과거의 연구 사례나 제품 개발의 이력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나 추억의 대상은 아니다. 아련한 아쉬움으로 두기엔 그들이 비운 자리를 빠르게 채우는 남은 사람들의 모습이 더 활동적이어서 일까. ‘아 맞다, 그런 사람이 있었지’로 기억되는 찰나의 순간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분 어떻게 지내신데요?’하는 궁금증이 드는 몇몇이 있다는 건, 스쳐 지나간 인연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어쩐지 퇴사 메일은 나 여기 있었소,라는 슬픈 선언문 같은 기분이다.
문득 영화 <쇼생크 탈출>의 브룩스가 남긴 글귀가 떠올랐다.
Brooks was here.
삶도, 우리의 인연도 흐르는 강물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