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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라나 Mar 29. 2022

20년 후 추억의 맛집에서 생긴 일

by 라나라나


대학로 , 마로니에 공원,  소극장들, 티켓박스 , 민들레 영토.  20  대학로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화덕피자집 디마떼오.




작년 여름의 일이다.

아빠가 입원하신 병원에 들렸다가 거의 십몇 년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혜화역에서 내리는 순간, 이십 대의 추억이 물밀듯 떠올랐다. 언니들과  붙잡고 미리 검색해  디마떼오를 찾았다. 아직도 있구나. 너무 기뻐하며.


한때 개그맨이셨던 이원승 사장님이 가슴에 몽키호테라는 명찰과 함께 머리에 두건을 두른  분주히 움직이고 계셨다. 내가 이십 대일  그분은 여전히 사람들 기억 속에 유명한 개그맨이셨고 우리는 피자를 먹으러  때마다 신기하게 그분을 바라보며 좋아했다.


지금이야 화덕피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당시만 해도 피자헛에만 익숙했던 나에게 루꼴라를 얹은 화덕피자는 정말 신선한 천상의 맛이었다.



이원승 사장님은 두건 아래로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셨다.

지금 저 안쪽에 앉은 젊은이들은 사장님이 누군지 잘 모르겠지.

가정을 꾸린 내 나이 또래의 애기 엄마는 나처럼 이십 대부터 이 피자맛을 잊지 않고 찾는 단골이겠지.


다정하게 테이블마다 직접 인사를 오시는 사장님께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다.


"사장님.  20년 전 저 대학시절에 이곳에 자주 왔어요.

 결혼하고 해외에 살다 오랜만에 와서 혹시 여전히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20년간 자알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자맛도 변함없이 그대로네요."


처음엔 몽키 인형과 바나나 인형까지 들고 귀엽게 웃으시며 사진도 같이 찍어주시던 사장님은 내가  말을 마치자 갑자기 묵묵히 아무 말씀도  하시고 조용히 '감사합니다'라고만 읊조리셨다.


 갑자기 멋쩍어서 혹시 해외에서 왔다고 해서 코로나 때문에 걱정되셨나, 생각했다. 커피를 서비스로 주신다 하셨지만 우린 시간이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계산대로 향했다.


먼저 가신 사장님은 계산을 하려던 우리에게 다가오셨고, 손에는 책 세 권을 들고 계셨다.

그리고 이름을 물어보시고는 일일이 사인을 해주셨다.


이런 말을 덧붙이시며.

"혹시 살다가 힘든 순간이 오시면 한 번 읽어보세요."



난 갑자기 목이 막히고 사실 눈물이 치솟았지만 꾹 참고,


". 어떡해요.. (저희 지금이 바로  순간이에요..) 너무 감사합니다! "

밝게 인사를 드렸다.

직접 쓰신 책이었다. 얼마  작은 책을 자가출판해보아서   권의 책이 얼마나 많은 애정과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은 건지  알기에 더욱 마음이 먹먹했다.


늘 건강하시던 아빠의 암 진단을 받고 나서 딸 셋인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웃으려 애썼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휘청거리고 있었던 때였다. 책 안에는 여러 죽고 싶은 만큼 힘든 시기를 거쳐 이 자리까지 오신 이원승 사장님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그래도 밝은 날은 오니 힘을 내라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응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문득 마주친 오래된 추억 속의 장소에서 생각지 못한 위로를 받은 우리는


"여기 오기 참 잘했다 그치?"

" 응 나중에 부모님도 모시고 올 수 있으면 좋겠다."


각자의 이름이 적힌 책을 손에 꼬옥 쥐고 반짝이는 눈물 너머로 싱긋 웃었다.


스무 살의 추억에 더해 마흔 살의 따뜻한 추억 하나가 이 장소에 얹혀졌다.

20년 후,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 분의 모습을 통해 이토록 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 보이는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본다.


세상의 온기를 느끼게 해 주신 이원승 사장님.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저도 받은 이 사랑, 세상에 나눠주며 열심히 살게요.

건강하세요. 다음에 꼭 다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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