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젋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힘들다. 젊은이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만 한다“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예로부터 20대의 불안을 다른 이야기가 많다. 20대는 많은 것이 애매하다는 이유가 크다. 법적으로는 성인의 자격을 얻게 되어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성인’이 된다고 해서 딱히 장점이 있는지 따져보면 글쎄? 하는 생각이 든다. 술, 담배, 연애 같은 것들이 성인만의 특권이라고 보기엔 (적어도 지금의 내 나이에서 보면) 별 것 없다. 그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짊어져야 할 책임만 더 늘어나는 것 같다. 가진 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하필이면 그 나이에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성과의 관계, 그 와중에 불편한 현실 속 방황하는 자아.. 이런 클리셰들이 20대의 전형성을 보여주곤 한다.
나의 20대는 솔직히 그런 불안감이 거의 없었다. 아니, 거의 없도록 유예했다는 것이 더 적합하다. 4년제 인서울 대학에 들어갔고, 마땅히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공부 말고는 별로 재능이 없어서,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많은 남자 동기들이 군대를 갔지만 병역 특례라는 제도를 노리며 내리 4년을 학부생으로 지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와 박사를 마치기까지 10년-정확하게는 10년 7개월-을, 나는 공부라는 핑계를 앞에 둔 채 묵묵히 보냈다. 교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결국 일반 회사에 취직했는데, 오히려 박사 후 과정(포닥)을 했다면 교수직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불안을 피해 간 셈이다.
공부만 할 때는 어려움이 없었다. 운 좋게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별도의 용돈을 벌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지냈다. 당시 같은 과 여학생과 커플로 지냈는데 이 친구는 늘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빴다. 학비 마련도 문제였지만 언니가 있음에도 집안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었다. 지금에야 그랬다,라고 쓸 수 있지만 그땐 정말 잘 몰랐다. 나에게 힘든 내색을 안 했을 수도 있고, 티를 냈어도 내가 눈치 없었을 가능성이 더 컸다. 그녀와는 이별하고 말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한 줄로 쓰기엔 아쉬울 정도의 이별 스토리가 있긴 하지만, 그것도 결국 20대의 치기 어린 연애사일 뿐, 이제와 별다른 감흥은 없다. 그저 눈치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남자 친구였던 과거의 나를 반성해 본다.
장학금과 집안의 지원은 대학생 때나 대학원 시절 나를 든든하게 지켜 주었다(박사 졸업을 앞둔 시점에는, 서른이 다 되었음에도 경제력이 없는 내가 부끄럽기는 했다. 그렇다고 불안하지는 않았다). 입사 후에는 때때로 적절한 타이밍에 인정받고 다양한 경험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딱히 불안함을 느끼지 못했다. 회사에 들어와서 어지간한 것들은 마음에 들게 이루었으나 딱 하나 못한 것은 승진이었다. 조용히 할 일 하는 성격이지만 약간의 '관종기'가 있다 보니, 승진 욕구가 결코 작지 않았다. 욕심과는 달리 팀장의 문턱에서 매번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팀장이 되면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거꾸로 나를 지배했을 텐데, 평사원으로 지낸 것이 불필요한 불안의 싹을 애초에 없앤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쓰다 보니 나란 사람은 이루지 못한 결과들을 수용하면서 빠르게 자기 정당화를 하는 편인 것 같다.
회사에서 20여 년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나에게 제대로 된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불안, 자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유예해 두었던 불안을 늦게라도 겪게 되는 때가 아닌가 싶다. 현재 나의 불안은 언제까지 경제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아주 현실적인 것부터,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한가라는 개인적인 질문에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일할 수 있는 나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불안감에 대한 이해는 쉬울 것이다. 20대에는 느끼지도 못했던 불안감이 나이 들어 찾아온 것은, 내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불안이라는 것이 마냥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절하다면 불안은 좋은 자극원이자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만 해도 그렇다. 분명히 부서장이 ‘당신이 일 년 동안 성장한 모습이 보기 좋다,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을 때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내 안의 어딘가에는 ‘잘 해내야 한다, 그런데 역량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고 있다. 남들은 아니라고 말해 주지만,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라는 불안정한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방법으로 요가나 정신 수련, 마음 들여다보기 같은 방법론도 있다지만, 결국 어떤 성과로 나타나지 않으면 업무나 포지션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은 해소되기 어렵다. 그런 불안한 마음을 한편에 두고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30-40대에는 그런 불안감이 크지 않았다. 능력보다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쉰 살이 되고 나니, 내가 쓸 수 있는 시계의 초침은 남들보다 짧고 빠르게 움직인다고 느껴진다. 이제 (역량을 발휘할) 시간을 기다려 주기보다는, 즉시 보여 줘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롭지 않다. 불안과 동거하며, 나는 꾸역꾸역 하루를 이겨낸다.
그런데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것이 어째서 불안의 범주에 드는 것일까. 노래 가사처럼 ‘내가 나를 모르는‘ 상황이 오래된다고 상상해 본다. 은퇴 후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주어질 텐데 그때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지 지금부터 알고 싶은 것이다. 그걸 발견하지 못하면 은근하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게 나를 찌르는 느낌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 불편함이 바로, 지금 나를 움직이는 ‘늦게 찾아온 불안’의 실체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것과 진지하게 마주할 준비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