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많은 형이 주문한 가요 플레이리스트
80년대 중반 중학생이 된 나는 드디어 동요를 떼고 가요와 팝송의 세계로 입문했다.
그 시절 가요는 주로 성인들을 위한 노래가 많아서 청소년들은 팝송을 즐겨 들었다. 나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즐겨 들으며 DJ가 내가 좋아하는 곡을 소개하면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공테이프에 녹음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레코드가게(LP판과 노래테이프를 파는 가게)에 좋아하는 노래 목록을 가져가면 공테이프값과 수고비 5천원을 받고 노래를 녹음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학생에게 5천원은 부담되는 돈이었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때로는 DJ의 엔딩 멘트 때문에 마지막 부분을 잘라내야 했던 저음질의 노래가 아니라, 전문가(레코드가게 사장님)가 레코드판으로 한 곡 한 곡 녹음해 준 고음질(요즘 말로 고퀄)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노래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때부터 나는 용돈을 모아서 소장가치가 있는 (하나의 LP판에 좋은 노래가 여러 개 들어있는) LP는 직접 구매하고, 그 외에 평소에 듣기 힘든 노래들은 레코드가게에 녹음테이프를 주문해서 즐겨 들었다.
내겐 열 살 많은 대학생 형이 있었는데, 어느 날 평소 무뚝뚝한 형이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노래 목록을 주면서 레코드가게에 가면 자기 것도 녹음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노래 목록과 함께 심부름값도 받았고 내 것을 주문하면서 같이 하면 되기에 어려울 것이 없는 심부름이었다.
형은 글씨를 잘 쓴다. 특히, 한자를 멋있게 쓴다. 형이 준 노래목록이 아직도 기억 나는 이유는 하얀 종이에 정성껏 쓴 글씨가 멋있어서 한참이나 들여다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한자로 쓴 再會(재회)라는 제목이 유독 각인이 되어 아직도 그 글씨가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그때는 성인풍의 노래라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중년이 된 요즘 그 노래들을 가끔 찾아 듣곤 한다.
여름비가 내리는 오늘, 그 노래들이 생각나서 적어본다.
세월가면 - 이광조
작은새 - 어니언스
再會(재회) - 남궁옥분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 민해경
그땐 외롭지 않았어 - 이치현과 벗님들
민들레 홀씨 되어 - 박미경
희나리 - 구창모
소녀 - 이문세
<세월가면 - 이광조>
<작은새 - 어니언스>
<재회 - 남궁옥분>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 민해경>
<그땐 외롭지 않았어 - 이치현과 벗님들>
<민들레 홀씨 되어 - 박미경>
<희나리 - 구창모>
<소녀 - 이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