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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Dec 25. 2021

릴랙스- 크리스마스!



안녕. 오랜만이지.


성탄의 밤, 어떻게 보내고 있니?

(이 편지는 무려, 약 한 달여에 걸쳐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일단 첫인사는 오늘 시점으로 잡았어. 이후부터 시점 왔다 갔다 할 예정ㅎㅎ)



네게서 편지를 받은 이후 나에게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 이것도 써야지, 이 얘기도 써야지 생각하다가 글 쓰기가 더디어졌네. 미안. 많이 기다렸지?

지난번 통화했을  마치 인터뷰하듯 서로에게 질문을 늘어놓았던  생각나. 질문은 관심의 방증이라고 하잖아.  사실 네게서 연이은 질문들을 받으며  행복했다?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을 기억해주고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주는   고맙더라고. 문득 인터뷰어가   모습을 떠올려 보고 있어. 분명 사려 깊고 진지하게 질문을 건네겠지. 너의 인터뷰이는 나처럼 그저 질문을 받기만 했는데도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을 거고.



자주 생각해왔지만 너의 편지를 읽으면서 또다시 느낄 수 있었어. 네 주변에는 너처럼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것. 진실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동심원이 바로 너인 것 같다고 말이야. 너를 둘러싼 둥그런 물결 사이에 나도 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참고로 이 편지글의 처음 제목은 ‘좋은 사람들의 동심원’이었어) 그리고 내 말들로 서늘한 시절을 버틴다는 말이 다시 나를 버티게 했어. 너는 나의 자매가 맞단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문자 그대로 자매결연식이라도 해야겠어. 맛있는 케이크도 썰면서 말이야.



그리고 나는 여전히 너의 ‘홧김 환영해. 사람이니 투정 부릴  있지! 나는 네가 무방비 상태로도 안심할  있는 통로가 되고 싶어. 네가 염려하며 썼던 말도 이해하지만,  역시  못지않게 수많은 교역자들을 겪어봤기 때문에  세상이 곡해될  걱정하지 않아도 . 게다가   세계에 관심이 없단다.  관심사는 너의 마음, 너의 상황, 너의 환경이야. 너의 경험을 듣는 것으로 해당 분야의 전신을 가늠하진 않아. 그냥,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는  알아주면 좋겠어.



네가 쓴 편지를 다시 읽는데(몇 번째인가!), 처음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다시 다가와 깊이 스미는 느낌이 들었어.

너도, 나도 참으로 살아있는 인간이구나. 네가 세례/입교식  느낀 부끄러움과 깨달음, 수용에의 감각, 공동체를 이해하는 마음까지  모든 과정과 면면이  반짝거리는  같더라.

건강한 삶에는 좀처럼 굽히지 않는 일관적인 의지, 때에 따라 변화하는 적응성이 둘 다 필요한 것 같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네게는 무척 탁월한 유연함이 있고, 그것이 삶의 굴곡과 함께 오르내리며 너를  아름답게 만드는  같아. 잔뜩 힘이 들어간 어린 사모의 긴장이 풀리고 조금  느긋해진, 용납받고 있다는  받아들이는 지금의  모습이 정말 좋아 보여.


남들이 보기엔 생각이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는 우리지만 이렇게 직면과 깨달음, 진보를 물 흐르듯 이어갈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거야. 생각이 많은 게 아니라 민첩한 거지. 말과 말 사이, 내 마음의 반응과 반응 사이에서 어떤 흐름을 발견하고 맺을지 끊을지 방향을 바꿀지 정할 수 있는 건 진짜 귀한 능력이 아니니. (너에게 이렇게 쓰면서 내 마음도 위로받는 중이야)





얼마  마음의 안정이 필요해서 별다방 신메뉴라는 ‘핑크 캐모마일 릴렉서 주문해 처음 마셔보았어. 옅은 농도의 박카스를 뜨겁게 끓여놓은 듯한 맛인데 이름이 마법을 거는지 조금씩 ‘릴랙스되는 느낌이 들긴 들더라. 자주 듣고 생각하는 단어들은 마음을 장악할 힘을 얻는 걸까? 그렇다면 당장 나부터 ‘장안정으로 개명하고픈데 말이지. 그게 당장은 어렵다면 영어 이름부터 ‘릴랙스 으로 삼고 싶을 만큼, 나는 요즘 안정이 간절히 필요해. 네게서 세심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  나아질까? 너와 통화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있어. 너를 생각하기만 했는데 마음이  편해진다.




나는 얼마 전에 운전면허를 땄어.

경증의 범불안장애가 있는 나는 머릿속으로   없이 재난 영화 같은  찍곤 .  머릿속 영화에서 가장 위험한 장면이 바로 운전씬(!)이야. 핸들의 작은 각도 차이 하나로 목숨이 왔다 갔다   있다는 것, 쌩쌩 지나가는 온갖 위험의 가능성들 사이를 시속 70킬로로 리는 상상만 해도 너무 무서운 거야. 주변에서 아무리 면허 따라고, 해볼 만하다고 말해도 마음이  닫혀 있었지.  있지, 정말로 살고 싶어서 운전을 배우지 않은 거야. 횡단보도 건너려고 대기하면서도 보도블록 아래  걸음 앞에 죽음이 날름거리는  느끼던 내가 운전을 하다니. 1차선 도로를 달리다가 맞은편에서 차가  때마다 이렇게 생각할 거야.

차 한 대가 휙.

‘죽음이다!’

다음 차가 휙.

‘죽음이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운전을 하겠어? 난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어.



가족과 지인들이 잔소리처럼 면허 따라고 말해도 꿈쩍도  했는데 희한하게도 시어머니 당부에 마음이 열리더라고. 나의 시어머니는 우리 부부가 고민하거나 걱정하는 사연을 찬찬히  들어주신 후에 단호하게 안심시켜주실 때가 있거든.  단호한 위로가 나는  좋더라고. 나의 양친은 불안이 높은 편이셔서  것보다 고차원의 걱정 목록을 나열하시지만 시어머니는 강단과 배포가 남다르신 분이라 대화할 때마다 신선한 자극이 . 용기도 얻는  같고.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만약 말씀드렸다면 어떻게 대답하셨을지 상상만 했는데,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위로가 됐어.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실  같아서. 나는 누구라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길 기다렸나 .



시험 치를 때마다 말 그대로 ‘화이트 아웃’을 경험했어. 매번 스스로 제어가 안 될 만큼 몸도 마음도 떨리더라고. 내가 대체 뭣하려 수십만 원 들이며 이 고생을 하나, 면허 없을 때도 편했는데! 스스로를 탓하며 시험을 준비하고 치른 후, 드디어 면허를 땄어. 도로주행까지 합격하고 처음으로 시어머니께 전화해서 소식을 전했어. 필기, 기능, 도로주행까지 한 번에 다 붙었다고 자랑을 했더니 어머니가 “역시 내 며느리!”라며 기뻐하시더라고.

보통은 불안을 신체 일부처럼 지니고 사는데, 때론 불편하고 아프기도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지켰다는 생각도 들어. 불안하니까  집중하고,  준비했거든. 불안은 나를 자만하지 않게 붙들기도 했어. ‘언제라도 사고가   있다 생각이 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 후 곧바로 200만 원짜리 중고 경차를 구입했어. 따뜻하고 안락한 나만의 작은 공간이 생겼다는 것 이상으로 내겐 혁신적인 일이었어. 늘 누군가 움직여주기만을 기다리던 내가 이제는 주저하지 않게 된 거야. 시간을 쪼개어 매일 버스를 기다리고, 남편에게 읍소해야 이동할 수 있던 삶이 끝난 거야. 처음으로 혼자 운전해 도서관에 가기로 했던 날, 남편은 ‘아직 이르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너무나 혼자 해보고 싶었어. 그리고 당당하게 주차해서 인증샷도 찍었지. 그 후에야 비로소 직접 운전해서 출퇴근을 할 수 있게 됐어.



처음 혼자 내 차를 운전했던 날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해. 그날 실은 조금 울고 싶었다? 결과 여부를 떠나 면허를 따는 과정 자체가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웠고, 면허 취득 이후에도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패닉이었거든. (내가 운전하면 옆자리에서 남편이 허공에 에어 브레이크를 밟더라고) 이제야 스스로의 힘으로 이동할  있는 사람이 되다니.  알을 깨고 나온  같았지. 알을 깼다면 일단 시원하게 울어야 마땅하지 않겠어?





그 울음을 참아서 이런 걸까. 나는 눈가 아래에 눈물을 적립한 것처럼 광대뼈 밑이 욱신거리고 있어.

릴랙스가 필요하다고 한 이유도 최근 내 상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인데 무기력증과 우울, 불안이 심연에서 저들끼리 꼬이며 똬리를 틀고 있는지 내내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아파. 이런 시간이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그런지 이젠 꽤 덤덤히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에서 나를 분리시킬 수 있게 됐어. 그래서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황금 육아시간에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거야.



요즘은 운전이 좀 익숙해지니 자꾸 멍 때리고 딴생각을 하곤 해. 내가 팔다리를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지 조금 걱정도 돼. 뇌가 운전 중에 온갖 위험 상황을 추측하며 재난 영화를 상영하느라 바빠 그런가 손과 발에게 명확한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여태 사고 없이 돌아다닌 게 신기할 따름이야. 전 세계 수많은 ADHD인들은 어떻게 운전을 하는 걸까?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계속하고 뭘 해도 대체로 야무지지 못한 걸 아니까 자꾸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곤 해. 아까는 학교에서 종이를 칼로 재단하고 있었는데 그 광경을 보던 어린이가 “어휴, 선생님이 그거 자르시는 거 보니까 제가 다 불안해요.”라고 하더라고. 그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아. 나만 나를 불안해하는 게 아니구나. 보는 사람도 내 엉성함을 눈치채고 있구나 싶어서.



얼마  라면을 끓여 담은 그릇을 옮기다가 미끄러지면서 휘청거리다 뜨거운 국물에 손목을 데었어. 반사적으로 테이블 위에 그릇을 내던졌고 라면이 쏟아지며 사방팔방에 튀었지. 불행히도 테이블 위에 있던 아이패드 키보드에도 국물이 스며들었어. 올해  비슷한 상황에서 라면 그릇 옮기다가 침대 위에 쏟았던 ,    노트북 키보드에 우유를 엎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스스로를 탓했어.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내가 너무 지긋지긋한 거야.  일이 있고 일주일  일종의 치유 의식으로 다시 라면을 끓여 테이블로 가져가는데 옆에서 남편이 조심하라면서 나보다  불안해하더라고.



언제든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불안, 주변 사람마저 불안하게 하는 성글기 짝이 없는 나를 향한 미움이 뒤섞이며 마음을 진흙탕으로 만든 것 같아. 운전에 대한 마음도 양극단이야. 굉장히 편하고 좋으면서 너무 두렵고 긴장돼. 운전을 매일 하면서 거북목이 생겼고 그것 때문에 질기고 질긴 두통에 시달리고 있어. 일상생활 기준 최고치의 긴장을 매일 반복하는 거야. 나의 구식 경차는 비탈길을 오를 때 우에에엥 소리를 내면서 아주 힘겹게 올라가거든. 그럼 나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어. 일부러 의식하고 힘을 풀지 않으면 출발부터 도착까지 목, 어깨, 허리에 힘이 바짝 들어가. 왜냐하면 나는 언제든 실수할 수 있는, 스스로도 못 믿는 사람이니까. 내가 무서워. 작은 실수에도 지나치게 나를 탓하게 돼. 그럴 땐 뻔뻔한 척 연기 정도는 해야 마음이 가다듬어지더라고.



그러다 보니 자꾸 죽음을 생각하는 거야. 죽고 싶다는 게 아니라,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미칠 듯한 두통, 어지럼증(거북목 증상이래), 굳어버린 근육과 관절들, 급격한 체력 소진, 불안감 폭발, 주의력 급감… 운전이 이렇게도 전인적으로 괴로운 거였다는 걸 난들 알았겠어? 처음엔 이유도 모르고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습관만 더해가고 있었지. (이를 테면 밤에 늦게 자기, 유튜브 많이 보기, 안 씻고 자기 등등) 다행히 직업과 가족이 있어서 마냥 뭉개진 못하고 해야 할 일들만 겨우 겨우 해냈어. 그러다 소화도 안 되고 정신도 몽롱해지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어. 무엇에도 집중을 못하고 붕 떠 있더라고. 그날은 남편 없이 아이들 태우고 운전하던 중이었는데 이러다 사고 날 것 같은 거야. 그래서 놀이방 딸린 동네 식당에서 외식을 했어. 남편도 곧 왔고. 아이들이 놀이방에서 노는 동안 천천히 밥 먹으면서 남편과 대화하는데 그제야 조금 숨통이 트이는 느낌. 오늘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으니 혼자 카페 가서 쉬다 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핑크-캐모마일-릴렉서를 마셨던 거야.




그리고 바로 어제. 정말로 죽는 꿈을 꿨다?

정말 생생하고 섬뜩했어. 무슨 병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점점 정신이 희미해지며 죽어가고 있었고 (안 본 지 한참 된) 고모가 내 팔을 보며 ‘저승꽃’ 보인다고 하더라고.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가 옆에 앉아 나를 걱정하시기에 내가 괜찮다며 할머니 등을 쓸어내렸는데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 내 딸과 아들은 당시 얼굴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음성 녹음으로 유언을 남겼어. 끝까지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지만 항상 지켜보겠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그리고 남편 어깨에 힘 없이 기대서 죽어가고 있었지. 근데 난 말이야. 정말 죽기가 싫었는데 어디선가 들은 성숙한 자세를 흉내 내며 억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아.

내가 진짜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현재까지 살아온 삶이 신자로서 부끄럽고 후회가 되더라.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죽음에 대해  몰랐고 그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몰랐어. 빨려 들어갈  생생한 꿈에서 정말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번쩍 눈을 떴는데 마치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헉헉 숨을 쉬며 얼굴과 몸을 더듬더듬 만져봤어.  살아있나? 뭐가 진짜지? 현실을 깨달았을  감격스럽기까지 하더라고. 아직 아이들이 곁에 있어서 속으로외쳤어. 살았다!  번째 목숨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잠들까 하다가 그 꿈이 이어져 진짜 죽을까  아예 일어나버렸어. 그리고 ‘내가 죽는 ’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오는 으로 검색했더니 (괜히 해봄) 되게 좋은 길몽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길일이 되었을까? 오늘은 용무가 많고 운전도 오래 해서 저녁엔 그냥 쉬고 싶었는데 막판에 장 보러 다시 마트 갔다가 처음으로 구조물에 박았어. 첫 사고! 내 주변에 세 방향에서 차들이 나가려고 날 기다리는데 주차 각도 맞추기가 오늘따라 너무 어렵더라고. 내 옆칸 suv에서 한 중년 여성분이 ‘나도 그 마음 알아요’의 눈빛으로 자리를 터주셨어.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난 창문을 내리고 목례까지 했지. 극단적으로 긴장해서인지 허리가 너무 아팠어. 그런데도 집에 와서 아이들 소시지 야채볶음이랑 어른용 곱창볶음을 만들어냈어. 투덜거리면서 요리했는데 결과물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마음이 금방 풀리더라.


오늘따라 아이들이 잠들려 하지 않고 첫째는 무려  시간 동안 상상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그러다 겨우 씻겨서 재우는데 “무서운  꿀까   자겠는데 어떡해요?”라고 묻더라.  속마음은 곧바로 대답했어. “나도 그래.” 하지만 괜찮을 거라고 애써 아이를 도닥이며  마음도 같이 잠재웠지. 크리스마스의 밤엔 어떤 꿈을 꿀까?



그리고 일어나 이 편지를 마무리하고 있어.

(오늘마저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되어도 일단 발행하려 해. 결연한 의지!)



네가 전에 권한 책 <메리에게 루이스가>를 나도 읽어봐야겠어. 분명 요즘의 내게도 위안이 될 것 같아.


밖은 지금 상서로운 바람이 불지만 네게도, 내게도 성탄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길 빌어. 풍성하고 감사한 날이 되면 좋겠어.




‘메리 크리스마스’와 같은 의미의 인사를 남길게.

릴랙스- 크리스마스!






자기 전에 아이가 산타에게 편지를 썼어. 마침 내가 준비한 선물도 바로 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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