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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게 가는 경험

「지지부진한 날의 기록」 프롤로그

by 김혜민 Mar 27. 2025

지지부진 (遲遲不進) 

'매우 더디어서 일 따위가 잘 진척되지 아니함.' (「표준국어대사전」) 이 말의 뜻을 온몸과 마음으로 이해합니다. 십 년의 시간 동안 지지부진의 중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지부진의 촉감도, 소리도, 냄새도, 맛도 많이 익숙해졌어요. 처음에는 모든 감각이 고통스러웠는데 말이죠. 어린이 시절부터 청소년 시절까지 바다 근처에서 자랐지만 맨발로 모래사장을 밞는 것은 언제나 질색이었어요. 맨발에 모래가 닿는데도 신나게 노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상상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바다는 보고 싶은데 모래는 밟기 싫으니 모래사장 대신 방파제로 가곤 했어요. 지금도 맨발에 모래나 자갈이 닿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릴 때처럼 질색팔색하진 않아요. 친구까지는 못 되어도 낯가리는 단계는 지났다고 할 수 있죠. 겪다 보니 불편한 느낌에 익숙해진 거죠.


초반의 지지부진은 어린 혜민이가 눈앞에 바다마저 안 보이는 모래사장에 맨발로 서있는 고통이었어요. 고통스럽지만 낙관적이었어요. 그전에도 목표 지점을 찾아가는 길에 힘이 부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참아 내고 넘겨 내어 결국 도착해 본 경험이 몇 번 있었거든요. 그 정도의 날씨 좀 안 좋은 날이 조금 길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곧 끝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어느새 지지부진은 중반으로 접어들어 있었어요. 모래사장이 막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감각적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심리적 공포가 찾아왔어요. 마음은 조급하고 머리는 앞서 가는데 그럴수록 몸은 더 굳어지더라고요. 수년간 읽고 쓰던 논문이 읽어 지지도 써 지지도 않았어요. 바깥으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스스로 '얼음'을 외치고 멈춰있는 나에게 누가 와서 '땡'을 해주길 바랐어요. 그래서 지도교수님께 상태를 알리고 학교 심리상담사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이었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와 안심이 되었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놓였거든요. 도움을 요청했다고 해서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상황을 조금 더 해석할 수 있게는 되었어요. 모래사장이 흔들리고 있던 게 아니라 제가 덜덜 떨고 있던 거더라고요. 살다 보면 바라지 않던 모래사장 위에 서있게 될 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모래 위가 편안하지 않고 쾌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래 위에서 할 수 있는 게 '얼음땡'만은 아니라는 것도요. 바닷소리도 들을 수 있고, 뜨고 지는 태양도 볼 수 있고, 그 위에 수건 한 장만 깔면 심지어 앉아서 책도 읽을 수 있고 김밥도 먹을 수 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고 급기야 (희박한 가능성으로) 드러누워 일광욕도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후반의 지지부진 속에 있습니다. 여전히 그 속에 있고 얼마나 어디로 어떻게 가야 벗어날 수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상황을 해석하고 나니 고통이나 공포가 조금은 줄었어요. 고통스럽거나 공포스럽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바란 적 없는 모래사장에 불시착한 것일 뿐 거기서 인생이 끝나거나 멈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거든요. 멋도 모른 채 혼자 맨발로 모래사장에 서 있던 초반과 극렬하게 저항했던 중반과는 조금 달라졌지요. 살다 보면 마음먹은 것이 이렇게까지 안 될 때가 있구나. 누가 특별히 큰 잘못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살다 보면 그냥 상황이 이렇게까지 안 되는 방향으로만 둥둥 떠가는 경우도 있구나. 이걸 기대수명의 절반을 살고 나서야 처음 배웠네요.




어떤 드라마를 봤는데, 거기 그런 대사가 나왔어요. 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사회에서 쓴 맛을 보고 돌아온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너는 늘 잘하는 아이였지. 그래서 걱정했어. 만약 언젠가 잘하지 못하게 됐을 때, 그때 넌 어떻게 할까? 내가 그건 가르쳐주지 못한 것 같았거든." 정말 그렇더라고요. 답을 맞히는 방법, 합격하는 방법, 칭찬받는 방법, 인정받는 방법... 그 시절에는 (요즘은 '그 시절' 같지 않으면 좋겠는데요온통 '잘해야 한다'는 목표를 향해 '잘하는 방법'만 배우면서 자랐더라고요. 모든 시나리오의 엔딩은 성공과 합격이어야 했어요. 성공하지 못하고 합격하지 못하는 전개의 시나리오는 누구도 고려하지 않았어요. 즉시 폐기였죠. 그러다 보니 '잘하지 못하게 됐을 때'를 가정해 본 적도 없이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러니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하는 지도 배우지 못했고요. 지지부진을 맞닥뜨리고 났더니 그동안 참 대책도 없이 살았구나 싶더라고요.


드라마 속 선생님이 덧붙였어요. "근데 [... 중략...] 알겠더라. 아이들은 계속 자란다는 걸.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들 언젠가 스스로 답을 찾는다는 걸." 이 말에는 좀 서운하더구먼요. 알고 있었으면 미리 좀 가르쳐 주지 그러셨나 싶어서요. 진짜 그런 생각 많이 했거든요. 어린 혜민이에게 누구라도 '참 잘하고 있구나. 그런데 살다 보면 잘하지 못하게 될 때도 있을 거야. 그런 순간이 갑자기 올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도록 하렴'하고 귀띔을 해주었다면 지금의 지지부진 속에서 조금 덜 허우적거렸을까요. '살다 보면 뭐가 안 될 때도 있어. 일이 늘 생각대로 풀리면 그게 수상한 거 아니겠니. 상황이 안 풀린다고 해서 네가 잘못한 것은 아니야. 어떤 어려움도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야.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없어. 힘이 들 때는 도움을 청해야 되는 거야.' 지금이라도 지도교수님과 상담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아홉 살 혜민이는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았지만, 아홉 살 당근이에게는 미리 말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 당근이에게 하는 말을 제 속에 있는 아홉 살 혜민이도 어쩌면 엿듣지 않을까요.


상담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당신의 아이에게 해줄 말을 당신 스스로에게도 해주세요. 다른 이에게는 너그러우면서 자신에게는 너무 엄격하지 말아요. 만약 당근이가 이렇게 말한다면: "엄마, 나 숙제가 잘 안돼. 마음으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하려고 하면 몸이 안 움직여. 해낼 수 없을 것처럼 느껴져. 무섭고 불안해. 함께 시작했던 다른 애들은 다 마쳤는데 나만 아직까지도 해내지 못하고 있어", 이렇게 대답을 할 것 같아요: 


"당근아, 엄마도 그 기분 알아. 너무 무섭지. 그런데 같은 시점에 출발했다고 해서 꼭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것은 아닐 수도 있어. 그리고 사람마다 속도가 다 다르니까 끝나는 시점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어. 남보다 빨라야 훌륭한 것은 아니야. 남보다 느린 게 부족한 게 아닌 것처럼. 그냥, 다른 거야. 이철수 아저씨라는 판화가가 있는데, 그분의 중에 엄마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 '달팽이 더디 가는 걸음도 부지런한 제 길.' 달팽이는 뒤쳐진 아니야. 자신의 걸음을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는 것뿐이야. 달팽이가 다람쥐만큼 빨리 걷지 못한다고 해서 누구도 달팽이에게 '너는 정말 무능한 달팽이구나'라고 하지 않아. 너의 속도대로 걸어가면서 만날 있는 꽃과 새와 사람들은 너만 가질 있는 보물이야. 그걸 '경험'이라고 하지. 어떤 풍경을 보며 누구와 마주치면서 걷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엔딩을 갖게 되는 거거든. 네가 빠르게 뛰지 못하고 천천히 걸어가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 지금은 원하는 만큼 안 나오는 속도와 결과물이 너를 답답하불안하게 만들겠지만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왜 그 속도여야 했는지 이유를 알게 될 거야. 어떤 이유인지 아직 없지만 가지 확실한 건 있어. 그 이유가 절대 너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야. 너의 속도대로 가도 괜찮아. 가다가 울어도 괜찮고, 가다가 잠시 주저앉아도 괜찮아. 네 옆을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말고 네 눈앞에 있는 길과 그 위에 있는 네 발끝만 봐. 네 발은 한 걸음씩 내딛고 있으니까.'


너도 듣고 있지, 꼬맹이 혜민아.


응답하라 1984응답하라 1984




네덜란드의 도시 위트레흐트(Utrecht) 시내에는 위트레흐트대학뮤지엄(University Museum Utrecht)이 있어요. 위트레흐트대학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바탕으로 꾸며진 뮤지엄인데, 어린이들이 방문하여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지요. 분야별 연구 주제뿐만이 아니라 '학문적 연구'라는 행위 자체를 관람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은 특별한 뮤지엄이에요. 뮤지엄을 한 바퀴 구경하고 나오면 (어김없이) 기념품 가게로 이어지는데, 가게로 들어가기 직전의 벽면에 연구와 관련된 문장들이 쓰여있어요. 학문적 연구라는 작업에 대한 진취적인 기상을 담은 문장들인데 왜 하나같이 문장 뒤에 괄호 열고 '(그러니까 해서 뭐 해)'라는 환시가 보이는 걸까요. 


University Museum Utrecht (UMU) 벽면에 쓰인 문장들.University Museum Utrecht (UMU) 벽면에 쓰인 문장들.


Je weet het nooit zeker. 절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까 연구는 해서 뭐 하냐). Na ieder onderzoek hebben we alweer tientallen vragen, die we ook graag zouden beantwoorden. 하나의 연구가 끝나면 또 답을 찾고자 하는 수십 개의 질문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뭣하러 하냐). Onderzoek stopt nooit. 연구에는 끝이 없다. (끝도 없는 거 해서 뭐 하냐고).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게 분명한 모양입니다. 예전의 상태였다면, '맞아, 또 어떤 주제로 가지를 쳐나가 볼까'라고 신나게 생각을 이어갔을 텐데 말이에요. 국제공법/국제인권법 분야의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논문의 결론 챕터를 처음부터 써야 하고, (너무) 오래전에 써 놓은 서론과 본론 챕터 네 개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이 논문으로 분야에 획을 긋고 싶은 야망도 없고 이 논문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더 연구해 보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정한 주제로 설레며 시작한 이 연구 프로젝트를 잘 매듭지어 가만히 내려놓고 싶을 뿐이에요. 긴 여행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나'와 치열하게 고민하며 밤낮 챕터를 써나가던 '나'와 지지부진의 긴 터널을 (곧) 빠져나올 '나'가 이미 도착점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찾아가 만나고 싶을 뿐이에요. 


'나'들이 만나게 될 그날까지의 덜컹거릴 여정을 적어가 보려고 해요. 자랑거리 많은 나는 나설 곳이 많지만 부진한 나는 숨을 곳만 찾게 되지요. 부진한 하루의 실망과 버거움을 털어낼 곳이라도 마련해 주고 싶어서요. 가끔씩 작은 계획을 이루었을 때 칭찬할 곳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어서요. 그렇게 계속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아무런 무게감도 느낄 필요 없는 나만을 위한 무중력 공간을 차려주고 싶어서요. 이 기록은 엔딩이 이미 정해져 있어요. 맨 마지막 장면은 지나온 '나'들이 도착점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와 만나 서로 안아주고 서로를 위해 울어주는 장면이 될 거예요. 한참 울고 나서 서로를 향해 박수를 쳐줄 거예요. 그리고는 퉁퉁 부은 눈두덩이를 하고 다 함께 팔짱을 끼고 떡볶이/순대/튀김을 먹으러 가는 뒷모습이 줌아웃되면서 '끝!'이라고 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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