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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Oct 24. 2021

중세 마을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다 - 아를과 빛의 채석장

고흐의 마을 아를과 중세 요세 마을 레보드프로방스

고흐가 한 때 살았던 그리고 그의 유명한 그림의 소재와 배경이 되었던 곳 아를(Arles)

Paris에서 TGV를 타고 4시간 남짓 달리면 Arles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여름이면 라벤더, 해바라기 등 각종 꽃밭으로 유명한 Provence 지방에 속하는 곳으로, 아를을 찾았던 3월말 경에도 17-18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온화한 날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고흐의 대표작의 모티브인 밤의 까페, 그 현장을 목격하기 위해 포럼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여타 유럽의 많은 도시들처럼 도시의 중심에는 큰 이정표가 서 있다. 작은 분수로 아래를 장식한 탑이 그것인데, 그 주변으로 시청과 성당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유럽 중세 마을의 특징인 분수대 - 시청 - 성당으로 이어지는 마을 중심부의 특징이 이곳에도 어김없이 그대로 드러난다.  




고택의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아담히 만든 테라스가 정겹고, 세월의 흔적이 물씬 묻어 나는 벽들은 고대 로마의 흔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성당의 입구는 디테일이 예술인 양각으로 장식되어 있고, 큰 문은 화려한 색으로 묘하게 대비를 이룬다.  





아를하면 떠오르는 화가인 고흐.

그의 흔적을 찾고자,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찾아갔던 Le café la nuit (밤의 까페). 고흐의 유명한 작품인 Le Café Terrace, Place du Forum의 배경이 된 밤의 까페는 포럼 광장의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고흐의 그림처럼  밤에 강렬한 노란책 장막이 치렁치렁 걸쳐진 이미지는 아니었지만멀리서도  번에 고흐 그림의 배경이  곳이란  알아차릴  있었는데모랄까 고흐 그림을   앞에 바로 들이대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이미지로만 감상하던 장소가 바로  앞에 펼쳐지는 초현실적인 느낌을 형용하기가 어렵다. 머리속의 이미지가 갑자기 3D로 형상화되는 그 순간이 아직 생생하다.


드디어 밤의 까페. 3월말이었지만 아를 관광객은 여기 다 모여있는 듯 했다. 노란색 페인트는 매년 칠하는 것일까.


밤의 까페가 가게 이름이지만 가게의 큰 벽에는 더 큰 글씨로 까페 반 고흐라고 써 있다. 아마도 관광객 유치 전략인 듯 하지만, 너무 상업적인 느낌이 오히려 약간 거북스러웠다고나 할까. 밤의 까페라는 명칭은 까페 문에 살짝. 


고흐 작품의 명성답게 많은 관광객들이 까페 앞에서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으나, 까페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조차도. 아직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프랑스 남부 여행의 절정기인 여름은 아니여서, 그런가 보다 하다가, Tripadvior를 검색해 보니 이 까페의 음식이나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의견들이 대부분이었고 평점도 아를의 레스토랑들 중에서도 매우 낮은 수준에 해당했다.


고흐 그림의 모티브가 되었을 뿐, 그 명성에 준할만큼의 서비스와 음식맛은 아닌 그곳. 왠지 모를 씁쓸함을 뒤로 하고, 인근의 다른 까페로 자리를 옮겨 커피와 크레뻬를 즐기며 아를에서의 한 때를 넉넉히 시작했다. 포럼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 구경과 함께.


포럼 광장의 주변 모습, 밤의 까페 색감이 유독 도드라진다.




Arles의 골목골목은 Antibes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Antibes와 Arles은 크게 Provence-Alpes-Côte d'Azur 로 묶여 있는 지역이라, 지역의 특성은 곳곳에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프랑스도 Paris 중심의 상당히 중앙집권적 파워가 강한 나라여서, 파리를 벗어나면 다 풍경이 대동소이하다. 각 지역마다 느낄 수 있는 개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좀 과장하자면 파리를 벗어나면 다 시골풍경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마르세유, 리용 등 몇몇 큰 도시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고흐가 살았던 곳, 그리고 그의 그림의 배경이 된 도시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특별히 다가왔고, 그래서 그의 흔적을 찾는 더 아기자기한 묘미가 있는 곳이긴 했다. 아니 그 기대감이 아직 마음에 도사리고 있었다고 해야 할지.






Arles도 큰 도시가 아니어서 포럼 광장을 중심으로 걸어서 소소히 다닐만 했다.

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Arles은 유명한 원형경기장 근처에 도시 전경을 다소 나지막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작은 언덕이 있는데 주변에 고풍스러운 성당도 위치해 있었다.


고대 로마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아를. 원형경기장은 대표적인 유적 중 하나이다.


Arles역에서 원형경기장까지는 Envia 버스를 이용하면 되는데 노선 A를 이용하면 무료일 뿐더러 컨퍼런스가 주로 열리는 Palais des Congrès까지도 약 20분이면 이동할 수 있었다.

프랑스 남부 지방의 집들의 특징인 덧문도 각양각색. 창문틀을 소소히 장식하고 있는 꽃 화분들. 프랑스 남부 사람들의 소박한? 여유로움이 한껏 부러운 오후였다.


프랑스 남부의 집들엔 이렇게 덧문이 보편적이다. 덧문의 색깔도 아주 다양하다.



엄연히 아를 주민의 가정집인데 마구 사진을 찍어 댔다.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이 내 집 사진을 찍는 게 그렇게 유쾌하진 않을터인데.  담쟁이가 무성해질 6월 경 이 담벼락의 변화된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어느 덧 거주 지역을 벗어나니 큰 올리브 나무들도 보이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지는 않지만, 나름 전망대 스러운 장소를 발견. 마치 4-5층 쯤에서 1층을 내려다 보는 느낌이지만 높은 건물이 없는 평지를 관망하기엔 적당한 높이였다. 


오래된 지붕. 구멍이 송송난 세월의 흔적.


꾸밈없는 성당의 모습. 자연스럽게 자라는 식물들과 나무들. 일부러 이쁘게 보이려고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 아름답다. 

화려한 다른 유럽의 성당과 다르게 소박한 외관의 성당이 왠지 쓸쓸해 보이지만, 주변 경관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를에서 차로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Les Baux-de-Provence(레보 드 프로방스)는 오래된 석회암 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요새와 같은 중세 마을이다. 자연이 빚은 돌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간직된 곳이다.

프로방스 지방이 라벤더, 해바라기 등의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꽃밭이나 바다 그리고 고흐나 고갱의 흔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도 하지만, Les Baux-de-Provence 방문은 오랜 기간 빚어진 거대한 돌들과 돌산이 함께하는 산속의 아름다움도 그대로 간직한 곳임을 또 알게 해준, 새로운 발견이었다. 비교적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Les Baux-de-Provence. 그러나 프로방스의 숨은 진주 같은 곳이다.






아를에서 Les Baux-de-Provence로 이동하는 중에 고흐의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 전나무 그리고 까마귀떼, 넓은 평야 등이 고흐의 그림을 한장 씩 감상하듯이, 눈앞에 고흐의 그림들이 그대로 펼쳐졌고, Don McLean의 Vincent라는 곡이 절로 입에 흥얼거려져서 이동 내내 그 음악을 듣던 기억이 새롭다. 그의 슬픈 삶과 그의 정성어린 그림들과 눈 앞의 풍경이 마음 한 켠을 자극하며 코끝이 찡한 순간들이었다.  순간순간 창밖의 풍경과 고흐의 그림이 교차하는 듯한 묘한 시공간의 결합을 경험하면서 어느 덧 Les Baux-de-Provence에 도착.


Les Baux-de-Provence의 자연이 빚은 돌산 풍경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압권은 까리에르 드 루미에르(Carrières de Lumières). 구지 번역하자면 빛의 채석장? 쯤  될 듯하다. 실제로 오래된 채석장 (더 이상 채석은 하지 않지만)의 넓은 공간에 200여개의 HD프로젝터와 스피커를 빈틈없이 달아서 그림, 비디오 등을 Projection하는 장소로, 소개하는 분의 말씀은 그림이나 아트를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일깨워 주는 곳이라고. 메타버스의 오프라인 버전이라고 해야할까.


일단 입장을 하면 안내가 있을 때 까지, 채석장 안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사실 채석장 안의 공간감도 색다른 경험이어서, 그 안을 구석구석 살피는 재미도 쏠쏠), 이어 프로그램 안내를 받게 된다. 이후 그 날 Projection하는 영상과 음악이 시작되는데........


드디어 빛의 채석장에 도착. 입구는 나름 소박하다.


소박한 입구와는 다르게 들어서자 마자 볼륨감의 압박. 거대한 지하 공간에 들어온 듯 채석장의 흔적들이 모든 벽면에 가득한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괜시리 엄숙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이 만든 거대한 흔적과 이를 가공했던 많은 사람들의 자취가 상상의 나래를 자극했기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거대한 힘에 매몰되는 느낌.


자연스럽게 채석장 공간과 담소하듯이 인사를 나누고 있는 동안, 이내 오늘 펼쳐질 공연에 대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소용돌이치는 내 마음을 부여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작은 입구에 비해, 빛의 채석장 내부의 볼륨감은 압도적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30여분간 그 시대 음악과 함께 감상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온몸으로 채석장 전 공간을 느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 곳에 머물며, 그림이나 벽화, 혹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채석장 구석 구석 흘러다니는 영상을 내 자신도 함께 이동하면서 발견하듯이 감상하는 형태라 색다른 경험이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감상이었다.

 특히 바닥에 중세 시대 글자가 흘러갈 때는 내가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고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의 천사들이 기둥에 비치며 하늘로 승천할 때는 나도 하늘로 따라 올라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이 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몰입감으로 전율할 정도였는데, 새로운 아트 감상의 방법을 톡톡히 체험한 공간이 아니었다 싶다.

 내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채석장 모든 곳에 흩뿌려지듯이, 채석장 공간과 나의 분신들이 순간 결합하는 듯한 묘한 체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두운 공간에서의 영상을 긁어낸 사진들로는 형용해낼 수 없음이 실로 아쉽다.





어쩌면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 혹은 전시장 혹은 공연장이라고도 할만한 Carrières de Lumières. 그곳에서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작품 감상은 실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그 공간 안에 어디에 서 있던 지 황홀한 빛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지만, 방문하게 될 경우에는 그 넓은 공간을 천천히 걸으면서 달라지는 화면 구성과 작품의 여러 면들을 살펴보는 것을 강추한다.


처음엔 이게 모지?하는 멍먹함에 넋을 놓고 정지해있었더랬다. 어느 정도 감각들이 적응이 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천천히 걸으며 감상을 시작하긴 했었는데, 채석장 안이 나름 넓고 감상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어, 모든 공간을 샅샅이 훓어내지 못해 못내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양한 작품들을 여러 차례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작품 속으로 실로 빠져들어갈 것 같기도 하고, 작품이 공간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작품들이 분해되어 벽으로 타고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한 색다른 몰입감은 정말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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