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후 죽는 줄 알았네 - 예찬기 아님 ㅎ
푼돈 같은 월급 받기도 지겨워지는 20년 차 사무직 아저씨도 주말은 행복합니다.
금요일 퇴근길 발걸음은 가볍고, 주말엔 뭐 할까 싶기도 하지요.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젠 나이 먹어서 불금은 옛말이 되었고 술 많이 마시면 그 다음날 정신 못 차리고 누워 있는 정도가 아니라 며칠 동안 속이 안 좋아서 멀리하게 됩니다.
주말에도 먹고 자고 산책이나 하다 어영부영 하다보면 해가 지고, 어느덧 일요일 저녁이 됩니다.
‘우와, 주말은 진짜 총알같이 가는구나.
이제 곧 자고 일어나면
일주일 동안 아침부터 일어나서 저녁까지 출퇴근!
실화냐!‘
회사를 20년을 다녀도 계속 적응 중이고,
월요일은 금요일과 반대 기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출근하고, 할 일 하고 퇴근해서 발 닦고 자는 일상.
매일 보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하는 일도 늘 하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약간은 무료한 그런 삶이었지요.
이러다 삶의 목표 같은 뭔가가 없으면,
내가 지금 뭐 하고 사나 하는 무력감도 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주말 어느 날, 당근에 팔 물건이 있어서 팔다 우연히 당근 알바라는 걸 보았습니다.
벌레를 잡아 달라느니,
물건을 옮겨 달라느니,
짐 옮기는 걸 도와 달라느니,
혹은 식당이나 주점에서 설거지나 홀서빙 알바까지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었지요.
‘platform이라는 게 무섭구나.’
별 걸 다 스마트폰 앱으로 거래하는구나 싶었지요.
벼룩시장과 잘해야 네이버 중고나라 정도나 아는 아저씨에겐 신기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심심하길래 하나 해봤습니다.
차로 책상을 받아서 자신에게 가져다 주면 1.5 만원을 준다고 하더군요.
사이즈를 보니 제 승용차 뒷좌석에 잘 밀어 넣으면 둘어갈 것 같았습니다. 전에 한번 그만한 사이즈의 책상을 넣어본 적이 있었거든요.
지원을 하니 언제 시간 되시냐고 연락이 오더군요.
지금 바로 가능하다고 하니,
줄 사람이 저녁 8시나 되어야 퇴근해서 집에 온다고 그때 가능하냐고 묻습니다.
좀 애매해서 그럼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알았다고 하더니,
한 10분 정도 있다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8시에 2만 원에 안 되겠냐고.
뭐지? ㅎㅎ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그때 안된다고 다들 그러고,
막상 책상을 실으려면 승용차로 안되고 용달을 부르면 5만 원 이렇게 부르니 슬그머니 좀 더 올린 것 같았습니다.
그래 뭐, 왔다 갔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고,
올려주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좀 더 빨리 가능하면 알려주라고 마지막에 한마디 더 해두었는데, 책상을 줄 사람이 좀 더 일찍 왔다고 해서 날아갔지요.
대로변의 오피스텔이었는데 한 번씩 타고 다니던 버스 노선에 있는 곳이라 쉽게 찾았습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 네이버나 구글 지도만 있으면 주소만 찍으면 바로 알 수 있고 차에도 네비가 달려 있으니 헤맬 일도 많이 줄었지요. 그렇다고 길치가 헤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책상을 줄 친구는, 친절하게 책상을 들고 1층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에게 책상 가져다 달라고 의뢰한 친구는, 이 친구에게서 책상을 싸게 사고, 본인이 차가 없으니 저에게 가져 달라고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히야, 세상 편하네요.
다행히 책상을 준 친구의 도움으로 차 뒷좌석에 책상 넣기 성공!
조심히 차를 몰아서 또한 나름 익숙한 곳에 도착했습니다. 역시 길 눈이 밝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좋아해서 많이 아는 것이 이럴 때 빛을 발하네요.
마치 택배 아저씨가 된 양, 책상을 받으려는 친구를 만나 차 뒷좌석에서 책상을 꺼내주니 반색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여드름이 많이 난 얼굴의 20대 자취생 같은데, 싼 가격에 책상 득템했다는 표정이 꽤나 좋아 보이더군요.
계좌 이체도 계좌번호를 알려주니 은행 앱으로 바로 쏴주고 거래 끝!
헛헛헛.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왠지 공돈이 생긴 것 같고,
책상을 넘긴 친구나 받은 친구나 기분 좋은 표정을 보니 꽤나 보람 있었습니다. 뭔가 동네 도움 주는 아저씨가 된 것 같기도 하구요.
그렇게 시작한 당근 알바는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월급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평소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보고, 겪어 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해 본 점은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엔, 지옥의 컨베이어 벨트 택배 상하차 알바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편안한 주말이 행복한 줄 이제야 알게 된 사무직 아저씨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