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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May 20. 2021

죽음과 그 준비

"한 달만 더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자꾸 떠오르네"

올해로서 만 60살이 되니,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보다 분명 길다. 죽음의 시간을 향한 반환점을 이미 돈 셈이다. 나는 나의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이 있을까? 그 순간, 어떤 느낌일까?    

 

이런 호기심은 ‘죽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어느 시점에 그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알게 된다면, 더 살고 싶을까?’라는 자문을 해보곤 한다. 가까운 친구들과 대화의 소재로도 삼곤 한다. 실제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대단히 불경스럽고 오만한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죽음을 직시하고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연로한 부모님을 곁에 두고 있는 나로서는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2021년 4월 29일, 아직도 그 날 엄마의 모습이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주말마다 사우나로 한 주의 피로를 날려버린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러했다.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 아줌마들의 질펀한 수다를 듣고 있노라면, 흘러내는 땀방울과 함께 일주일간의 피곤함이 녹아내리는 쾌감을 느끼곤 했다. 특히 서울에 살던 친정엄마가 분당 가까운 수지로 이사 온 이후 대략 10년 전부터는 격주로 친정엄마와 동행했다. 초기에는 엄마의 등을 밀어드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몇 해 전부터는 등에서 팔, 다리까지 최근에는 머리까지 감겨드린다. 자식 힘든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친정엄마도 ‘됐다 됐다’ 하면서 서서히 당신의 몸을 나에게 맡기셨다.      


그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말이 아닌 평일 낮시간이라는 점과 코로나 확진자 폭등으로 3주 만의 방문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달랐다. 코로나 발생 이후 사우나를 갈 때마다 사선(死線)을 넘는 스릴(?)에도 불구하고, 막상 사우나에 들어가면 사람이 적어 호젓하게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아이러니를 맛보곤 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500명을 넘어서면서부터는 탕에서 마스크를 쓰고 목욕을 했다. 사우나 방문 전후에 느끼는 공포심과 우스꽝스럽고 불편한 목욕임에도 나는 엄마와의 사우나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평생 공중목욕탕에서 주기적으로 세신(洗身)하던 노인네가 생활 리듬을 바꾸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일뿐더러, 나와의 사우나는 아흔 노모에게 거의 유일한 나들이였다.   

       

“등도 못 밀까 봐 그러나, 대라~”

     

여동생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부터 엄마는 계속 나의 등을 밀어주겠다고 보채셨다. ‘아는 사람 오면 같이 밀겠다’고 말했지만, 엄마가 다 씻을 때까지도 내가 등을 밀지 않고 있으니 지청구를 대셨다. 혼자 사우나를 할 때는, 같이 밀 사람이 없으면 대강 손 닿는 데만 씻고 나오지만, 엄마에게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친정엄마는 3살 터울의 딸 세 명을 대중목욕탕에 데려가 차례대로 때를 밀어주는 월례 행사(?)를 내가 중고등 학생일 때까지 하셨던 분이다. 내가 엄마의 등을 매번 정성껏 밀어드리는 것은 당시 엄마의 ‘엄청난 노고’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한 달 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엄마에게 등을 맡겼다. 어릴 때 엄마에게 몸을 맡겼을 때, 피부 껍질이 벗겨질 것 같은 아픔으로 고통스러웠는데, 그날은 너무 힘이 없는 엄마의 손길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한 달의 시간은 엄마 손의 힘을 그 시간만큼 또 앗아간 듯했다.  

    

사우나를 마친 뒤, 간단하게 장을 보기로 했던 엄마가 그냥 집으로 가겠다고 하셨다. 혼자 바깥출입이 불가능한 엄마는 거의 대부분 사우나 후 간단한 장을 봤던지라 좀 의아했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나를 봐주려고 하는 말씀인 거  같지 않아 차를 바로 엄마네 집으로 몰았다.    

 

“팔십 대는 그래도 살 만하다 했는데, 구십이 되니까 더 살 수 있을까 용기가 생기지 않아...... 너희 큰아버지가 한 달만 더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던 말이 자꾸 떠오르네...”      


운전하다가 깜짝 놀라 엄마를 쳐다보았다. 눈 언저리가 불그스레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힘없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나는 외갓집이 백수를 누린 장수 집안이라는 점을 들추며 몇 차례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하지만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더 노력할 수 없었다. 엄마와 나는 침묵 속에서 엄마네 도착했다.  

    

그날 밤에 걱정 많은 언니와 멀리 있는 오빠를 제외하고, 두 동생에게 엄마의 말을 전했다. 다행히 다음 날 엄마는 기운을 차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 날은 3주 만의 목욕이라 기운이 다 빠질 정도로 때를 민 탓에, 탈진이 된 것으로 추측되었다. 기운이 빠지니 더럭 겁이 난 던 게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듯하다. 하지만 최근에 오래된 옷가지를 정리하고 버려 달라던 엄마의 모습이 자꾸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거로 소파 커버 만들려고 하는데 괜찮겠나... 죽을 준비 하는 거야”      


엄마는 굽은 허리로 안방에서 묵직한 보따리에서 연한 꽃무늬가 새겨진 헝겊을 꺼내 보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우리에게 묻는다. 일요일이라 저녁 준비 전 짬을 내어 엄마네 방문했는데, 마침 여동생도 찐 홍게 4마리를 가지고 온 것이다. 사실 두어 달 전에 나한테 그렇게 하려는데 괜찮겠냐고 천을 보여 준 적이 있었지만, '아흔 노인네가 재봉질을 해서 소파 커버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에 내 대답이 시원치 않았나 보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 중 옷이나 음식에 관해 제일 감각이 좋은 여동생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소파 커버는 10여 년 쓴 가죽 소파가 닳자, 솜씨 좋은 엄마가 집에 있던 예쁜 천으로 직접 재봉틀을 돌려 만들었다. 그 커버가 낡아 해어지자, 몇 달 전부터 새로운 커버를 만든다고 벼르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노고를 줄이기 위해 소파 커버를 구입하려고 집 근처 백화점과 마트를 돌았지만 허사였다. 시간이 되면 다른 곳을 가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중에 엄마가 그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 거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엄마의 말을 들은 동생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소파 커버 구하는 것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죽을 준비를 한다'는 엄마의 말에서 경건함과 엄숙함이 느껴졌다. 엄마의 '준비'를 엄마가 원하는 대로, 엄마의 계획대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도와주는 게 옳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외갓집이 장수 집안이라는 사실을 되뇐다.(202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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