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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 Bo Feb 26. 2023

만년 문과생이 컴공 석사를 하면서 느끼는 점.

평생을 문과 공부만을 했고 수학은 고등학교 이후 별로 접해본 적도 없는 내가 현재 컴퓨터 공학 석사를 하고 있다. 1년에 3학기이고 방학은 학기 끝나고 1,2주.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파이썬 코딩 공부를 해봐야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코딩만 알아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공지능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6개월 소위 부트캠프라는 것을 했다. 6개월에 인공지능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할 거면 제대로 하자'라는 생각에 비전공자를 위한 컴퓨터 공학 석사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수업 10개만 들으면 된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고 무엇보다 커리큘럼이 좋았다. 석사를 시작한 지 절반 정도가 지났다. 


인정하기 싫지만 고생을 사서 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회계법인에서의 회계사 일이 고돼서 좀 편하게 살자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또 이러고 있다. 직군을 바꾼다면 MBA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행보였겠지만 좀 더 새롭고 유용한 것을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했는데 미국 회계법인에서 10년을 근무를 했지만 별로 바뀐 게 없었다. 가끔 내부 리포팅 시스템을 갈아엎을 때가 있었는데 결과는 암울했다. 바꿀 때마다 내부 시스템은 유저가 사용하기에 더욱 힘들었고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도대체 왜?? 대기업이 이렇게 쓸데없는 짓을 정성 들여서 유저들의 반대가 폭주하는 가운데에도 하는 것인가.. 의문이었다. 누구를 위한 새 시스템 도입 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밖에 만들지 못하는 것인가. 전에 근무하던 회사는 일할 때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일단 보고체계가 복잡하지 않고 클라이언트를 만족할 만한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일처리는 빠르게 진행됐다. 하지만 내부 시스템은 비효율의 온상이었다. 그리고 업무를 진행하는데 기술적인 서포트는 엑셀, 파워포인트가 전부였다. 엑셀에서 엄청 큰 파일을 열 때는 컴퓨터가 정신을 못 차렸다. 데이터베이스는 없었다. 10년 전과 같이 법전을 뒤지고 외부의 세법툴을 사용했다. 세상이 급변하고 기술이 빨리 변하는데 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한 곳에서의 기술은 10년 동안 거의 바뀐 게 없었다. 그래서 컴퓨터와 기술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했던 이 길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한 학기에 수업 2개를 풀타임으로 듣는 것도 따라가기에 벅차다. 매주 새로운 내용의 강의와 과제. 강의만으로는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대부분이다. 각 과목의 책은 보통 1000페이지 정도다. 책이 여러 권일 때도 있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고 너튜브 같은 곳에서 추가로 쉬운 설명의 강의를 찾기도 한다. 과제를 하는데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20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코딩 과제 같은 경우에는 오류가 나면 버그를 찾아야 끝난다. 몇 시간을 공들이기도 한다. 버그를 찾고 보면 별것 아닌 것에 좌절하기도 한다. 공부도 체력이 있어야 할 수 있고 버틸 수 있어서 헬스와 러닝도 꾸준히 한다. 운동과 공부를 하다 보면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훌쩍 지나가 있다. 


문과와 공대의 차이는 공대는 '중간만 하자' 'B만 받자' 이런 게 잘 안 통한다는 거다. 문과 공부는 과정이 있고 과정에 점수를 많이 주기도 한다. 리포트를 쓸 때도 정해진 답이 하나가 아닌 경우가 많다. 본인의 생각을 논리 있게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의 세법 같은 경우도 답이 정해져 있을 때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회사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코딩 과제, 시험 같은 경우에는 코드가 에러가 나서 안 돌아가면 될 때까지 해야 된다. 중간이 없다. 아는가 모르는가. 프로그램이 정상 작동하는가, 오류가 나는가가 있을 뿐이다. 


생각의 방식이 다르다. 세법을 나름 오래 해왔고 엑셀로 모델도 만들고 했어서 나름 로직에 강하다고 생각했고 우리 팀에서는 내가 정량적인 계산이나 모델을 만드는 것을 많이 했었다. 컴퓨터 공부를 하면서 생각하는 방법,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부터 완전히 다르다고 느꼈다. 뇌를 사용하는 방법, 생각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다. 철저히 수학적인 사고방식과 이론이 뒷받침이 되어있다. 촘촘하고 꼼꼼하게 코드를 짜야하고, 하나라도 틀리면 돌아가지 않는다. 세심함과 집중력을 요한다. 무엇보다 내용 자체가 워낙 생경한 것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가도 두 번, 세 번 보면서 조금씩 이해가 간다. 거북이 스피드로 배움이 진행 중이다. 나 자신이 답답하기도 하면서 겸손해지기도 한다. 


배움의 과정은 고되다. 


그렇지만 배움의 기회가 귀하고 값지다는 것을 믿고 싶다. 나중에 내가 배운 기술로 멋진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런 생각으로 오늘 하루도, 다음 한 주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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