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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라나 Jan 04. 2022

저질 체력임에도 자꾸만 일을 벌입니다

 

얼마 전 매일 할 일에 치여 바쁘게 사는 나를 보고 친한 언니로부터 '사서 고생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너무나 적당한 표현이라서 카톡의 떼굴떼굴 구르며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주었다.

생각해보면 신랑에게도 비슷한 뉘앙스로 자주 듣는 말이다. 


누가 시켰니 대체.


오늘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지만 이런저런 일들에 밀리고 치여서

일찍 글을 못써서 맘은 분주하고 다른 일이 손에 잘 안 잡힌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맨날 저질 체력이라믄서 나 왜 이러고 사니.



잠을 더 자고 싶은데도 왜 새벽에 일어나서 영어 낭독 모임을 하는 것일까.

눈을 뜰 땐 어렵지만, 같이 읽을 때만 받는 상큼한 에너지가 있다.

이건 나같이 의지박약인 사람이 홀로 책을 읽으며 결코 얻을 수 없는 에너지이다.

결국, 수면부족과 에너지를 동시에 얻는다.


수면부족 + 에너지




두렵다고 하면서도 왜 계속 글을 쓰고 하루 종일 그 글에 대해 생각하고 들여다보는 것일까.

글을 써 내려갈 땐 두렵지만, 글쓰기가 나에게 결국은 깊은 사색과 희열을 준다.


두려움 + 사색과 희열




체력이 안된다면서 온라인 청소 모임은 왜 시작했을까. 

청소 리스트를 체크하고 지키느라 바쁘지만, 같이 하니 어쩔 수 없이 해내고 결과적으로 점점 청소의 노하우를 쌓고 있는 중이다.


무지 바쁨 + 노하우




운동할 시간이 없는데 운동모임 왜 들어갔을까.

신발 신기 전까지는 정말 귀찮지만, 일단 나가면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한 습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귀찮음 + 건강한 습관




늦둥이를 낳아서 몸이 마이 피곤하다.

큰 애만 있었다면 나는 이미 중학생 엄마라서 육체 피곤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손이 많이 갈 일도 없으니.


하지만 둘째가 없다고는 상상도 못 한다.

그 아이가 엄마 사랑해요 하고 뽀뽀해주면 세상 모든 피로가 풀리고 아이의 보드라운 목덜미와 살을 맞댈 때면 세상 모든 긴장이 녹아든다.

아이가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할 때, 바라만 봐도 샘솟는 커다란 기쁨은 또 어떠한가.


육체의 피로 + 정신적 기쁨




그렇다면 뒤집어서 생각해본다.


문득문득 이렇게까지 체력도 안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벌여놓고 살아야 할까.

다 그만두고 그냥 쉬엄쉬엄 편히 살면 안 될까.

다 그만두면 몸이 편해지고 시간의 여유가 생기겠지만, 내 경우엔 마냥 편하기보다는 무기력이 따라붙을 것 같다.

또 사람들과 활동에서 오는 에너지는 받지 못할 것이고 작은 성장도 이루어내기 어렵겠지.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기 + 무기력 ) - (에너지 + 성장 )


이 나이 되서까지 성장 타령이냐 하면, 얼마 전 정세랑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신다던 <최대 가능성> 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나도 아직은 '내가 가진 최대 가능성으로 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있다.



결국 나처럼 저질체력인 사람들이 체력이 안되는데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모든 피곤한 일들엔 무언가 대가가 있기 때문이다. 피곤과 대가가 세트메뉴처럼 따라다닌다. 그 두 개를 저울에 올려놓고 견주었을 때 대가 쪽으로 기울어지면 그 일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대가가 점점 가벼워지고 피곤 쪽으로 더더더 기울 때가 있다.

자발적 피곤이 더 커져가고 거기에서 받는 기쁨이나 에너지가 사그라질 때는 잠시 멈추고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1. 대가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2. 이로 인해 누군가 고통받고 있는지, ( 배우자와 자녀들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3. 외부에서 다른 종류의 비자발적 피곤이 더해진 것인지.


4. 잠시 쉬어가야 할 타이밍인지.



거창하게 더하기 빼기를 해가며 머릿속을 정리해보지만,

다시 읽어보니 내가 벌여놓은 일들은 피곤을 불러오는 일이지만 내가 다 사랑하는 일들인 것 같다.

체력을 생각하기도 전에 그저 설레는 마음이 더 앞서는.


오늘도 사서 고생하는 저질 체력 내돈내산 피곤러들이여.

우리가 이러고 사는 이유는 쉽게 설레고 많은 것들을 사랑한 죄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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