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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관찰기

한스 / 반려종의 시선 1장. 사랑과 돌봄에 대하여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동지들을 위해 입을 연다. 우리는 2022년 7월부터 서울 용산구 소재 36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2층에 있는 17평형 사무실에 붓글씨 풍 궁서체로 축하 메시지가 출력된 분홍색 나일론 리본을 달고 순차적으로 도착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친구는 출입구에 놓인 호접란으로, 다섯 살 아이 손바닥만 한 잎 두 장이 전부인 몸집에 비해 넓고 깊다 싶은 원통형 화분에 담겨 있다. 호접란의 뒤를 이은 극락조+여인초 화분은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탕비 구역(싱크+냉장고+커피머신+정수기) / 담소 구역(소파+테이블) / 업무 구역(이른바 ‘오피스가구’)을 나누는 무늬목 파티션에 밀착됐다. 그다음으로 배송된 드라코 드라세나 또한 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다 사방을 유리벽으로 둘러 조성한 회의실 구석에 놓였는데, 회의실 유리문을 닫으면 곧장 공기가 정체됐다. 이후로는 자리 배치가 비교적 용이한 덩치 작은 친구들 - 사츠키(왜철쭉) 분재, 미니 콩고, 몬스테라, 십이지권, 스투키 - 가 차례로 입성했다. 작은 친구들은 사무실 집기가 미세하게 자리를 바꿀 때마다 임의로 좌표를 수정 당했다.


   사무실 입주민들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식물들을 어쩔 줄 몰라 했고, 결국 격주 일요일마다 사무실을 방문하는 청소업체에 우리의 생존을 위탁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각자의 속성과 무관하게 ‘2주에 한 번, 듬뿍’을 기준으로 동등한 식단 관리를 받았다. 따라서 목마를 때마다 조금씩 수분을 섭취해야 하는 예민한 이 몸, 사츠키는 2주마다 폭식을 하며 점차 건강을 잃었고, 결국 꽃 피는 봄이 오기도 전에 밤색 도자 화분에서 화석(化石)으로 승화했다. 사무실 입주민들이 볼품없이 바싹 말라버린 이 몸뚱아리를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지 않고 화분에 그대로 두는 이유가 귀찮아서인지, 미안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 몸은 무덤 위 묘비처럼 여전히 밤색 화분에 우두커니 서서, 동지들의 불안한 여생을 관찰하고 있다.




   다음 차례는 스투키였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충분히 물을 마시면 되는 스투키에게도 ‘2주에 한 번, 듬뿍’이란 식단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건장한 성인 남성 검지 손가락 굵기의 짙은 초록색 줄기 4개는 하나씩 쪼글쪼글한 황토색 막대로 변해갔다. 사무실 입주민들은 스투키 화분에서 ‘죽은 애’를 하나씩 뽑아내며, “웬만해선 스투키 죽이기 쉽지 않다는데….” 하고 자책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을 되풀이했다. 스투키가 심겨 있던 항아리 모양의 백색 화분에 흙 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사무실 입주민들은 청소업체에 연락해 앞으로 식물은 저희가 관리하겠노라 선언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바퀴 달린 화분 받침과 플라스틱 화분(‘저면관수’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마사토, 식물용 액상 영양제가 사무실로 배송됐다. 사무실 입주민들은 화분 받침 등이 담긴 택배 상자를 호접란 화분 옆으로 옮기며 “조만간 꼭 호접란 분갈이하자”고 말했다. 사무실 입구에 방치된 호접란은 생사가 모호했는데, 잎사귀의 주름이 나날이 깊어지긴 했으나 아직 녹색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만간’의 기간이 한 달을 넘기면서, 호접란의 생사가 ‘조만간’ 명확해질 것임이 거의 자명해졌다.


   예상을 뒤엎은 건 드라세나 드라코였다. 으레 ‘빗자루’, ‘파인애플’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좁고 긴 잎사귀가 하늘을 찌르듯 자라는 게 ‘정상’이지만, 회의실의 드라세나 드라코는 동양난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잎사귀를 아래로 떨군 채 일 년 넘도록 그럭저럭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무실 입주민들이 식물들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후로, 나름 잘해보겠다고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십이지권을 뺀 나머지 친구들에게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분무기로 물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결국, 드라세나 드라코의 난초 같은 잎사귀들은 급속하게 갈변했다. 법정공휴일과 주말이 이어져 4일 만에 출근한 입주민들은 갈색 잎사귀를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뜨린 드라세나 드라코를 보고 경악했고, 다시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드라세나 드라코 화분을 그나마 바람이 좀 통하는 베란다 앞 계단참으로 옮겼다. 중환자가 되고 나서야 드라세나 드라코는 답답한 회의실을 벗어날 수 있었으나, 이미 ‘골든 타임’을 훌쩍 넘겨버린 뒤였다.




   스투키와 마찬가지로 과한 수분 공급이 치명적인 십이지권은 확실히 동족들에 비해 호리호리하고 특유의 하얀 점박이 무늬가 듬성듬성하고 흐릿하여 발육부진임은 틀림없으나 ‘2주에 한 번, 듬뿍’ 체제를 꿋꿋이 이겨냈다. 알이 굵은 흙이 야트막하게 깔린 찻잔만 한 화분이, 즉 다량의 물을 오랫동안 머금고 있기엔 역량이 부족한 화분이 십이지권의 장수(?) 비결이 아니었나 짐작해 본다. 역시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다. 미니콩고와 몬스테라, 극락조+여인초도 타고난 운이 있는 건지 열악한 와중에 새잎도 내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잘’이란 부사 대신 ‘그럭저럭’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 모두 잎사귀 때깔이 동족들에 비해 파리하기 때문이고, 생장 속도 또한 ‘일시 정지’ 버튼이 눌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더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확실히 살아 있다. 적어도 사무실 입주민 중 하나가 ‘2주에 한 번, 듬뿍’ 식단을 철회하고 화분 가장자리 쪽에 나무젓가락을 깊숙이 찔러본 다음 흙가루가 전혀 묻어나오지 않음을 확인하고서 ‘애들이 목을 축일 정도로만’ 물을 주고 있으니, 적어도 ‘당분간은’ 다들 목숨을 유지하리라 기대해 본다. 그러나 물을 주기 전 나무젓가락으로 화분 속 습도 현황을 점검하는 수준의 관심과 노력만으로 동지들이 길이길이 생명을 보전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담소 구역 테이블 구석에는 거주자를 잃은 항아리 모양 백색 화분이 어정쩡하게 놓여 있고, 테라스 계단참에는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몸통만 남은 드라세나 드라코가 망연자실 서 있다. 그리고 이 몸, 사츠키는 무덤 위 묘비처럼 여전히 밤색 화분에 우두커니 서서, 동지들의 불안한 여생을 관찰하고 있다. ‘다음 차례’는 누구일지 궁금해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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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해왔으나 여전히 글을 쓰는 게 버겁고 괴롭다.

인간중심 사회가 이상하게 느껴져 동물에서 얻는 재화와

화석연료에서 얻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늘 성에 차지 않는다.

다니는 회사 사무실 식물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이를 글감으로 활용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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