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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우다 May 27. 2021

1화> 자를까, 말까?



주말 아침부터 단잠을 깨우는 문자가 왔다. 정신이 번쩍 드는 문자 내용이었고 문자를 보자 어떠한 말들을 해야 할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2년간 공들여 맡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뜬금없이 오전 11시에 내가 모르는 회의를 열겠다는 것이다.
이건 명백히 통보였다.    

“피디님 팀장님한테 11시에 회의하겠다고 허락 맡았습니다. 회의 가능하세요?”

다짜고짜? 오전 9시에 이런 문자를 받은 나는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했고 회의를 참석하지 못하는 피치 못 할 나의 상황을 알렸다.

“오전에는 제가 약속이 있어서요”
“피디님이 안 계신다고 회의를 진행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요. 저 없이 하시라고요”

그때부터 텔레그램 대화 창은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됐고 가슴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전쟁을 나가기 전 총 쏘는 법을 배우지 못 한 아이였고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 프로젝트에 책임감을 가져달라고 말했고 이 팀을 위해서 그녀가 한 행동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이 팀을 위해 너는 뭘 했는지 돌려서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나 또한 그녀의 공격에 듣고만 있지 않았으며 받아쳤다.

“그렇게 나오시면 저도 그동안 한 것들 말해볼까요?”

네가 그렇게 유치하게 나온다면 내가 그동안 이 프로젝트에 공 들인 걸 나열해 볼게. 나도 지지 않고 나열했다. 그녀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얼마나 애쓰고 공들여 온 지 너무나도 잘 안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녀의 공격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녀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나와의 텔레그램 대화창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말았다.

“이제 그만 하시죠”

뭘 더 그만 하라는 건가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이 프로젝트를 놓으라는 것일까? 이 싸움을 멈추라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이겠지.

대화창에 장문의 심경을 쓰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대화 내용이 삭제되었고 또 한 번의 예고도 없이 핵 펀치를 맞았다. 우리가 나눴던 전쟁의 흔적은 사라지고 말았고 너무나 무례하고 일방적인 태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나는 분했지만 더 이상 그녀를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동안 쌓인 것들을 이번 기회에 확 풀 걸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고 핸드폰 액정 위의 손가락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어쩜 그녀와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이대로 끝내길 서로 바랬던 것 일 수도..
그렇게 그녀와 일단락된 전쟁은 두 손에 든 핸드폰을 테이블에 놓자 막을 내렸다.
이제 어쩌라는 것인가..
주말 아침은 엉망이 됐고 그때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뭘 해도 분했고 화가 치밀었다가 결국은 자책으로 떨어졌으며 계속 나의 감정은 오르락내리락거렸다.
애인과의 약속 시간이 다가왔고 화장실에 있는 나를 보는데 긴 머리가 눈에 가시처럼 거슬렸고 결국 드는 생각은 이 머리카락을 자를까, 말까? 였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머리로 쏠리게 됐다.

드라마에 보면 주인공의 심경을 대변하듯이 상황이나 겪은 환경에 변화가 있게 되면 머리를 자르고 나온다. 그리고 결심했어! 뭔가 단단히 새롭게 변한 모습으로 화면에 나오게 된다. 그날 내가 그랬다. 뭔가 나에게 변화가 필요했고 그 변화를 당장 실현에 옮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타일을 바꿔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그녀로 인한 안 좋았던 감정이 애인을 만남으로서 사그라져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를 자르는 대신 사람한테 받은 감정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풀기로 했고 뜻밖에 애인을 만남으로서 기분은 전환이 되었다. 나의 긴 머리는 앞으로 좀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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