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로부터 많은 피드백을 받아 봤지만, 최근에 들었던 말이 나에겐 꽤 인상 깊었다.
“OOO님은 마음이 열려 있는 것 같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뿌듯하면서도 ‘그런가?’ 싶은 질문이 먼저 들었다. “남들도 다 비슷하지 않나요? 다들 그래 보이는데.. “ 라고 되묻자,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 주었다. 이후 이어진 그녀의 질문은 ‘왜 당신은 남들과 달리 오픈 마인드인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나?’였다.
위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그럴 수 있지 싶으면서 제일 실망스러운 건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일 것이다. 그저 개인적인 성격이 남들보다 덜 따지고, 굳이 마음속 이야기를 숨기려 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는 성향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타고난 기질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마냥 그것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마치 유전자가 이미 모두 결정해 놓았다는 환원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데,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닫힌 사고의 전형일 것이다. 개선의 여지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논리다.
“열린 마음”의 정의는 변화에 대한 높은 수용도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받아들이려는 기본적인 마음가짐(태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 생각한다. 업무 초반 보고자료를 만들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완성도 높은 자료를 만들어 내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컸다. 함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다시 고쳐 보자”였고, 그 피드백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나는 슬럼프에 빠졌었다. ‘난 잘한 것 같은데 이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자, 다음에 어떻게 자료를 만들어야 할지 도통 감을 잡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면 내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상사를 설득하거나, 상사가 원하는 방식을 빠르게 캐치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후자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단순히 상사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내 스타일을 포기하는 것이 열린 마음이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처한 어려움의 이유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변해야 할 부분을 빠르게 분석하고, 그에 맞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실은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상사와 진솔하게 대화를 갖는 시간이 많았다. 그녀는 자신의 동료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일하는 방식의 정의가 명확했다. 혼자서 끙끙대고 멋진 결과를 내놓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 과정을 만들고 고민하는 시간을 원했던 것이다. 이런 접근이 낯설긴 했지만 내가 반감을 가질 이유는 없었고 맞춰가면 해결될 부분으로 생각했다. 소통의 기회가 많고 깊어질수록 더 좋아진 것은 심리적 안전감이었다. 어려울 때는 솔직하게 어려움을 털어놓아도 괜찮다는 신뢰가 생겼다.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기보다, 이거 잘 안되네요, 도와주세요 하며 손을 내미는 제스처가 부담스럽지 않아 졌다. 물론 여전히 멋지게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서 가져왔다는 욕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게 더 좋은 문제 해결의 방식인가 질문을 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PMO의 입장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리더와 대화를 자주 하게 되는데, 리더들마다 정말 일하는 방식, 생각의 차이, 그로 인한 대화의 결론이 정말 다르다. 100인 100색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떠오른다. 내가 관리하는 모든 프로젝트가 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래도 열심히 리더들과 소통하려고 애썼다. PMO가 권하는 방식을 잘 수용하는 리더도 있고, 잘 알겠다며 돌아가서는 하나도 달라진 것 없는 리더도 보았다. 내가 그들을 강제할 권한은 없으므로 설득과 이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 번은 일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가 되려 리더의 의심을 산 적이 있다. 긴 이야기라서 다 적을 수는 없으나, 핵심은 이렇다. 프로젝트 리더는 자신이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보이고 싶은데, PMO인 내가 너무 정직(?)하게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실체를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결코 문제를 까발려서 면박을 주려는 게 아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려 했던 의도와 달리, 세련되지 못한 일처리에 대한 반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그 리더는 단 한 번의 이벤트로 인해 나에 대한 신뢰를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일이 있었던 후로 쉽게 얘기를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를 주는 것이 느껴진다. 앞서 내가 상사에게 느꼈던 ‘심리적 안전감’의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 것인데, 아마 프로젝트가 종료되기 전까지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회사 일을 하는 데 있어 열린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고 동료를 대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성장 관점에서 열린 마음이 주는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던 것을 소개한다. 흑백요리사로 유명해진 에드워드 리 셰프의 초청 강연을 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누군가 질문을 했다.
“당신은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요?”
어느 쓸쓸한 가을날, 바람 부는 주차장에서 에드워드 리는 발 앞에 뒹구는 낙엽을 보았다. 쭈그려 앉아 한참 보고 있으니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단다. 시들어 버린 낙엽이었지만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고 무언가 그를 자극했다. 결국 그는 낙엽 모양의 디저트를 만들었다고 했다. 또 하나는 여수 여행에서 먹어 본 쑥 아이스크림에 감명을 받고 자신의 식당에서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실행했다고도 했다.
결론적으로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마음이 열려 있다면 영감은 어디에나 있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생각이다. 에드워드 리 정도 되면 대단한 고민을 할 것 같았지만, 또는 그럴듯한 답변을 댈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소탈하고 솔직한 답변이 기억에 남았다.
상사가 나에 대해 좋게 본 부분은 결국 변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에 있다. 그 덕분인지 지난 몇 달 함께 작업했던 보고서 준비와 과정이 힘들었지만 도전적으로 느껴졌고 결과 또한 만족스럽다. 어려운 주제였기에 혼자 해결하기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의 낯섦을 피하지 않고 진심으로 듣고, 다가가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더 유연해진다. 닫혀 있는 마음은 (어쩌면 당사자에겐) 편할 수 있지만, 열린 마음이 만들어 내는 기회와 관계, 그리고 배움은 더 큰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