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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상 안영과 양금택목

by 이상 Feb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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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 숙제 이야기에 이어, 관포지교 즉,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를 말씀 드렸습니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제나라의 환공을 춘추오패 중 첫번째 패자로 만든 명재상 관중이 한 말이지요.

 

사기와 손절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친구 관계가 늘 좋을 수만은 없지요. 나 자신도 늘상 맘에 들 순 없는데,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갈등이나 서운한 점이 없을 수 없지요. 그래서 죽이 잘 맞는 친구 사이라도 같이 사업을 하거나, 같은 집에서 살면 꼭 싸우게 되고, 화해가 안 되면 갈라서게 되는 일까지 있지요.

 

관중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일입니다.

 

환공이 문병을 가서 관중에게 후임자에 대해 물었지요.

 

“후임자로 포숙이 어떻소?”

 

“예, 포숙이 적임자이옵니다.”

 

이렇게 관중이 답했을까요?

 

그랬으면 사기가 이렇게 도덕책 수준의 이야기만이 아닌, 생생한 인간사를 닮고 있어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오랜 세월 읽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관중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포숙은 군자이기 때문에 정치를 못합니다.

그는 선악을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분명합니다. 물론 선을 좋아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나 그만큼 악을 미워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포숙은 나쁜 일을 한 사람을 평생 미워합니다. 그러니 누가 포숙 밑에서 견뎌내겠습니까. 이것이 포숙이 정치를 할 수 없는 결점입니다.”

 

자신을 천거해주고, 믿어줬다고 그렇게 칭찬하던 포숙에 대해 의외의 대답이면서도,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후임자의 대안으로 관중은,

성격도 원만하고 공사도 잘 구분하는 충실한 사람을 추천합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명이 길지 않을 듯 싶다는 아쉬움을 담습니다.

 

그러면, 자신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어떻냐는 환공의 말에,

결국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라며 반대했지요.

 

관중이 자신을 천거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포숙은 이렇게 말합니다.

 

“관중은 나라에 대한 충성만이 있을 뿐, 친구나 자기 개인을 위해서 나랏일을 잘못 판단할 사람은 아니오.

 

관중이 나에게 사구 벼슬만 (지금의 법무부 장관) 시켰더라면 내가 벌써 이 나라 간신을 다 내쫓아 버렸을 것이오. 나도 이걸 생각하면 참 분하긴 하오.”

 

어쩌면 갈등 관계에 있을 때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관중이 세상을 떠나고, 환공은 관중의 말을 듣지 않고 간신들을 중용하고 패자로서의 면모는 사라지고 국력은 기울기 시작합니다. 환공 사후에는 권력 투쟁으로 국력이 약화되고 결국 패자의 권위를 잃고 맙니다.

 

인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대목이지요.

 

제나라의 재상 중에는 관중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20년 동안 재상을 지낸 관중도 대단하지만,

50년 동안 재상을 지낸 안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세종대왕님의 베프 황희 정승님이 비견되지요.)

 

그는 관중 사후 100여 년 후의 사람으로, 제나라의 영공과 장공, 경공 등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냈고, 제나라를 크게 부흥시켜 그 이름을 떨쳤습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의 생활은 아주 검소하여 30년 동안 옷 한 벌로 생활했다고 합니다. 약간의 과장이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국무총리나 장관 그리고 국회의원 분들 중에 청렴과 거리가 있는 분들과 비교해보면 대단하지요.

 

그와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월석보라는 어진 사람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 사람이 죄인의 몸이 되어 오라에 묶인 채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안영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이를 보고, 자기 수레의 왼쪽 말을 풀어 죄값으로 내주고 월석보를 자신의 수레에 태워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한 안영은 월석보에게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고 내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월석보가 안영에게 떠나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안영이 깜짝 놀라 옷을 가지런히 하고 뛰쳐나와 사과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비록 어질지는 못하나 당신을 어려울 때 구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빨리 떠나려 하십니까?”

 

월석보 왈

 

“군자는 자기를 몰라주는 자에게는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뜻을 펼친다고 합니다.

 

내가 묶여 있을 때 저 포졸들은 나를 몰라주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생각한 바 있어 나를 구해주었으니 나를 알아준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알아주면서도 이렇듯 예에 어긋나게 대해주시다면

이는 내가 묶여 있을 때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제가 그만 큰 무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안영은 잘못을 깨닫고는 즉시 월석보를 귀한 손님으로 모셨습니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글귀 없으신가요?

 

저는,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짓는다.”

 

즉, 양금택목 (良禽澤木)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삼국지에서도 처음 원소 휘하에 있었던 조운이 대우를 받지 못하고 그의 인용술과 안목 등에 실망해서 떠나고,

공손찬을 거쳐 결국 유비 밑에서 고생 고생하다 오호대장군에 오를 때 이 말이 나옵니다.

 

원소가 현명한 주군이었다면 상산 조자룡 같은 사람을 중용했을 것이고,

곽도나 심배 같은 문제가 있는 책사들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후에 원소군 분란의 주된 원인을 제공하지요.)

 

그랬다면 관도대전 즈음, 당시 조조군에 배속되어 있던 관우가,

원소군의 맹장 안량과 문추를 차례로 베어 버리고 승기를 잡았을 때,

조자룡이 등장해 호각지세를 이루며 그런 일이 없게 만들었겠지요.

 

이래서 리더의 안목과 인재의 적재적소의 배치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안목 있고 자신의 역량을 알아주고 그에 걸맞는 자리에 배치해서 활약하게 해주는,

좋은 리더와 함께 하고 계신가요?

 

공자님이 말씀하신 “양금택목”을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고, 불만족스럽다면,

이 이야기와 함께 되돌아 보셨으면 합니다.


2월 마지막 날.

금요일 잘 보내시고,

연휴로 시작하는 3월에 뵙겠습니다 ^^


이번 달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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