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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Dec 13. 2022

회의 지옥

제발 나에게 시간을

회의가 참 많은 회사, 많은 날이 있다.


대도시도 그렇고, 다들 모여 살며 같이 이야기 나누는 걸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인간 (人間)

사람 사이라는 속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 좋은데, 그래도 적당히 좀 해야지.




아침 조찬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보통 회사에 9시에 출근하는데 2시간 일찍 가야 하니 전날은 약속도 잡을 수 없고 알람을 당기고 긴장하며 잠든다.


아침 7시에 호텔 세미나 룸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을 줄이야.


교수님 등 저명인사를 초청해서 강의도 듣고, 아침밥을 먹으면서 인사도 한다.


확실한 건 어른들은 아침잠이 없는 것 같다.


어른들은 아침 회의도 좋아한다.


아침 7시 회의에 배석하라고 하면 전날 저녁은 거의 야근이다. 회의 주제에 맞게 준비를 하고 모시고 가는 임원에게 업데이트를 시켜 드려야 한다.


말은 티 (tea) 미팅이라고 하는데, 사장님이나 고위직 분이 묻는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하면 담당 임원은 아침부터 기분이 잡쳐진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 후폭풍이 하루 종일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 때로 일주일 혹은 그 이상으로 가기도 하니까.


그리고 9시에 자리로 오면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아침 인사를 하고 이메일을 체크하려니 팀 주간 회의 알림이 왔다.


내가 하는 일을 공유하고, 다른 친구들 일에 대해 coment도 해줘야 하니 부리나케 준비한다. 월요일 회의가 많으면 주말 하루는 출근하는데, 뭐하고 사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미리 준비하면 마음은 편하다.


다행히 내가 회의 주관을 해서 리드하는 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발표하고 토의할 때 내가 할 이야기를 정리할 시간이 생긴다.


보통은 회의에 참석한 다른 두 사람의 말이 길어지면,


‘나중에 둘이서 따로 얘기하지. 이렇게 사람 많이 모여 있는데 다른 사람에겐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왜 저렇게 길게 하나’


싶은데, 내 발표 내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면,


‘그래, 잘한다. 더 해라 더. 그러다가 시간 늦어져서 다음 일정 때문에 회의 접어야 하면 더 좋고.’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람 마음은 사정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낮 시간 중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누가 뭐래도 점심시간이다.


그래서 요즘은 혼자 밥 먹으며 자기 시간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함께 하기를 좋아하고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을 때 윗분들은 종종 샌드위치 먹으면서 회의를 이어가자고 한다.


다들 바쁜데 이동 시간도 아끼고, 효율적으로 시간 관리하자고 내빼지 못하게 명분을 내민다.


‘와, 점심시간까지 뺏으시면 어떡하나.’

하고 싶지만,


밖으로는,


“그러시죠. 이렇게 해서 빨리 끝내시죠.

저 서브웨이 좋아합니다.“


이러고 있다.


해외 출장 다닐 때 햄버거와 샌드위치로 떼울 때가 많아서 한국에선 거의 입도 안 대는데.


그렇게 점심시간에 10-20분 잠도 못 자고

(power nap - 잠깐 눈 붙이고 쉬면 정신도 말짱해지고 오후에 훨씬 좋다)


오후 일정을 시작해야 하고 있는데, 면담 요청이 있다.


힘든 일이 있다고 선배에게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경청하고 공감해줘야 하는데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점심때 잠도 못 잔 내 머리는 이미 안드로메다에 가 있다.


아직도 오후 2시야?! 믿을 수 없다. 보통 이 정도 상태가 되면 곧 퇴근할 때인데. 아직도 아득하다. 이럴 땐 참 하루가 길다.


일단 잘 들어주는 선에서만 마무리하고, 나중에 차 한잔하거나 산책하자고 하고 돌려보낸다.


그래도 잘 들어주기만 해도, 자기 속 이야기 편하게 말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게 뭐라고 참.




오후에 잡힌 외부 업체와 미팅이 있다.


계약하기 전에는 영업 담당자가 제안서를 들고 와서 자기들 써달라고 난리인데, 막상 계약하고 일을 하면 실제 일하는 다른 사람이 와서 그걸 왜 우리가 해야 하냐고 들이댄다. 허허.


어르고 달래서 언제까지 하자고 한다. 이런 게 업체 관리인가 싶다.


wrap up (마무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와 내부 미팅을 한다.


어떨 땐 미팅이 무슨 서로 일 떠밀기. 눈치 싸움.


‘실제 해야 할 건 니가 다 해. 난 취합만 할게. 아니, 취합된 것만 볼게 대충.’


이런 사람들이 모일수록 회의는 산으로 가고, 시간은 흐르고 있다. 참지 못하고 그냥 내가 할게 하고 말하고 싶지만,


국무총리까지 하신 행정의 달인이라는 분이 알려주신 성공의 비밀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다행히 나에게는 불똥이 안 떨어지고, 정리가 잘 되었다.


자리에 와보니 아는 임원 분이 어디 갔었냐고 할 얘기가 있는데, 저녁 먹으면서 하자고 한다.


‘제발 집에 좀 가세요 제발요’


집에 가서 밥 차려달라고 하면 사모님 눈치가 보이시는지,


퇴직 후 삼시세끼 집에서 먹어서 ‘3식이’ 되기 전에

회사 다닐 때는 집에서 밥 안 먹고 귀찮게 안 하는

 ‘0식님’으로, 남으시려는지 자꾸 집에 안 간다.


저 정도 회사를 오래 다니고 지위에 오르면 집이 불편하고, 회사가 차라리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 좋은데, 왜 날 붙잡고 늘어지냐고요.


그렇게 회사 근처 김치찌게 집에 붙들려가 저녁밥 먹으면서 일 얘기와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자리에 앉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회의로 확인하지 못한 이메일의 숫자를 보니 압박이 온다.


52시간 도입 이후 PC lock 등 여러 시스템이 도입되었지만, 일 하는 데에는 큰 지장은 없다.


주 52시간 제도 이 모양인데, 최대 주 69시간으로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아이고 난 죽었다.’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종종 새벽까지 서류 보고, 보고 자료 작성하다가 근처 사우나 가서 씻고 잠깐 자고 아침에 나왔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가져다 놓은 속옷과 양말만 갈아입고 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아, 내가 사원 때 옛날 아저씨들은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신문부터 펼쳤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 인사하고 담배 한 대 태우고 점심 먹는다. 오후에 할 거 조금 하고 저녁엔 법카로 회식하고 잘만 살던데.


세상이 점점 더 팍팍해지고 힘들어지는 것 같다.


회의와 잦은 야근 그리고 실적 압박 등 스트레스 때문에, 고혈압, 공황 장애를 겪는 직장인이 많다고 한다. 주위에도 심심치 않게 본다. 약으로 버틴다는 씁쓸한 농담과 함께.


이러니 퇴사해서 파이어 족으로 살겠다고 많이들 그러는 것 같다. 즉, 나에게 파이어 족은 큰 부자가 되어 인생을 즐기자는 의미보다는, 살겠다는 생존의 의지로 다가온다.


(FIRE - Financially Independant Retire Early -나이 40 전에 돈 열심히 모으고 안 써서, 모은 종자돈으로 은퇴해서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자는 주의)


회의만 조금 줄여도 살겠네.


답답하다고 모여 앉아 뭐라도 얘기해보라고 해서 답이 나오나.


브레인스토밍도 적당히 해야지

(brain storming - 다 같이 모여 이 얘기 저 얘기 다 하는 것 - 중요 룰 : 어만 소리 했다고 뭐라고 하지 않기)


그 시간에 각자 고민해보고 자료도 찾아보고 아이디어 정리해 와서 효율적으로 만나야지.

준비 안된 돌끼리 부딪혀 봐야 불만 튀고 한숨만 나온다.


회의하다 날 새고 망하는 회사가 되지 않았으면.


날도 추워지고, 눈도 많이 오는데 오늘은 일찍 귀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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