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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Dec 25. 2022

자본주의에서 살아가기

흙수저로 어린 시절을 살아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사치‘, ’허영‘ 그리고 ’빚‘입니다.


직장생활을 10여 년 하는 동안, 해외 근무도 제법 오래 해서 받은 수당으로 아파트도 마련해서, 부자라고 하기는 어려워도 밥 먹고 살 정도는 됩니다.


‘빌린 돈으로는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을 몸으로 느낀 후부터는 신용카드를 쓰지 않고, 체크카드만 씁니다. 없으면 안 쓴다는 주의죠.


혼자서 쓰는 돈은 한 달에 30만 원 정도 쓸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점심은 주로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집에 와서 먹거나 법카로 회식을 하기 때문이죠. 옷에도 별 관심이 없고, 회사 생활하면서 사둔 옷 등이 있어 돈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손이 건조한 편이어서 겨울엔 핸드크림을 바르는데 큰돈 들이기도 싫고 일부러 사러 가기도 귀찮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화장품 가게에 1+1 5000원 정도에 작은 휴대용 핸드크림이 보이길래 샀습니다. 이마저도 자주, 많이 바르지는 않다 보니 개봉하고 6개월, 9개월 등 한도까지 씁니다.


연말 행사에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밥도 주고 집에 갈 때는 선물을 주더군요. 애솝이라는 브랜드 핸드크림이었습니다. 처음엔 내용물이 뭔지 모른 채로 큰 포장을 열었는데 작은 핸드크림 하나만 있었습니다.


바로 발라보려다 갑자기 이건 얼마일까? 그래도 꽤나 이름 있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인데, 참석자들에게 주는 선물로 싸구려를 주진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던 핸드크림도 남고, 당근마켓에 팔까 해서 가격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3만 원 정도 하더군요. 요즘 밥 한 끼에 만원에서 1.5 만원 정도하니 두 끼는 먹겠군. 하며 중고거래에 올리려다,


날도 추운데 이걸 약속 정해서 만나서 건네주고 돈 받는 번거로움이 몰려왔습니다. 때마침 휴대용 핸드크림도 거의 다 쓰고 유통기한도 끝나가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써봤습니다.


비싼 게 다르더군요.


끈적임도 없고, 냄새도 자극적이지 않고.

후배들에게 이 얘기를 하니 유해성분도 훨씬 덜하다며 한마디 더 합니다. (광고 아닙니다 ㅎㅎ)


“비싼 건 이유가 있어요.”


갑자기 제가 꾸준히 잘 써오던 휴대용 핸드크림이, 이제는 거의 다 써서 짜진 모습이 무척이나 초라해 보였습니다. 더 좋은 걸 써 보기 전엔 내 손을 촉촉하게 해 줘서 잘 썼는데요.


마치 행사장에서 잘 나가고, 연봉 높은 고위 임원의 하얗고 기름 좔좔 흐르는 얼굴을 보다, 지하철에서 막일하고 지저분한 작업화를 신고 거친 얼굴을 하고 있는 일용직 아저씨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어려서부터 강제 절약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우스갯말로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다는 말을 실감했었습니다.


대학 때 소개팅하러 나가려는데 월말이라 통장에 2만 원이 있길래,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더니 자기도 만원 밖에 없다고, 결국 3만 원 가지고 소개팅하러 나갔습니다.


어찌나 불안하던지.


그때가 돈 없어서 밥 못 먹을 뻔했던 다음으로, 돈 때문에 불안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검소하게 살며, 월급 받아서 적금 넣고, 예금으로 전환해서 부동산 등에 투자하며 살아야 한다고 교육받아왔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크게 불편하지 않았죠.


그냥 평소 먹고 싶었던 문어 숙회를 먹고 싶어서 식당에 들어갔는데 너무 비싸서 친구와 밖으로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주꾸미 트럭이 있길래, 씁쓸해하며 저거라도 먹자 하며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렸을 때라 맛있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사온 소주를 기울이며,


“야, 돈은 많아야겠다. 우리 열심히 벌자.“

하고 웃어넘겼죠.


한 번은 해외 출장을 가는데, 비행기 표 티켓팅할 때 프런트 직원 분이 물어보셨습니다.


“부칠 짐은 없으세요?”


단기 출장이라 기내 탑승이 가능한 작은 캐리어 하나만 가져와서,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비행기도 많이 타셔서 회원 등급도 높아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를 해준다고 하시더군요. 해외 출장 많이 다닌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혹시 비즈니스 클래스 남는 좌석이 없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탑승구 쪽 다리를 편하게 뻗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도 묻는 등 귀찮게 합니다. 그런데, 부칠 짐도 없고, 출장이라 정장도 깔끔하게 입고 와서 좋게 봐주시고 배려를 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비행기를 타니,


“코트 걸어드릴까요?”


하고, 승무원 분이 미소 띈 얼굴로 상냥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코노미에 탈 땐, 그냥 제가 짐 칸에 접어서 던져 놓습니다. 편하게 배려해주시는데 묘하게 불편하더군요.


‘나도 손발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왜 남에게 시키나.‘


밥 먹을 때 이코노미 좌석에선 거의 무슨 배급하듯이 나눠주는데, 비즈니스 클래스에선 식탁보를 깔아주고 접시에 일일이 반찬을 나눠 담아 주시더군요.


와인도 이노코미에선 화이트냐, 레드 와인이냐고 묻지만, 비즈니스에선 4 종류의 와인 이름을 말해주며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평소 잘 못 마셔보던 와인이라 1번부터 4번까지 번갈아가며 한잔씩 다 마셔 보았습니다.


10시간 넘게 비행해서 미국에 도착하고 호텔로 가는데 별로 피곤하지가 않더군요. 이코노미 좁은 좌석에서 지나다니는 사람 신경 쓰고, 애들 울고 할 때보다 훨씬 쾌적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180도로 젖히고 푹 자서 그랬는지. 아마 모두 다가 이유였겠죠.


시차 적응도 훨씬 빠르고 미팅도 잘 마쳤습니다. 왜 잘 나가는 회사들이 6시간 이상 출장으로 비행할 경우엔 평직원도 비즈니스 클래스로 승급시켜서 티켓팅해주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직원이 고생한다, 예뻐서가 아니라 업무 효율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만큼 대우받으니 더 잘해야겠다는 사기충천도 덤이죠.


그리고 출장 목적을 잘 달성하고 복귀하는 비행기에서도, 승급을 기대했지만 굳이 프런트 직원 분께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


하. 그런데, 매번 타고 다니던 이코노미가 그날따라 왜 그렇게 불편했던 것일까요.


자리도 너무 좁게 느껴지고, 잘 먹던 기내식도 뭔가 맛없고, 앉아서도 꽤나 잘 잤는데 뒤척이며 잘 자지도 못했습니다. 그날따라 옆자리에 150 킬로는 되어 보이는 친구가 통로 쪽 자리에 앉은 저에게 화장실 간다고 왜 이렇게 자꾸 잠 들만 하면 깨우는지.


한국에 도착해서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깨달았습니다.


아, 이것이 친절이고 배려이기도 한데,

동시에 고도의 상술이구나.


더 높은 급의 맛을 한번 보고 나면, 현재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족이 생기는 거죠. 더 좋은 것을 찾게 되고.


두 배 값 내고 비즈니스 타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돈을 더 벌어서 돈을 그만큼 더 내던지, 회사에서 더 승진해서 출장 갈 때 비즈니스 클래스 타도록 열심히 일하라는.


평생 좁은 집에 살던 사람이 열심히 하고 돈 벌어서 넓은 집으로 이사 가서 잘 살다가, 사정이 생겨 다시 그 좁은 집으로 돌아오면 왜 그렇게 좁게 느껴지는 것인지와 비슷한 상황 같습니다.


보통 다시 그 좁은 집에서 못 산다고 하죠.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사는거지.




금딸기라고 동네 할인 마트의 떨이 딸기도 싸게 샀다고 좋다고 맛있게 먹다가, 같은 딸기인데 워커힐 딸기를 먹은 후 다시 동네 마트 딸기를 먹으면 맛이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을까요?


끊임없이 위를 보고 살면 만족이 없어지니, 현실의 행복을 보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믿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본 위는 너무나도 달콤해서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들 피해 주지 않고 열심히 해서 누리고 살자.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언젠가 무소유를 설파하시던 유명한 유학파 스님께서 실제로는 풀소유를 하고 계셔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지금은 방송에도 나오시지 않고, 베스트셀러 책들도 서점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하는 말과 실제 하는 행동이 극과 극으로 다른데 누가 그분의 말을 이전처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조롱하는 사람이 많았겠죠.


그래서 육식을 금하는 불교에서, 승려가 한번 고기 맛을 보면 절 뿐만 아니라 근처에 고기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옛말은 틀린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현실에 만족하며 안분지족해야 할까요?


아니면 노력해서 돈을 더 벌면 더 상위 레벨의 제품을 사고, 서비스를 누릴 수 있으니 차별화된 노력을 기울여 성과를 내야 할까요?


혹은 워라밸 (work & life balance) 처럼 균형과 중용을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그 균형과 중용이라는 것도 참 애매하고, 진정한 의미를 아직은 깨닫지 못한 듯합니다.


결국 가치관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라구요?


인생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되, 생각도 해보고 조언도 들어보며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해답이 있으신 분이 있다면 한수 가르쳐 주시지요.


메리 크리스마스 & 해피 뉴 이어 입니다.

Merry Christmans $ Happy New Year!

Felis Navidad y ano nu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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