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뜬 May 09. 2020

5월 9일

23:05 이정표를 만드는 까닭

삶이 미숙하여 완전하지 못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 제게 당신은 거부할 수 없는 비처럼 쏟아 지셨습니다.
늘 알고 있었습니다. 삶이란 거부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임을.
당신이 나타난 것도 그런 종류의 일이었죠.


내가 가장 먼저 이해한 운명은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었던 고통들이었습니다.
태어남으로서 인간의 시계는 죽음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니 계속 삶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서 집중하도록 만들었었죠.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협소한 계곡처럼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그곳에 물이 불어나 범람하면 숨조차 쉬지 못한 체 어디론가 흘러가 버리기도 했었습니다.
차라리 치열하기만 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시궁창처럼 더러운 것들도 함께 떠내려왔죠.


당신이 나를 처음 본 날. 어쩌면 나는 휩쓸려 떠내려 온 상태였을지 모릅니다.
살아보겠다고 겨우 고개를 뻐끔 내민 나와 당신이 눈을 마주쳤을 것이죠.
당시 대부분의 삶이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난, 살기위해 몸부림을 치는 중이니까요.

때로 당신이 내 앞에 마주 않아 침묵을 하거나 기운 없는 모습을 보면 애달픔을 느껴요.
내가 경험했던 것들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와 비슷한 종류의 것들이 당신을 지나갔고 지나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니 나는 표지판을 하나 만듭니다.
나 역시 이 길이 어디에서 정착할지 머무를지 모르죠.
그래도 어떤 길들은 내가 먼저 길을 걸어간 적이 있음으로 마땅히 이정표들을 준비합니다.
적어도 당신은 덜 아프길 바라며 덜 상처 받고 덜 우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오직 당신을 위한 이정표들입니다.

때로는 여름밤의 풀벌레소리로 당신에게 전할게요.
어떤 날은 작은 보슬비 소리가 되어 대지를 토닥이는 손길처럼 다가가겠죠.
또 어느 무렵에는 노을의 붉음처럼 휴식이 왔음을 알릴 겁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은 그저 조용한 풍경으로서
잠들고 싶을 만큼 평온한 하루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이런 이정표들이 당신의 시간들을 쫒기지 않고
넉넉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바라요.
내일이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되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