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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동아빠 구재학 Dec 30. 2023

그 시절 킬링타임, 화장실 낙서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화장실 소일거리

화장실에 갈 때 무엇을 들고 가는가?

스마트폰을 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심지어 볼일을 다 본 후에도 스마트폰을 하느라 늦게 나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은커녕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핸드폰이 없던 아날로그 시절, 화장실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대학교 화장실은 그래도 지성인들이 머물던 공간이어서였을까 나름 수준 있는 낙서도 꽤 있었다.


그대가 사색에 잠겨 있는 동안 밖에 있는 사람은 사색이 되어 간다.

그대가 밀어내기에 힘쓰는 동안 밖에 있는 사람은 조이기에 힘쓴다.

젊은이여 일어나라! 그대가 지금 편히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신은 모든 인간에게 공히 '똑똑'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는 '똑똑'했다. 나도 '똑똑'했다.

문 밖의 사람은 나의 '똑똑'함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대는 오줌을 눈 후 떨고 있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오줌을 쌀까 봐 떨고 있다.

그대가 배설의 기쁨에 웃음 지을 때, 문밖의 사람은 인고의 고통에 눈물짓는다.

첫날밤을 보낸 후, 빌게이츠 부인 왈.. "Micro.. soft.."

Newton은 바보. 왜 만유인력의 법칙을 화장실에서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도 아날로그 시대라 낙서가 유행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방랑시인 김삿갓이 남긴 낙서다.

자지(自知)면 만지(晩知)고, 보지(補知)면 조지(早知)라

    - 김삿갓이 전라도 화순 적벽에 가는 도중,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어느 서당에 들렀는데, 학동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는지 감탄하여 한마디 내뱉은 말이다. 서당 훈장과 학동들이 자기네한테 욕을 하는 줄 알고 달려들자 김삿갓이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혼자 알고자 하면 깨달음이 더디고, 도움을 받아 알고자 하면 그 깨우침이 쉬우니라."

서당은 내 조지인데 (書堂乃早知, 서당은 이미 내가 알고 왔는데)
방중은 개존 물이라 (房中皆尊物, 방에 있는 놈들은 다 제 잘난 체하는군)
생도는 제미십이고 (生徒諸未十, 학생은 열명도 안되고)
선생은 내 불알이다 (先生乃不謁, 선생은 코빼기도 안 보이네)

     - 어느 추운 겨울날, 김삿갓이 천하를 주유하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서당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으나, 방 안에 있던 학동들은 김삿갓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미친개 취급을 하면서 내쫓았다고 한다. 이에 김삿갓은 이 시를 남겨놓고 홀연히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어느 곳이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낙서들이 꼭 있었다.

신은 죽었다 - 니체,   니체 너 죽었다 - 신,   너네 둘 다 죽었다 - 청소아줌마

낙서는 죽지 않는다. 다만 지워질 뿐이다.

왼쪽을 보시요 -> 오른쪽을 보시요 -> 뒤를 보시요 -> 보란다고 보냐? 바보~~




누군가 인간은 '호모 그라피티(낙서하는 존재)'라 했던가?

낙서의 기원은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화산 폭발로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되었던 폼페이에서도 낙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낙서는 철없는 아이들의 유치한 행동으로 치부되지만 내가 신입사원이던 시절, 그러니까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 엄숙한 임원회의에서 다이어리에 열심히 낙서를 하고 계신 머리 희끗희끗한 임원들을 종종 보았다. 처음엔 메모를 하는 줄 알았지만, 그건 분명 유치원생이 그릴 법한 그림, 즉 낙서였다. 지루한 회의를 그렇게 달래셨다보다.


낙서는 자신의 심리와 정서를 다양한 표현들로 나타내는 은밀한 자기표현이라고 한다.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의 고도화로 온라인 비대면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더 이상 은밀함은 없는 것 같다. 사생활이 노출되고 나의 모든 동선을 통신사가 알고 있는 Connected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인간은 오히려 더 고독해진 것 같다는 생각은.. 나의 기분 탓일까?



<a-ha : Take on me>

나는 낙서를 생각하면 왜 이 노래가 떠오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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