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 Nov 26. 2022

같은 일 다른 생각

인생의 갈림길

나에겐 샤워 루틴이 있다.


샴푸를 바르고 클렌징을 하고 면도를 한다.

그리고 바디워시를 바르고 씻는다.


가끔 너무 피곤하면 면도는 생략한다.


이 똑같은 일을 몇십 년째, 아침저녁으로, 집이든 전 세계 어디에서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기분은 많이 다르다.


퇴근하고 와서 지친 몸을 이끌고 귀찮은데도 샤워부터 한다. 내리 붓는 물이 하루의 피로와 잡념을 씻어주는 것 같다. 샤워를 마치고 전신을 수건으로 닦을 때,


“하아~ 오늘도 무사히 끝냈다.”

하며 마음까지 내려놓는다.


아침엔 반쯤 감긴 눈으로 샤워를 시작한다.


“10분 내로 끝내야 해. 시간이 없어.”


여유 있을 때는 마지막에 따뜻한 물로 뒷목을 맞으며 눈을 감고 잠시나마 그냥 그렇게 있는다. 하지만 아침에 그럴 시간은 없다. 아침 5분은 평상시 1시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나가면 지각할 수도 있고, 막판으로 갈수록 교통 지옥은 절정에 치닫는다.


일요일 늦은 아침, 차 한잔을 마시며 창 밖을 본다. 뭘 해야 할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하루는 행복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한 후, 샤워를 한다.


정해진 시간은 없다. 그냥 내가 씻고 싶은 대로,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씻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으면 간단하게 샤워하고 동네 사우나로 간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신입사원 때 일이다. 젊음과 패기로, 사회생활 초년생의 긴장감으로 뭐든 열심히 해보겠다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월급이 300만 원 정도 더 들어왔다.


‘뭐지, 재무팀에서 실수했나?’


모를 땐 물어보는 게 상책.


그런데, 물어봐도 적합한 사람에게, 제대로 물어봐야 원하는 답 혹은 그 이상이 나온다.


나도 바보는 아니었던지라 같은 팀 OJT 해주는 부장님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만일 물어봤다면,


“어, 이상하네. 작년 성과에 다한 평가급이라 올해 처음 입사한 신입사원은 해당 안될 건데.”


라며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말만 들었을 거다.


성격 안 좋은 사람이라면, 작년에 한 것도 없는데 신입사원이 왜 받냐 하며 자기 돈도 아닌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럴 땐 역시 동기에게 물어보는 게 편하고 정확하다. 재무팀에 동기가 있으면 딱인데 없어서, 여러 군데 친하고 회사 돌아가는 소식에 밝은 친구에게 물어봤다.


“아 그거. 사장님이 이번 신입사원들 맘에 든다고, 앞으로 열심히 하라고 챙겨주신 거래.”


신입사원 교육 마지막 날, 전체 회식 때 사장님이 밥만 먹고 가시지 않고, 늦게까지 이야기도 하고 같이 노래도 불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장님 사랑합니다. 저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며 술 취한 김에 미친 척 사장님을 껴안던 동기도 있었다. 사장님도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잘 쓰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받은 만큼 회사에 기여하겠습니다.‘


10여 년 전 일인데도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보다 더 많은 액수의 성과급을 받은 적도 많았는데 그때가 가장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다.




올해 초 성과급을 받는데, 작년에 입사해서 1년을 다닌 신입사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얘길 들어보니 회사 실적이 좋지 않아 신입사원에게는 성과급이 일괄 300 만원씩 지급되었다고 한다. 나도 회사 실적이 좋지 않아 예년에 비해 적은 성과급을 받았다.


같은 팀에 있는 신입사원이 저녁 술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선배님, 어렵게 들어온 좋은 회사인데, 원래 성과급이 이렇게 적나요?

다른 회사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해보니 너무 적어서요. “


신문에 나온 기사나 실적이 좋은 큰 회사에서 몇천만 원씩 성과급을 받은 친구와 비교를 하나 보다.


우울해하는 친구에게,

신입사원이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그것도 받은 걸 감지덕지해라. 회사 어려운지는 모르고. 더 열심히 해서 성과 만들어서 회사가 돈 많이 벌게 해서 성과급 많이 받을 생각 하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러면 바로 꼰대, 이상한 사람이 되어 후배들이 기피하는 선배가 될 거다.


그래서 그냥 좋게 좋게,

“올해는 우리 회사 실적이 좋지 않다 보니 성과급이 조금 나온 거 같아. 실적 좋을 때는 더 많이 나온 적도 있으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아.“


라고만 했지만,


“네” 하면서도 표정이 별로 밝지 않았다.


얼마 뒤, 그 친구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인사 차 찾아왔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이미 윗분들과 면담을 마치고 사직서까지

제출한 상태라 잡는다는 것도 좀 그래서,


“그래요. 고생했어요.

앞으로 뭐 할 거예요? “


물으니,


“좀 쉬다가 사업을 해보려고요.

친구들과 생각해둔 아이템이 있거든요.

회사에 오래 다닌다고 해봤자... “


“그래요, 잘하시고,

건강하세요.

좋은 소식 있으면 전하시고. “


“네,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회사 건물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는데,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이 걸렸다.


‘회사에 오래 다닌다고 해봤자...’


언젠가 퇴직하시는 임원 분이 술 마시고 그런 말씀을 하셨다. 출장도 몇 번 모시고 다닌 분이라 꽤 친분이 있었는데, 예상치 않게 퇴직 통지를 받으시고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젊은 시절 한평생을 회사에 바친 나한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 갑자기 내치나.


당신도 정신 똑바로 차려.

임원 된다고 큰 부자 되는 거 아니야.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챙겨야 해. 나처럼 회사에 헌신하다가 헌신짝 되지 말고.“


퇴직한 신입사원은 이 퇴직 임원분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까.


분명히 이 신입사원 친구도 나와 같이 300만 원을 받았는데 왜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왔을까.


어느 평일 아침 들어가기 싫던 회사 건물이, 휴일 약속 차 우연히 지나칠 땐 참 평화로워 보인다.


오늘도 인생과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전 07화 회의 지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