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를 매끄럽게 굴리려면, 결국 사람 사이의 거리감과 공감이 관건이다.
이게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일을 할 때 어딘가 매끄럽지 않게 진행될 수 있다. 프로젝트뿐만이 아니라 변화관리에도 이해관계자들의 영향은 매우 크다. 때로는 현실적 조언이 필요할 때도 있고, 일하는 문화 개선을 위해 적절한 도움이 요구될 때도 있다. 그러니 평소에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좋다. 다분히 의도적인 이유로 예전 부서 상무님과 수다를 빙자한 티타임 시간을 가졌다(아니, 티타임을 빙자한 수다였나?).
임원들을 만나는 것이 편하지는 않지만 어느 하나든 배울 점을 찾게 된다. 이 분은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으면서도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러니 불편한 마음은 내려놓고 미팅을 가졌다. 요즘 화두인 인공지능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다가, 최근에 기사를 하나 봤다며 공유해주셨다.
기사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더욱 인간다운 능력이 중요해진다’
비즈니스는 오랫동안 논리와 데이터의 세계였지만, 이제 그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더 강하다. 데이터에 근거한 판단 역시 인공지능이 잘 내려준다(물론 그게 늘 옳은 결과를 제시하는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만). 그래서 기사에서는 ‘고지능 무능력자’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쓴다. 지적인 능력은 우수하지만 정작 그것을 발휘하기엔 인공지능이 더 우세하다는 뜻이다. 아마존에서 3만 명의 직원을 정리할 것이라는 기사가 새삼스럽지 않다.
앞으로 인공지능과는 차별화된 인간만의 무엇이 필요하다.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기사에서 말하는 인간다운 능력은 바로 직관, 예외성, 상상력, 감정, 모르는 것을 아는 감각이다.
상무님은 특히 연구개발 부분에 있는 담당 연구원들의 직관과 상상력, 그리고 예외성이 더 발전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다.
회사 일 중에 어떤 것은 분명 그런 목표와 성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부서라면 약간 허황되어 보이는 꿈을 제시하는 용기 - 또는 무모함 - 가 필요하다. 그런데 연구원들에게 새로운 과제 제안서를 요구했더니, 다들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 그리고 당장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으로 구성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직관의 힘보다는 논리적인 구조에 의존하고, 상상보다는 현실적인 목표에 타협하며, 어찌 보면 뻔한 답을 내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는 것만큼 볼 수 있고,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기획력이 부족한 것이 그들만의 잘못 또는 능력 부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를 대비하는 과제를 생각하기에 일반 연구원들에겐 현실의 질문이 제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이나 직관이라는 영역을 어떤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MBTI의 N이냐 S냐라는 구분도 적절하지 않다. 타고나는 부분이 일부 있겠지만 나는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본다.
리더급으로 올라갈수록 그런 역량을 요구받는다. 앞으로 이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회사를 위해 미래 먹거리로 필요한 일은 무엇일지, 세상의 변화를 읽고 반발자국 앞서 나갈 무엇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 말이다(어쩌면 리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라는 목적성이 더 강하다). 각자 그동안 가지고 있던 관심이 눈앞에 놓인 소재 하나, 분자생물학적 타깃 하나, 새로운 제형 개발 정도였다면, 여러 사람을 이끄는 리더는 그 이상을 내다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냉정한 조직의 생리 앞에서 버티기 어렵다.
그런 눈을 가지고 조직을 운영하는 임원 입장에서 담당 연구원이 제시하는 ‘현실적 목표의 위험 없는 과제’가 마음에 들리 없다. 긴 시간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와 생각해 보니 좋은 리더라면 그런 미래를 구성원이 생각해 볼 수 있게 기회를 주고, 때로는 상상해 볼 수 있게 적절하게 푸시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데이터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경험과 개인의 역량을 믿고 밀어붙이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
어떤 매체를 통해 들었던 앞으로 주목받을 리더십은 논리와 냉철한 판단, 의사결정 능력이 아니라 따뜻한 인간미라고 하였다. 인공지능이 논리를 대신 세워주고 데이터와 근거를 제시한다면, 리더는 그 위에 감각과 온기를 더해주는 사람이다. 조직의 리더십은 이제 냉철함과 효율성보다 상상력과 공감의 온도가 중요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