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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용 Oct 15. 2024

“도와주세요.”


    도와달라는 말이 내게는 그리 쉬운 말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장녀가 집안일의 모든 대소사를 챙기며 모두가 그들에게 의지하는 현상을 보아 한국 장녀들을 “K-장녀”라고 흔히 지칭하곤 한다. 나도 K-장녀답게 많은 짐을 얼싸안고 있지만 이에 대한 불평불만을 표출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살다 보면 가끔은 나도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고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결국 나를 위해 선을 그어야 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습관 탓인지, 사회적인 가르침 때문인지 그 말이 입에서 잘 떨어지지를 않는다. “도와주세요.” “나 도움이 필요해.” 이 말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왜 이 말이 그리도 어려운 건지 나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이 실망할 거라는 생각, 내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나의 나약함을 보았을 때 느낄 불안감이나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마지막으로 쓸데없는 나의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내가 오만해서 그렇다는 결론으로 다다른다. 내가 도대체 어떤 대단한 사람이길래 남들이 내게 의지할 수 있다고 믿는 건가? 그리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대단히 잘 해왔다고 그들이 실망하겠는가? 

    더불어서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는 건 결국 내 자신이 나에 대해 떳떳하지 못한 거고, 내가 나의 약점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내 나약함을 볼 자신이 없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정말 나약한 게 아닐까? 

    어느 책에서 말하기를 누군가가 가장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일은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여러 내면의 이유와 생각으로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선택과 행동은 내 상태와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납득한 후에 적절한 도움을 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임상 심리를 전공하기도 했고 양극성 장애로 인해 정신과 치료와 심리치료를 근 7년간 받아왔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든 친구들의 고민 상담을 많이 듣게 된다. 이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자신이 느끼는 우울감, 죄책감, 심할 경우에는 자살 충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나 용기 있어 보이는지 모른다. 자신의 약점과 치부 아닌 치부를 드러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움을 청한 이들에게 나는 적절해 보이는 방향으로 최대한 도움을 많이 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는 분들을 통해 정신과를 추천하기도 하고 많은 경우에는 임상 심리전문가를 연결해 주곤 한다. 그렇게 그들의 용기 있는 선택은 언제나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진다. 

    도움이 필요한데 말을 하기가 어려울 때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를 어렵게 만드는 나만의 이유를 탐색해 봐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내가 도움을 얻어 더 나은 상태로 가게 되는 걸 막게 하는 생각들이 뭐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야만이 용기 있게 도움을 청하고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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