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나 껌처럼 남는 것
태평동, 주택, 기찻길, 골목의 맨 끝, 파란 대문, 그 옆엔 작은 화단, 화단엔 분꽃과 나팔꽃, 그 옆엔 무화과나무, 대문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 작은 단칸방 문 두 개(주로 모르는 사람에게 세를 줬음), 그 옆에 할아버지 집 문, 창문의 창살은 마름모, 그 앞으로 보이는 마당엔 거대한 감나무, 감나무 옆엔 작은 수돗가,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창고, 창고에서 꺾어지면 .... 다음부터 기억 안 남.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 방 두 개, 부엌, 화장실. 거실엔 대나무 매트, 선반엔 잡동사니, 작은 방은 문에 나 손가락 잘렸던 곳, 방 안엔 큰 자개장과 작은 책상, 책상 서랍엔 오래된 일본 잡지, 그다음 큰 방. 정면에 오래된 텔레비전과 서랍, 그 옆엔 전화기, 방 오른쪽은 이부자리, 왼쪽은 이불장과 옷장, 그리고 부엌은... 잘 가지 않아서 기억이 흐릿함. 부엌 옆은 화장실, 벌레가 자주 나옴(바퀴벌레 귀뚜라미 달팽이 등), 양치용 컵은 노란색 바가지, 세로로 세워놓은 빨래판.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잘 때면 나는 밤 12시까지 TV를 봤다. 두 분은 한 10시쯤 잠드셨나. 12시엔 두 분이 말하지 않아도 TV를 끄는 게 약속이었다. 그때 봤던 프로그램은 무한도전 논두렁 달리기, 신해철의 데미지, 케이블 싸구려 성인 예능 프로그램. (이건 두 분이 자는지 확실히 확인하고 봐야 했음)
어느 날 밤이었다. 잠든 할머니를 깨워서 두부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는 부엌에 가서 뚝딱 두부김치를 해오셨다. 그 두부김치를 눈앞에 두니 갑자기 먹기 싫어졌다. 하지만 할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일 아침에 먹어도 되겠냐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러라고 했다. 아침에 먹었던가는 기억이 안 난다.
할아버지가 없는 더운 여름이었다. 보통은 방에서 자는데, 할머니가 오늘은 더우니까 같이 거실 대나무 매트 위에서 자자고 하셨다. 대나무 매트 위는 정말 시원했다. 손가락으로 느껴지는 대나무 촉감이 좋았다. 거기 할머니랑 나란히 누워서 창에 감나무 잎이 비치는 것을 봤다. 간간이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분꽃에는 검정 씨앗이 있다. 그걸 손톱으로 가르면 동그란 분 덩어리가 나왔다. 손가락으로 문대는 느낌이 좋았다. 씨 여러 개를 모아서 얼굴에도 발랐다.
설인지 추석인지, 어느 명절에는 마당에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멍구를 닮았다) 사촌오빠와 함께 개를 데리고 놀이터에 산책을 갔다. 놀이터 애들이 다들 만져보겠다고 다가와서 뭔가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명절에 갔을 때 그 개는 없었다. 할아버지께 물어보니 개장수에게 팔았다고 하셨다....
일 년 전쯤 방에 앉아있다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아빠가 받는 것을 들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데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침대에 엎어져서 좀 울었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고 한동안 무슨 일을 해도 집중을 못 했다. 그리고 아빠 전화가 울릴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할머니 건강이 괜찮아지시긴 했지만, 난 아직도 할머니의 혼탁한 눈을 오래 마주하지 못하겠다.
위에 얘기한 집은 팔고 부숴서 이제 세상에 없다. 그래서 기억으로라도 붙잡아두고 싶다. 나중에 집이 있던 자리에 가봤다. 3~4층은 되어 보이는 건축회사 사무실을 지어놨더라.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미워졌다. 그것도 벌써 5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그 사이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근처 작은 빌라에 사시다가 최근에 가수원동에 있는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코로나 때문에 못 가다가 지난달에야 처음으로 이사한 집에 가볼 수 있었다. 깨끗했고 두 분이 사시기에는 예전 집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한편으로는 집의 의미도 이제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족들과 저녁밥을 먹는데 갑자기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태평동 집도 20분마다 기차 소리가 났었다. 멀리까지 이사 온 이 집도 공교롭게 기찻길 옆이라니. 고모가 운명 같다고 했다. 다 바뀌고 없어져도 삶의 어떤 부분은 끈질기게 들러붙어서 운명처럼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