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는 나랑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모델처럼 마르고, 커다란 귀걸이를 한 그 애는 웃기지도 않은 얘기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웃어주지 않았고, 상사에게 애써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았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가장 사랑하며 그것을 침범당하면 화가 난다고 했다. 남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고 친구들을 만나느라 온 주말을 다 쓰고 피곤함에 시달리는 나와는 태생적으로 달라 보였다. 사람들은 그 애를 궁금해했다.
다른 세상 아이 같던 그 애는 나에게만은 다르게 굴었다. 나이가 달랐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자고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퇴근 후 내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물었으며, 무슨 카페를 가고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토록 개인적이고 차가운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다니. 처음에는 어떤 자부심이나 우월감 같은 옹졸한 감정이었다.
카페에 가면 그 애 생각이 났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그 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슈크림을 선물해서 그것에 대해 10분 정도만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에겐 일 년의 마무리이자 시작인 다이어리를 사면서도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내 걸 사면서 하나씩 더 구매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건 호기심이었다.
내 호기심은 슬픈 영화를 봐도, 이별을 해도 울지 않는다던 그 애를 눈물 쏟게 했다. 그 눈물은 날 기쁘게 만들었다. 반대로 내가 눈물을 쏟는 날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서로를 모르고 산 30년 가까이 되는 시간들을 이야기했다. 모르는 동네에 갔다. 우리만 아는 유행어를 만들었다. 우월감이나 자부심은 이제 필요 없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틈이 없었으니까.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면 불안하고 아쉬운 마음에 걱정이 와라락 밀려왔다. 다른 친구들, 심지어 남자친구 사이에서도 없던 일이었다. 그 애는 날 아쉬워하게 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고, 기대하게 했다.
호기심, 슬픔, 기쁨, 아쉬움같은 감정들은 내 일상을 채우는 잠깐의 사건이 되었다가 곧 나의 일상 그 자체가 되었다. 어떤 우정은 사랑이고, 어떤 사랑은 나 자신을 알게 한다. 친구가 많아도 늘 공허함에 시달렸던 나, 인생은 혼자라고 생각했던 나, 이성 간의 사랑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나. 그건 나도 모르게 내 맘속에 자리 잡았던 그 애보다도 더 냉정한 마음이었다. 그 애의 사랑은 지나간 나를 다시 보게 했고,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보게 했다. 일상은 나를 가득 채우는 마음이다. 내 일상은 그 애이다.
모든 사람의 일상에는 그것을 궁금해해 줄 한명은 필요하다. 그것이 나 자신이나, 부모님이나, 키우는 강아지일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부지런히 궁금해해 주는 사이이다. 그 애가 내 일상을 가득 채운 것처럼, 그 애의 일상은 나로 가득 찼다. 앞으로의 나의 일상도 그 애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이상하고 유치하게 만드는, 나를 가장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는 내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