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나날들이 있다. 창피했던 일, 슬펐던 일, 기억하기도 싫은 일이 내 머릿속에서 가끔 고개를 살며시 드는 것 같다. 그래서 차곡차곡 이러한 기억을 무슨 일이 있어도 열어보지 않는 어두운 지하 창고 같은 곳에 처박아 두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없으면 지금의 나는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마음의 근본은 우리 과거로부터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의 자녀로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자라, 어떤 성장 배경을 가졌는지가 오늘날의 '나'를 이룬다. 즉 과거는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안 좋은 일이라서 그 기억을 잊어버리려고만 한다면, 나 자신의 한 부분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 아닐까?
지방 사람이 서울로 상경해서 사투리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기도 하고, 이에 따라서 취업 등에 타격이 있을까 봐 그러는 것 같다고 추정을 해본다. 이러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을뿐더러, 스스로 자신의 출신에 대해 조금은 창피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센 사투리 억양으로 인해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곤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이 사투리를 완벽하게 고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시골 출신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과거는 표면만 바꾼다고 그 속내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내게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럼 어쩌라는 말이냐며. 나는 내 아픈 과거든, 자랑스러운 과거든, 내 과거로 인정하는 길을 택하고 싶다. 그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니겠는가? 또 만약 지금의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내가 왜 불행한지 알기 위해 내 과거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치유의 과정을 거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역시 외면한다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 과거니까 말이다.
나는 늘 고민하면서 살고 싶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1에서 시작해서 100을 간 사람과 90에서 100을 간 사람을 비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이 내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한 지표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어디로 향할 건지에 대한 고민도 빼놓지 않고 싶다. 오늘이 지나면 어제가 되기 때문에 내 과거가 성장의 곡선을 그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면도 있지만, 이 모든 고민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누가 되고 싶은지 명확하다면, 나의 과거는 달갑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아무리 안 좋은 과거라도 그것은 내가 걸어온 길의 지표가 될뿐이고 나는 오늘도 내일도 내 목표를 향해 더 나아갈 것이기에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