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기쁨보다는 만감이 점철된 하루
사실 앙티브(Antibes)에서의 첫날밤은 정확히 2009년 6월에서 11개월을 거슬러 올라간 2008년 7월의 어느날이었다. 출장으로 깐느에 숙소를 정하고 일주일간 주(회의)야(관광) 하면서, 하루는 앙티브 해변을 에워싼 올드타운에서 저녁을 먹으며, 올드타운 성곽에서 지중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곳에 살고 싶단 작은 소망을 머리에 심었던 것일까... 세계 어느 바다에 가도 탁트임과 시원함은 있을터이나, 중세 성곽을 둘러싼 바다를 나름 프렌치 레스토랑~~(주1)에서 - 샴페인도 한잔, 레드 와인도 한잔 하시면서 반 쯤은 뇌를 와인에 절인채 동경 아닌 동경으로 바라보았던 이유였던지, - 곧 며칠 후면 숨막힐 것 같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드라인을 앞둔 수험생의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보았던 이유였던지, 그런 몹쓸 소망이 마음에 턱하니 부지불식간에 뿌리를 내렸었다는걸 비로소 11개월 후에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주1)~~: 그 때만 해도 프랑스 사람들의 불어에는 항상 공명이 있다고 느꼈더랬다. 코가 유독 크고 높아서 인 것도 같지만, 마치 큰 배로 울림을 만들어 내는 테너마냥 큰 코 내부에서 울리는 공명이 항상 인상적었다)
그런 11개월 전의 기억이 눈 앞의 지중해와 교차하며, 또 마음한켠에는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이 흑백 사진처럼 교차하며, 내일은 여길 가야지 저길 가야지 하는 관광객 모드의 설렘과, 동시에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또 안개처럼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차때문인지, 80KG에 육박하는 묵직한 짐을 끌고온? 육체 노동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막연한 노곤함과, 시공간을 종횡하는 만감이 교차하며, 11개월 전의 기억 속의 장소들을 발이 기억이라도 하는지 한 곳 한 곳 지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닫게 된 것은, 11개월 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프랑스에서는 이방인이며 앞으로도 쭈욱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섬뜩한 현실감이었다.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가 아닌, 어른이 되어 타국 생활을 한다는 것은 영원히 이방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순간순간 한국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되고,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면 회귀본능?이 발동하여 드라마아닌 드라마를 써 내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었다.
이렇게 시공간을 초월하는 데자뷰를 현타와 함께 온몸으로 만끽?하는 동안, 앙티브 올드타운의 상징이기도 하고, 때론 이정표이기도 한 피카소 뮤지움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분주했듯이 발걸음도 쉼없이 올드타운을 훝고 있었던 것.
현재 머물고 있는 임시 숙소와 Vieux Antibes(앙티브 올드타운), 그리고 피카소 뮤지엄 등과의 상대적인 위치가 머리 속에 어렴풋이 들어오는 것 같다. Juan les Pins과 Antibes와의 상대적인 거리도 어렴풋이 머리에 들어오는 것도 같고.
어느새 모든 사물이 실루엣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땅에 닿을 듯이 나즈막하게 깔리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갈팡질팡 마음만 분주했던 하루가 또 허무하게 저물고 있다.
프랑스로 이주한 첫날은 이랬다. 마음의 분주함은 고스란히 장소만 옮겼을 뿐이었다. 오히려 고민거리는 더 늘었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여기는 어디인가? 충분히 고민했던 것일까?
...
나름 현지에 취직도 하고, 노력하여 쟁취?한 타국 생활인데 꺼내어 확인하기도 두려운 만감이 점철된 감정들로 사로잡힌 채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새로운 시작에 도전하고 있는 자신을 다독이기로 했다. 도전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정작 그 상황에 본인이 직접 처해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걸 이제는 어렴풋이 나마 알고 있지만, 그 때는 그렇게 작은 다독임으로 마음을 추스리며 첫날밤을 간신히 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