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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카고 라디오 Jan 05. 2022

창의력 수학의 폐해

내가 창의력 수학을 중심으로 한국 공교육의 수업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음을 알게  것이 다큐를 통해서였다. EBS  수많은 다큐  가장 기억에 남는 다큐는 한국의 공교육이 쇠퇴하는 원인을 다룬 <다시, 학교> 라는 프로그램이다.


다큐에 등장하는 고등학생들은 새벽까지 잠을 못자며 수학 과목을 위해 UCC 동영상을 만드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한 학생의 인터뷰였다.


그 학생은 수학 과목의 기본을 공부하기 위해 끙끙 거리며 문제를 풀고 난 다음 남는 시간에 동영상이나 다른 컨텐츠를 만들어서 수행평가를 받기 위해 제출한다. 하지만 자막, 음향 효과 등을 넣어 몇 분짜리 영상을 괜찮게 보이도록 만들기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해서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마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의미 없이 해야 하는 그 고통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듯, 그러나 절박한 모습으로.


학생은 여학생이었으며 공부 의지가 대단했고 수학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데 도대체 창의력을 보여주기 위해 만드는 UCC 동영상의 주제가 왜 수학의 원리와 연결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상적인 교육자들은 말한다. 도형의 특징을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도형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생길 것이라고. 같은 원리로 역사 과목의 과제 역시 만화책을 재미있게 만들어서 따분한 역사에 스토리 텔링을 넣으며 공부하면 지루하지 않게 역사를 알 수 있다고.


재미. 흥미. 스토리텔링.

정말 그러한가? 재미있게 가르쳐서 제대로 아는가?



스토리텔링

어느 날 한 한국 유학생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

A 과목의 마지막 과제인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 그는 자신이 써야 하는 내용이 그의 포부보다 꽤 단순하고 뽀대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리수를 던졌다. 그는 나에게  '스토리텔링을 결합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그 스토리는 그가 제시하는 이론과 그 이론을 뒷받침 하는 실험데이터를 통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듣고
UCC 동영상 제작스러운 발상
혹은 Ted Talk 같은 발상이라 생각했다.

Ted Talk 에서 훌륭한 연설을 해도 그것을 학문적 성과로 기록하지 않는다. Ted Talk 은 학문적 성취를 이루며 느낀 점 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만 개인적인 소회 등이 듬뿍 담긴 그 연설 자체를 '논문' 으로 등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학문의 영역에서,

어떻게 스토리텔링이
논리를 압도할 수 있는가.
어떻게 논리가 탄탄하지 않은 증명이
스토리텔링에 의해
더 좋은 논리로 각색될 수 있는가.


나는 그와 한 팀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학생들과 한 팀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그 팀원들은 어떤 의견을 주었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더라고 답했다. 그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충격을 받았는지 지금 막 교수님의 연구실 앞에 도착했으니 교수님에게 직접 물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교수님에게 질문해서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나중에 알려달라고 했다. 나도 내 생각이 맞는지 궁금하다고. 두 시간 후, 그에게서 다급히 연락이 왔다. 도움을 청하는 연락이었다.


창의력 수학은 무엇일까. 누구나 해야 할까.

UCC 동영상 수행평가와 만화 창작을 통한 역사 공부는 정말로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했는가.

아니면 최소한 영상제작에 대해 학생들의 흥미와 재능을 찾아주었나.


적어도 다큐에서 본 학생들은
고등학생쯤 되자
수행평가에 너무도 지쳐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 20대가 된 학생들은
지금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흔히 미국 수학 교육이 엉망이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배우는 수학과 과학은 수준별로 나뉘는데 수학은 자신의 풀이를 모두 써서 내는 숙제가 다반사이며, 제대로 써서 내지 않으면 숙제에 대해 점수를 잘 받을 수 없다.

과학은 실험에 대한 레포트를 잘 써서 내야 하며 이 역시 스토리텔링과 아무 관련 없다. 실험하며 그 내용을 잘 기록하고 꼼꼼히 관찰하고 과목에 따라 노트 정리를 잘 해야 한다.


만일 한국의 창의력 수학이나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 방식의 모델을 유럽이나 미국 어느 특정 학교에서 도입했다면 그것이 실제 얼마나 광범위 하게 적용되고 쓰이는 방식인지, 이들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점이 없는지, 혹은 우리 세대가 지닌 '자율성'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이 다른 중요한 사회적 자산을 망가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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