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촉을 믿으라
내가 다시 학교에 가야 겠다고 갈등하고 고민할 때 적극적인 동의와 지지를 보낸 사람은 내 기억에 한 명도 없다.
이 사람들 중에 남편은 포함되지 않는다.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기에 적극적 지지가 아닌, 방관자에 가까웠다.
그것은 내가 고심해서 결론을 내고 온전히 내 뜻대로 하지 못했을 때 우리에게 닥칠 갈등이 어떤 모습일 지 남편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올 때의 나도 무모했다.
하지만 내 아이들 글쓰기를 가르치겠다고 생각한 게 솔직히 더 무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