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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Jun 17. 2021

엄마에 속도를 맞추니 행복하더이다

구순 엄마의 바지 수선

코로나 백신을 맞던 날, 친정엄마네 방문했다. 학교가 공가(公暇)로 인정해주어 시간적 여유가 생긴 이다. 직장 근무와 가족의 식사 챙기는 일을 제외하고는 구순의 친정엄마를 챙기는 것이 현재 나에게는 최우선적 일이다.      


친정엄마는 딸이 온지도 모르고 바지 수선에 여념이 없다. 현관문이 거실과 맞붙어있음에도 귀가 어두우니 알 턱이 없다. 가까이 가 인기척을 내니, 급하게 수선하던 바지를 감추려 바쁜 손놀림을 한다. 안구 건조증을 앓고 있음을 들추지 않더라도 구십 먹은 노인네의 바느질이라니, 어불성설 아닌가. 옷을 험하게 입는 자식들의 양말과 속옷 등의 옷가지를 깁거나 수선하는 친정엄마의 모습은 그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하다. 그 모습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항상 ‘싫은 소리’를 한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바느질하는 모습을 들킬(?) 때마다 감추기에 급급하다.      


10년 전 즈음 엄마에게 물었었다. ‘왜 버리지 않고 깁냐’고. ‘그럼 멀쩡한 것을  버리냐’고 반문했다. 멀쩡하지 않아 깁고 있는데 말이다. 또 물었었다. ‘이거 아껴서 부자 될 거 같냐’고.

      

“다들 돈 버는데 나만 가만히 있으면...... 뻔히 앉아 있으면 시간이 아깝잖아”  

    

노인 양반의 경제관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었다. 그 이후로도 친정엄마의 바느질은 끊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잔소리(?)하고 역정을 냈다. 안구 건조증으로 불편해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시력마저 잃게 될 것이 두렵다.       


“엄마, 얼른 바지 수선 마저 하고 중국집 가서  저녁 먹자”     


“됐다, 나중에 할 거다”


엄마는 수선하던 바지를 소파 밑으로 더 깊숙이 밀어 넣는다.

     

“내가 도와줄게. 마저 해”


나는 엄마가 밀어 넣은 것을 끄집어낸다.


“니가 뭘 할 줄 안다고...”     


친정엄마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항상 잔소리만 하던 딸이 바느질을 같이 하자는 것이 의아했던 거다.


최근 들어 친정엄마에게 일어나는 소소한 문제들을 엄마가 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의 성격으로 미루어볼 때, 자식에게 폐가 되는 게 싫은 거다. 이런 느낌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예전에 아이들 키울 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유독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들 녀석이 일상생활을 하며 소소하게 거짓말했다.  아이러니컬하게 그 녀석의 엄마인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 유형이 거짓말시키는 사람인데 말이다. 거짓말이 버릇이 될까 두려워, 그것을 고치려고 심하게 혼을 내기도 하고 협박도 하고 훈계도 했지만 허사였다. 당시 나에게 큰 고민거리였다.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연구 아닌 연구를 심각히 했다. 곰곰이 들여다보니 아들의 거짓말은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엄마가 원하는 답을 하기 위한 거짓말이 상당 부분이었다. 나는 '내 관점이 아니라 아들의 관점에서 아들 녀석의 행동에 대해 공감과 응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서서히 아들의 거짓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이 든 엄마를 위해 '내 관점이 아니라 엄마의 관점에서 할 일을 정하고, 그 일을 도와주고 지지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엄마가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함께 하는 거다. 서툴지만 서서히 실천 중이다.


“젊어서 그런지 잘하네...”


그 바지는 내가 지난해 홈쇼핑에서 산 여름용 고무줄 통바지였다. 홈쇼핑 판매가 항상 그렇듯이 색깔과  패턴이 다른 통바지 세 벌이 도착했고, 그중 한 벌을 엄마가 집에서 편히 입도록 나눈 거다. 지난여름, 엄마가 입지 않기에, '옷에 관해 별난' 엄마의 맘에 들지 않은 것으로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 바지를 엄마는 통을 줄이고, 허리를 늘이려고 수선하고 있던 중이었다. 고무줄이어도 노인네한테 타이트했던 거고, 통의 정도도 과하다고 판단한 거다. 다리 통을 줄이기 위해, 재봉틀로 기존 박음질보다 안쪽으로 박음질을 하고, 기존 박음질된 것을 따려고 바지와 씨름 중에 내가 나타난 것이다.      


친정엄마가 솔기를 벌여주면 내가 칼로 실밥을 땄다. 혼자 할 때보다 훨씬 수월한 거는 당연지사다. 구순의 친정엄마의 눈보다 30년 젊은 내 눈이 더 밝을 테니 진척이 빠른 것도 불 보듯 뻔한 거였다.       

     

“이제 뭐 해야 해”     


“솔기 다림질하면 되는데 그건 나 혼자 할 수 있다”     


“저녁 먹기에 시간이 이르니, 다림질하고 가자”    

 

고질병인 퇴행성관절염을 40대 초반부터 앓아, 좌식(坐式) 이 어려운 양반이 앉아서 다림질을 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친정엄마는 두 다리를 우측 한 방향으로 뻗고 다림질을 한다. 왼쪽으로 다리미를 밀 때는, 한 팔꿈치를 거실 바닥에 지지한 채 135도 각도의 앉은 자세로 다림질을 다. 나는 결혼생활 30년이 되어 가지만 다림질 횟수는 열 손가락을 채울까 말까다.


엄마는 다리미를, 나는 물뿌리개를 들었다. 내가 박음질한 솔기가 벌어지도록 솔기 양쪽을 누이고 물을 살살 뿌려두면 그 사이를 친정엄마가 다림질했다. 우리는 호흡이 척척 맞았다. 일사천리로 다림질을 마쳤다.

       

나는 다음 단계를 물었다.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재촉했다.

     

“아직 다 하려면 멀었다. 이제 그만할란다”     


두어 번 더 '마저 하자'고 했지만, 엄마의 뜻이 확고함이 느껴졌다. 더는 종용하지 않았다.   

  

그날 엄마와 나는 둘이서 중국집에 가서 해물 누렁지탕과 간짜장을 시켜 이른 저녁을 맛있게 천천히 즐겼다. 식사 내내 엄마와 나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을, 나의 큰엄마이며 엄마의 손윗 동서부터 엄마의 친구 같은 먼 친척뻘의 양장점 주인, 십여 년 전 고인이 된 아버지...... 미국에 있는 증손주까지, 한 명 한 명 소환하여 추억하고 걱정하고 칭찬하며, 하하 호호 즐거웠다.      


친정엄마와 헤어져 귀가하는 길에, 나는 우리의 식사가 즐거웠던 것은 ‘음식과 대화’ 때문이 아니라 ‘수선 바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바지 수선이 당신의 생각보다 수월하게 많이 진척된 것이 좋았을 터고, 나는 내가 이제 엄마의 속도를 조금씩 맞추기 시작한 거 같아 행복했던 거다. 마음이 좋고 행복하면 그 무엇도 다 맛있고 즐거운 법이다.(202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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