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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산책#1
- Bon Voyage!

프랑스 남부 이야기의 시작

by 앙티브 Antibes

프랑스로 이주하다

"잠시 후 AF7706편이 Nice에 도착하겠습니다."
서울발 파리행 긴 비행 때문이었는지 노곤함에 감겼던 눈이 비행기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강렬한 햇빛에 저절로 떠졌다. 드디어 니스에 도착한다는 안내 멘트와 함께 묘하게 빠져드는 '코발트빛' 바다와 아주 긴 해변이 한 눈에 들어왔다. 2009년 6월 12일 파리를 거쳐 프랑스로 이주하던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던 꼬뜨 다 쥐르(Côte d'Azur 주: '쪽빛의 가늘고 긴 땅'이라는 뜻, 영국 사람들은 French Riviera라고 부른다)의 풍경은 한편 설레임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막연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꼬뜨 다 쥐르. 하얀 요트들이 쪽빛 바다에 떠 있는 풍경은 언제봐도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2.jpg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앙티브 해변, 빨간 지붕의 구 시가지(Vieux Antibes)가 왼쪽으로 구항구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딱 3년 프랑스 남부에서 살았다. ①거주증 발급, 의료보험 처리 등이 모두 우편으로 처리되는 '느리고 답답한' 행정 처리의 더미와 ②콧대 높은(실제로 코가 높다) 프랑스인의 삶 속에 깊이 침투하는 인간다운 교감의 부족 등 나름 어려움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①빠르면 3월 중순부터 늦으면 11월 초순까지 바다 수영이 가능한 온화한 기후와 ②산과 바다를 모두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 환경, ③1년에 7주간의 유급 휴가라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무색한 그네들의 '초생산성'과 ④'먹고 마시는 것이 삶의 목적인가?' 싶을 정도의 식도락에 대한 흥미는 또 다른 삶의 형태에 심취하게 만드는 데 충분한 장점들도 많았다.



왜 프랑스 남부인가?

3년 동안의 짦다면 짧은 또 길다면 긴 프랑스 남부에서의 삶에서 몸소 체득한 프랑스 남부의 여행의 묘미는 크게 (1)산속에 위치한 중세 요새 도시의 고즈넉함에 취하거나 (2) 예술혼을 불태운 각종 장신구와 조각, 인상파의 영향력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회화 등 프랑스 남부를 거쳐간 숱한 예술가의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재미와 (3) 강렬한 햇빛과 코발트 빛 해변을 현지인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과 함께 누리는 묘한 게으름의 미학이 절묘하게 녹아든 해변의 재미가 아닐까 한다.
물론 지중해의 다양한 해산물과 각종 과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식재료, 치즈, 와인과 유명 레스토랑 등을 찾아 다니는 재미는 덤이다.



프랑스 남부 여행의 추천 여정

프랑스 남부는 크게 라벤더/해바라기 밭이 문득 떠오르는 프로방스(Provence) 지방과 쪽빛 해변으로 대표되는 꼬뜨 다 쥐르(Côte d'Azur) 지방으로 크게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남부의 동쪽 끝이라고 할만한 망똥(Menton)의 동쪽은 프랑스와 바다로 연결된 이태리로 '5개의 땅'이라는 뜻인 파스텔톤의 이어진 5개의 바다마을인 '친퀘떼레'도 니스에서 3~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프랑스 남부와 이태리 남부 해변을 쭉 연결하며 지중해를 따라 들어선 해변 도시의 멋에 흠뻑 취하는 것도 훌륭한 프랑스 남부 여행 방법 중 하나인 셈이다.

프랑스 남부 여행의 여정을 몇 개 추천해 보자면
(1) 파리에서 시작하여 식도락의 도시 리용과 교황 유수라는 역사적 흔적을 담고 있는 아비뇽(매년 여름 개최되는 연극 축제로 유명)을 거쳐 프랑스 남부를 횡단하는 프랑스 종횡여행

(2) 니스를 거점으로 프랑스 남부의 동쪽과 연결된 이태리 남부를 거치는 프랑스-이태리 남부 듀얼 여행

(3) 니스를 출발하여 마르세유를 또 다른 거점으로 프랑스 남부의 서쪽을 섭렵하는 코뜨 다 쥐르-프로방스 여행

(4) 니스를 거점으로 생뽈드방스, 에즈, 앙티브와 깐느, 모나코 등 꼬뜨 다 쥐르의 핵심 지역에 집중하는 꼬뜨 다 쥐르 여행 등이다.

물론 또 다른 다양한 묘미의 색다른 여행을 설계할 수 도 있겠지만 프랑스 남부를 처음 여행하거나 니스 등 몇 개 도시만 훓듯이 지나갔던 여행객들이라면 어느 정도 테마를 가지고 여행을 즐겨 보는 것도 기억에 남을 듯 싶다. 물론 최소 4-5일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야만 정복이 가능한 여정이긴 하지만. 본 고에서는 꼬뜨 다 쥐르 지방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여행해 보고자 한다.




Côte d'Azur 의 바다 마을들


1. 모든 프랑스 남부 여행의 시작은 니스(Nice)에서 부터


니스 구시가(Vieux Nice)에 들어서자마자 시간이 멈춘듯한 아니 시간이 축적된 빛 바랜 빨간 지붕과 프로방스 풍의 독특한 색감의 벽들, 로마시대부터 내려온 분수와 건축물 등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마주치게 된다. 어쩌면 여기가 프랑스인지 이태리인지 다소 혼동스러울 수도 있다. 프랑스적인 이태리라고나 할까.

니스에 한 번쯤 가본 사람들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긴 해변인 Promenade des Anglais(영국인의 긴 산책로라는 뜻) 는 부유한 영국 사람들이 영국의 변화무쌍하고 우울한 날씨를 벗어나 따뜻한 지중해를 동경하여 휴양지로 이용하면서 개발하기 시작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 니스는 1860년에서야 프랑스령이 되었다고.

이태리, 영국인들의 영향력이 꽤나 있었던 만큼 프랑스 남부 특히 니스를 비롯하여 니스 인근의 도시에는 이태리, 영국 사람들도 꽤나 많고 러시아 사람들도 제법 많았던 것 같다.

3.jpg 니스의 Promenade des Anglais. 언제봐도 가슴이 탁 트인다.천혜의 산책/조깅코스다


4.jpg 니스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니스하면 긴 해변과 구시가, 그리고 니스 해변을 가노라면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마세나 광장(Place Macena) 정도를 떠 올리지만 니스 구항구쪽을 쭉 돌아 산책하는 재미와 Promenade des Anglais 끝 어딘가 계단을 한참 구비구비 돌아 도착하게 되는 샤또 공원(Parc du château)에서의 탁 트인 전망도 꼭 한 번 즐겨보기를 권한다. 매년 2월 열리는 니스 카니발도 오프 시즌에 방문한다면 강추. 마세나 박물관, 마티스 박물관 및 샤갈 국립 박물관 등 다양한 인상파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박물관도 제법 있다.

5.jpg 니스의 구항구. 구시가지와 구항구를 천천히 산책하며 남프랑스인들의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는 것도 좋은 하나의 여행 테마다.


색다른 프랑스 남부 음식도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그날 잡은 싱싱한 지중해 생선으로 요리한 생선 구이, 그날 팔고 남은 생선으로 끓여먹기 시작하여 하나의 요리로 정착한 부야베스, 니스풍 샐러드(아주 짠 엔초비의 급습은 주의), 프로방스 향신료를 넣어 끊인 홍합탕과 감자 튀김의 조합 등의 다양한 요리와 이태리의 흔적이 가득 담긴 화덕 피자도 한끼 식사로 든든하다. 치즈 가득한 빠니니, 샐러드 또는 튀긴 감자를 넣은 바게뜨 샌드위치도 별미다.
'소카'라는 프랑스식 달지 않은 식사 대용 팬케이크와 진한 소고기 스튜인 '도브(daube)', 말린 대구와 지중해 향신료를 넣고 끊인 스토크피수(stockfisch), 속을 채운 채소인 파르시(farcis)도 단골 메뉴다.
특히 니스에 간다면 화덕 피자로 유명한 ‘La Vogolia’에 꼭 한 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2. 꼬뜨 다 쥐르의 숨은 진주, 앙티브(Antibes)


니스에서 차로 30-40분 거리에 있는 앙티브는 자갈로 가득찬 니스 해변과는 달리 모래 해변을 즐길 수 있는 피카소가 잠시 살았던 해변 도시다. 니스의 해변이 광활하고 도시의 전체적인 느낌이 다소 거칠고 덜 정제된 느낌이라면 앙티브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보다 고급스러운 느낌(생트로페와 함께 프랑스 남부 동쪽의 고급 주거지임)으로 구시가(Vieux Antibes, 올드타운)를 둘러싼 성벽 주위와 하이킹으로 천천히 도는데만 3-4시간이 소요되는 고급 저택들이 즐비한 캡당티브(Cap d'Antibes) 지역은 앙티브를 유명하게 만드는 핵심 여행 지역. 니스의 자갈 해변이 부담스럽다면 앙티브 구시가 주변의 해변(Plage de la Gravette, Plage du Ponteil, Plage Salis) 또는 앙티브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취급되는 Juan les Pins(매년 여름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것으로 유명)의 해변과 Cap d'Antibes를 둘러싼 해변을 강추한다. 특히 Juan les Pins에는 돈을 내야 입장이 가능한 Private Beach가 많지만 무료로 이용 가능한 해변도 제법 있으며 모래사장을 끼고 각종 칵테일과 음식을 서빙히는 해변 레스토랑도 많으므로 해수욕과 식도락을 동시에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앙티브를 여행한다면 구시가에 위치한 'Le Vauban'이라는 레스토랑을 강추(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한 사전 예약 필수)하며 샴페인 사전주를 포함하여 인당 최소 50유로의 예산은 확보할 것을 추천한다.
매년 열리는 영화제로 유명한 깐느(Cannes)에도 모래 해변이 있으며 영화제가 열리는 Palais des Festivals과 깐느 여기저기를 앙티브와 묶어 모래 해변에서의 해수욕도 즐기며 하루 정도에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6.jpg 앙티브 올드타운의 골목길



7.jpg 이젠 앙티브의 상징이 되어버린 Nomade (설치 예술)


8.jpg 앙티브 올드타운을 에워싼듯한 모래해변


9.jpg 앙티브 올드타운 전경




3. 마을 전체가 예술품인 생뽈드방스(Saint Paul de Vence)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인상파의 흔적과 프랑스 남부의 예술혼을 장신구, 페인팅, 조각 등을 마주칠 수 있는 에즈(Eze)와 쌩뽈드방스(Saint Paul de Vence)도 꼭 들러야 하는 마을이다. 특히 쌩뽈드방스는 샤갈의 마을이라고도 불릴만큼 마을 전체가 예술품이며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한시도 눈을 딴 곳에 둘 수 없을 만큼 좁은 골목마다 갤러리와 아뜰리에가 즐비하다. 등산하는 것 같은 느낌의 좁은 중세풍의 길을 따라 예술혼이 스며든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마치 중세의 한 도시로 시간 이동을 한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몰입도가 있는 마을. 집집마다 담벼락에 걸어둔 작은 우편함도 예술품으로 취급하여 아기자기하게 꾸며둔 집이 많을 만큼 예술이 ‘뼈속 같이 스며든’ 사람들이 사는 동네 같다. 샤갈 뿐만 아니라 마티스, 미로, 자코메티, 칸딘스키 등 현대미술의 대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인(매그 미술관(Fondation Maeght))도 천천히 들러보기를 추천.

10.jpg 쌩뽈 드 방스의 가파른 자갈길


11.jpg 쌩뽈 드 방스에선 흔한 예술품 가게


12.jpg 생뽈 드 방스에 세워져 있는 조각상. 자유를 갈망하는 날개짓 같은 역동성이 벼랑 끝에 뒤꿈치를 들고 서 있다


13.jpg 쌩뽈 드 방스에서 내려다 본 산속마을. 고즈넉함이 실로 예술이다.



4. 소소하지만 작은 기쁨들이 있는 꼬뜨 다 쥐르의 숨은 보석들

유리공예로 유명한 비욧(Biot), 피카소가 7년간 살았던 도시로 유명한 도기공예의 도시 발로리스(Vallauris), 프랑스 남부의 실리콘 밸리라고 할만한 소피아 앙티폴리스(Sophia Antipolis)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발본(Valbonne), 라벤더 등 프랑스 남부의 각종 꽃과 향수 재료 등을 직접 공장에서 가공하여 향수와 향비누 등을 만드는 과정을 투어를 통해 볼 수 있는 그라스(Grasse) 등 소소하게 둘러볼 도시들이 제법 많다.


5. 생트로페(Saint Tropez)


구항구(Vieux Port)의 까페와 멋진 해변이 일품. 생트로페의 해변만큼이나 핫하고 유명한 곳도 보기 드물다. 모래 사장이 예술이며 고급 요트를 구경하며 해변과 해변사이에 좁게 펼쳐진 산책로를 걷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달아나는 듯 하다.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고급진 부티크와 미식 요리가 넘쳐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며 인근 라마투엘에서는 매년 8월 재즈 축제가 열리는 것으로도 또한 유명하다.




파리에서 프랑스 남부로 이동하며 만나는 또 다른 프랑스

만약 파리에서 니스까지의 여정 중에 파리와 니스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TGV에 몸을 싣고 식도락과 교황의 흔적을 함께 느껴보고 싶다면 기차 여행을 추천한다.



6. 프랑스의 대표적인 식도락 도시, 리용(Lyon)


리용에 들른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리용 구시가(Vieux Lyon)에서 중세시대의 다양한 건축물과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성당은 필수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이와 더불어 리용은 식도락으로 유명한데 '부숑'에서 맛보는 전통 요리들이 그것.
'부숑(Bouchon)'이란 원래 프랑스어로 교통체증 또는 병마개를 의미하지만 리용에서는 현지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전통 요리를 선보이는 작고 친근한 비스트로(Bistro)를 의미한다. 체크무늬 식탁보, 레이스 커튼, 직접 쓴 메뉴판 등이 특징이다. 최고로 평가받는 '부숑'의 대다수는 부숑협회의 인증을 받는데 전통 꼭두각시 인형이 그려진 금속 명판을 걸어둔 곳을 찾아가면 된다. 리용은 매년 12월 초에 열리는 빛의 축제로도 유명한데 중세 건축물에 직접 다양한 빛을 쏘아 몰입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한다.


7. 교황의 피신처였던 아비뇽(Avignon)


꼬뜨 다 쥐르와 프로방스는 여름이 여행 최적기인데 마침 매년 7월 아비뇽에서는 예술 축제가 열린다. 프랑스 남부 여행을 할 때 아비뇽을 들렀다 가는 것이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겠다. 14세기에 70여년 동안 교황이 아비뇽에서 거처했으며 아비뇽 교황청이라는 걸출한 건축물을 유산으로 남겼다. 꼬뜨 뒤 론 (Côte du Rhone)이라는 프랑스 남부를 대표하는 걸출한 브랜드 와인이 배출된 것도 아비뇽 유수 때문이리라.

8. 프랑스 남부의 아침 시장

꼬뜨 다 쥐르와 프로방스를 들른다면 꼭 현지 아침 시장을 둘러볼 것을 강추한다. 신선한 과일, 야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치즈와 소시지(saucisson(소시송)이라는 소금에 절여 건조한 프랑스식 소시지), 각종 향신료, 향비누, 수공예품 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당 1회 이상 열리며 보통 토요일 아침에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아침 시장이 열린다고 보면 되겠다. 일요일 아침에는 시내 광장 인근에서 벼룩 시장이 열리는 곳도 많다.




마치며

“When I realised that each morning I would see this light again, I could not believe my luck.”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1917년 요양을 위해 니스로 이주했는데 매일 아침 마주치는 강렬한 햇빛에 늘 감사했다고 전해 진다. 많은 인상파 화가들을 사로잡고 예술혼을 불태우기에 남프랑스를 둘러싼 지중해의 코발트색과 햇빛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리라.

감히 주장해 본다.

누구나 남프랑스에 도착하는 순간 그네들의 감동이 온몸에 전율처럼 흐를 것이라고.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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