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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 Aug 31. 2022

아이를 키운다는 건

등굣길.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던 아이가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미소 짓는데 앞서 걷던 아이 엄마가 왜 계단 난간을 붙잡고 걷냐며 아이를 채근한다.

아이는 어쩔 줄 모르고 엄마는 더러운걸  왜 만지냐며 작은 몸집의 아이가 감당하지 못할 화를 쏟아붓는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기와 보폭이 다른 형의 손에 이끌려 내려가는 것이 위험하다 생각했을 거고 어젯밤 비가 와서 촉촉이 젖어있던 난간을 잡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을 거다.

먼저 내려간 엄마는 왜 어린아이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을까

손에 먼지는 보이고 아이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 걸까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된다.

그 화가 잔뜩 난 엄마가 늙어 계단 앞에 섰을 때 난간을 잡고  내려가야 할 순간에 먼저 뛰어 내려간 젊은 아들은 그 엄마에게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마음이 아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 내 마음속 어린아이가 불쑥 튀어나온다.


일상을 살며 어른이라는 몸집 큰 괴물은

마음속의 어린이를 잊고 산다.


하굣길.

실내화 주머니를 교실에 깜박 두고 온 아이에게 픽업 나온 아빠가 '어이구 네가 그럼 그렇지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 덜렁대기는' 하며 무안을 준다.

아이는 그 무안을 총알처럼 받고 의기소침하다.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어른들도 우산을 택시에 두고 내리기도 하고

깜박 졸다가 지하철에 가방을 두고 내리기도 한다고

아주 큰돈을 잃기도 하고

소중한 무언가도 가끔 잊으며 산다고


어린아이의 심장을 관통한 비난의 총알이 부디 그 아이의 인생에 소심함이나 자신감 부족으로 자리잡지 않길 바란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먹이고 입히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볼 때 떠오르는 순간이 매질을 당하고 비난을 받았던 언젠가가 아니라 부모 손을 잡고 진달래 화전을 구워 먹던 따뜻했던 봄날.

시린 손에 호호 김을 불어넣어 주던 엄마의 따뜻한 입김.

비 오는 날 교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환하게 웃어주던 아빠의 미소.

실패에 숨죽여 울 때 꼭 안아주던 따뜻한 격려이기를 바라본다.


어린 시절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이다.

그 세상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아냥 거린다면 아이는 어두운 세상에 갇혀 주저앉을 것이다.

 

아이를 비난하는 부모는 혹시 어두운 세상에 갇힌 그 아이가 아닐까?

그리고 또 자신과 닮은 어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를 키운다는 건 뾰족한 세상에 넘어지지 않게 손을 꼭 잡아주는 것이리라.

아이를 키운다는 건 지치고 힘들 때 말없이 안아주는 토닥임 이리라.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말없이 그가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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