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년 차였던가, 회사를 옮기려고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다. 이직의 사유는 ‘상사가 나에 대해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오래된 기억이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꼈는지 모르겠다(대단한 이유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고작 3년 차에 그런 결심을 했다는게 지금 보면 우습기도 하다. 요즘 말로 자의식이 비대했던 것 같다.
마침 유사한 업종에 채용 공고가 떴다. 회사는 집 근처에 있을뿐더러, 나름 성과를 냈던 회사 선배가 이직해서 그 회사의 팀장으로 있기도 했고, 대학원 후배 또한 좋은 회사라며 추천을 했기에 망설임 없이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몇 년 지나 상황을 보니 내가 가고 싶던 팀이 거의 해체되다시피 하고, 선배와 후배 모두 다른 회사로 옮기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떨어진 것이 다행’인 셈이 되었다.
일전에 쓴 적도 있는데 나는 소위 ‘임포스터’이다. 무슨 진단을 받은 건 아니다. 심리학에서 임포스터라고 정의하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과 비슷하기에 그렇게 생각한다. 임포스터는 완벽하지 못한 자기를 감추려고 애쓰는 평범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부족한 자기를 드러내면 안 되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엔 완벽주의자를 추구한다. 또한 능력 좋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처럼 보임에도 실력을 믿지 못하고 ‘운이 좋아서' 현재의 성취를 이뤘다고 믿는다. 딱 내가 그런 성격이다.
그런데 내 능력에 대한 의심과 운빨로 인한 성공이라는 불안함이 있음에도, 대단히 역설적으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또한 매우 강하다. 나의 내적 갈등은 바로 이 모순된 욕망과 불안함의 경계에서 발생한다.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혹시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서 오히려 실망시키게 되지 않을까에 대한 불안과, 그러면서도 숨어서 지내기보다는 관심에 대한 갈증이 계속해서 엎치락뒤치락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도 없는데 홀로 부조리극 한 편을 찍고 있는 기분이다.
긴 회사 생활 동안 모노드라마 마냥 찍어댄 부조리극에는 주인공인 나를 비롯해 몇몇 등장인물들과 몇 번의 상황이 함께 했었다. 인정에 대한 욕심은 종종 승진과 직급에 대한 타이틀을 노리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직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가 더 의미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게 진짜 경쟁력이라고, 회사라는 배경을 지우면 남는 것은 그게 전부라는 것 또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마음이 쉽게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직급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주어졌지만 - 마치 이직이 불발로 끝난 것 마냥 - 나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잡지 못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모른다. 아무도 설명해 준 적 없다. 마치 시험을 쳤는데 틀린 문제에 설명은 없고 결과만 받아 든 꼴이었다.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회사 안에서 경력이 차고 넘치면서 인정에 대한 욕구가 많이 사라졌다고, 그래서 어느 정도 평안을 얻었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 주어지지 않을 기회 따위엔 그만 신경 쓰자, 이제는 그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인지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던 직급 욕심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믿었다.
최근 어떤 자리에 공석이 생겼다. 이번에는 ‘혹시 난가?’ 병이 도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동안 나의 부조리극은 주로 내가 주도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주의하면 된다고 봤다.
이번엔 양상이 달랐다. 주변에서 나를 괴롭혔다. 바로 옆 자리에 앉은 동료부터, 해당 부서의 선후배가, 그리고 정말 관련이 없는 먼 부서의 후배까지 ‘혹시 당신인가요?’라는 질문 공세를 던졌다.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애써 평안하고 싶었지만 결국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물론 빈자리에 앉기에 적합한 경력과 전문성이 나에게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준 건 고맙다. 그들의 질문과 기대 어린 눈빛과 바람을, 순수한 응원을 이해한다. 그런 만큼 그들이 오늘따라 너무 야속하다.
남의 속도 모르고.
그들이 지나가듯 던지는 한 마디를 들을 때마다 “인사발령이란 정해져야 아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었다. 대수롭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결국 사실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왜 내가 아닌지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 어쩌면 애초에 (이제는) 문제의 보기에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한 번 어긋난 시험 답안에 나는 슬펐고, 주변 사람들의 배려 없음에 실망했고, 결국 주책맞게 아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지나간 몇 번의 기회를 뭉뚱그린 회한과 토로의 눈물이 아니었나 싶다.
일기장에 써야 할 것 같은 이 고백을 굳이 남겨 두기로 마음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와서 진급 따위 그까짓 게 뭐라고, 훌훌 털어버릴 생각이 있지도 않다. 또는 울었다고, 이렇게 글을 써서 감정을 조금 덜어냈다고 갑자기 ‘새롭게 태어난 나’가 될 수도 없다. 어딘가 내놓기에 심히 부끄럽지만 이런 경험까지 포함한 내가 지금의 나다. 나는 그것을 기록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