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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열매 / 반려종의 시선 1장. 사랑과 돌봄에 대하여

   나는 우리가 함께 낮잠 자는 것과, 너의 까만 눈을 마주하는 것, 고요한 방에 울려 퍼지는 쳇바퀴 소리를 사랑했다.


   ‘암, 암, 그놈의 암’


   우리는 내가 가장 약해져 있었을 때 만났다. 그러니까 엄마가 갑상선암에 걸렸단 사실을 듣고 우리 가정이 어딘가 기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때다. 사람 셋과 개 하나로 구성된 가정에서는 엄마 혼자 돈을 벌었다. 엄마는 일을 다녀온 뒤론 네 식구의 밥을 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널고 몸을 뉘었다. 갑상선암으로 두 개의 갑상선 모두를 떼어내야 한단 진단을 받고서 처음 맞이한 명절 때도 엄마는 각종 튀김과 함께 새우튀김을 튀기고 있었고, 남성들은 누워 핸드폰을 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했다. 집안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개는 여전히 마당 한 켠에서 줄로 묶여있었다. 아픈 엄마를 도와(어쨌든 집안일은 엄마 몫이었으니까)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갑자기 낯설어진 풍경에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정말로 그 집 안으로 다시 머리를 들이밀지 않게 될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랑과 차별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실감했다.


   대학 시절, 집에 손 벌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던 친구의 야무짐이 부러웠다. 나는 집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 선언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알바에 매달렸다. 내 손으로 번 돈이 나를 지탱해 준다고 생각했다.


   낯설었던 명절이 지나고 난 며칠 후였다.


   “엄마가 그 돈을 어떻게 다 감당하니? 네 학자금은 대출받은 거지.”


   그동안 온전히 엄마의 따스한 보호 아래에 있었다고 믿던 나는 누군가가(높은 확률로 ‘나’인) 갚아야 하는 ‘대출’이라는 말에 놀라기도 잠시였다. 반사적으로 “오빠는?”이라고 반문했다. “오빠 등록금도 학자금 대출이야?” 엄마는 말을 얼버무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집요하게 물었다.


   “그럼 한 학기에 100만 원이나 비싼 오빠 등록금은 내준 거야? 나 엄마한테 생활비랑 월세도 손 안 벌렸잖아.”

   “너는 네가 하겠답시고 알바했잖아. 오빠는 안 하니까 줬지, 어쩔 수 없잖아. 네 오빠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데 너까지 왜 그래.”

   “…. 그러니까 오빠 생활비까지 준 거야? 얼마?”

   “이제 그만해. 엄마 정말 힘들어.”


   엄마는 날 사랑했다. 옆에 두고 싶어 했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나를 고마워했다. 힘이 남아있을 때면 꼭 안아주기도 했다. 학창 시절 겪어야 했던 나의 아픔에 함께 무너져 내릴 것 같이 울어도 나를 위해 엄마의 자리를 지켰다. 그저 내가 엄마의 고된 노동을 단지 엄마의 ‘역할’이라 외면한 것처럼 엄마도 ‘남편에게 순종하고 부족한 자식을 챙기는’ 엄마의 역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너를 만나기 전 우리 집은 사랑하면서도 차별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 이후부터 차별은 들어내고 사랑만 남기려 노력했다. 취업 시기와 마침 맞물려 낮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당구장 알바를 하며 남은 돈을 엄마 아들에게 주었다. 엄마에게 손을 벌리지 말라 당부했다. 본가에 내려가는 날이면 묶여있는 강아지와 날밤을 지새웠다. 온갖 핑계와 설득으로 개를 집안에 들여놓으려고 노력했다. 엄마가 치료를 받는 날이면 아빠도 오빠도 오지 않는 엄마의 병실을 꾸준히 들여다보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일 좀 하라고 남성들에게 대항했다.


   변하는 건 없었다. 오빠는 나와 엄마에게 생활비를 받아 갔고, 1,200만 원의 학자금은 그대로였다. 강아지는 여전히 줄에 묶여 있었으며 집안일은 나 아니면 엄마의 몫이었다.


   지쳐버린 나는 새로운 가족을 갖고 싶었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새롭게 지정한 나의 공간에 가족을 들이고 싶었다. 그게 너였다. 이미 성체가 되어버려서 마지막이라고 올라온 분양 글의 주인공. 너와 나는 꽤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의 이름을 인연이라고 지었다.


   품에 너를 안은 그 겨울날, 나는 너의 온기를 느끼며 우리는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춥지만 햇볕은 따스했고, 너는 졸음이 오는 얼굴이었다. 너와 있다면 나의 일상은 나른한 오후 같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첫날의 예상과 달리 너는 싫다는 표현을 꽤 정확히 하는 편이었고, 네가 싫어하는 것들은 보통 나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내가 움직여서 너에게 다가가는 것, 내 손가락이 가까이 오는 것, 너를 안아 들어 올리는 것, 발톱을 깎는 것, 목욕하는 것, 너의 공간을 청소하는 것.


   운이 좋게도 네가 좋아하는 것들 몇 가지도 나와 관련되어 있었다. 너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방석을 키는 것, 꿈틀거리는 밀웜을 내미는 것, 네가 좋아하는 사료를 채우는 것, 청소하고 난 쳇바퀴를 다시 넣어놓는 것, 갈증을 식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것, 사육장 안에서 너를 꺼내 더 넓은 방 안을 누비게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도 너와 관련된 거였다. 싫어하는 너를 어르고 달래며 포치(고슴도치가 들어가는 천 주머니, 은신처로 사용한다) 째 배 위에 올려놓으면 너는 이내 고개를 내밀며 내 옷 속으로 파고든다. 가시를 세운다. 움직임이 멈추면 가시를 내리고 다시 잠이 든다.


   그래, 그놈의 암.


   성체가 된 고슴도치는 적응력이 떨어져 핸들링이 아예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너를 꽤 많이 만지던 다음날이면 너는 스트레스에 못 이겨 녹색 변을 눴다.


   ‘나는 네가 싫어하는 일은 도저히 못 하겠어.’


   게으르고 강단이 없었던 나는 매일 핸들링을 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네가 아플까 무서워하며, 나중에는 변하지 않고 가시를 세우는 너의 모습에 서운해져 너를 꾸준히 만지지 못했다. 솔직한 말로 너에게까지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포치 너머로 전해지는 온기에 만족했다.


   그래서 엄마의 갑상선을 가져간 암이 너의 턱 밑에서 천천히 자리를 잡아갈 때도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빌어먹을 암이 결국 크기를 키워 너의 턱을 우그러뜨리기 시작했을 때서야 병원을 찾았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면 많이 늦었어요. 길면 3개월일 거예요.”


   뭔 소리지? 너는 이빨이 좀 빠지긴 했지만 밥도 잘 먹고 쳇바퀴도 매일 돌렸고, 대소변도 잘 봤는데. 매일 너의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는데.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다른 방법이 나오질 않았다.


   “나이도 많아서 센 약을 쓰기 어려워요. 통증을 줄여주는 약이랑 염증 약을 드릴게요. 종양 크기가 커지지 않는다면 3개월은 버틸 거예요.”


   나는 너를 쉽게 보내지 않을 거야. 무슨 소리야. 너와의 이별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 내 첫 가족. 내 인연. 왜 갑자기 훌훌 떠나려고 해. 내가 만지는 것도 싫어하더니 이제 나를 버리고 영영 사라지겠다는 거야? 아픈 티라도 좀 내지.


   항암 치료를 돌본다는 건 턱이 우그러진 채 약 먹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는 너를 잡고 매일 밤 억지로 약을 먹여야 한다는 거였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쳇바퀴 소리에 안도하면서도 힘겨워하는 너의 아침을 지켜봐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 잔인하게도 네가 천천히 죽어가는 과정을 가장 옆에서 매일 지켜봐야 했다. 그때는 현관문 여는 것조차 섬찟하게 무서웠어. 연아, 네가 죽어 있을까 봐.


   평소처럼 약을 먹이다 네가 웬일로 발버둥을 치다 말았다. 가시를 내린 채 가만히 나의 체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틈을 타 아직 말랑한 너의 발과 몸을 만졌다. 기분이 좋았다. 이제서야 내 손을 받아들여 주는 건가? 너는 심지어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기까지 했다. 문득 든 불길한 기분을 뒤로 한 채로 일부러 웃음기를 띄며 너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마치 네가 가지 않을 것처럼. “쉽게 보내지 않을 거야. 각오해.” 으름장을 놓은 그날도 나는 너의 쳇바퀴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 너는 죽어있었다.


   이상했다. 너의 몸이 딱딱하게 생기를 잃었다. 나는 너를 보낼 수 없었다. 혹여 네 몸이 썩어 갈까 봐 한동안 너를 놓지 못했다. 멍하니 너를 안고 있던 나는 너를 그 차디찬 냉동실 속으로 너를 넣고 출근했다. 너는 사막을 누비던 고슴도치라 추위가 치명적인데.


   반차를 내고 다시 집에 돌아온 나는 밤이 되어서야 너를 보내주려 화장터로 갔다. 내내 비가 내렸다. 생경했다.


   너처럼 성채일 때 둘째로 데려온 검은 강아지. 기억해? 킁킁거리던 너와 닮은 검은 개. 철없이 니 밥을 다 탐내던 그 개도 네가 가는 그날에는 짖지도 않고 가만히 내 옆을 지키더라고, 너처럼 내 옆에 딱 붙어있는 건 질색하던 놈이.


   그래, 진짜 이상한 날이었어. 너를 보내고 현관문을 여는데 우연찮게 눈에 들어온 초인종에 그려진 희미한 동그라미. 네가 보게 해줬지? 내가 그 자국을 처음 발견한 덕에 우리 건물의 범죄를 막을 수 있었어. 혹시 모자란 나 때문에 끝까지 걱정만 하고 간 건 아니야?


   네가 간 지 1년이 된 지금은, 네가 남긴 흔적들을 아무리 끌어모으고 문질러 봐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네가 없다는 사실은 변함없더라. 그래서 그냥 다른 걸로 덮으려고 했어. 네가 진짜 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마주치는 게 싫었어. 주말에는 알바를 하고 평일에는 일을 했지.


   아, 그리고 네가 쳇바퀴 돌리던 시간이었던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검은 개가 매일 같이 장난을 걸기 시작했네. 너희는 꼭 소리도 없이 살피더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고요히 다정하게. 그러면 무심한 나는 매번 늦게야 알잖아.


   너를 그리워하며 간간히 본 반려동물 이별 타로나 사주에서 자꾸 네가 내 걱정을 많이 하고 갔대. 다른 영상을 한 번 더 봐도 똑같이 너는 사람보다 나은 애였고, 날 많이 좋아했다고도 하더라. 우리가 가족이라서 좋았다고 한다더라고. 우리가 가족이어서, 함께여서 좋았다고 해.


   참내, 살아생전 가시만 세웠으면서. 꿈에서도 얼굴을 안 비추는 너를 무정하다 원망했어. 기어코 너를 메모리얼 스톤으로 만들고는 유골을 가지고 있으면 반려동물이 편하게 못 간다는 소리에 덜컥 겁이 나더라. 혹시라도 끈질긴 내 미련이 발목을 잡아 편히 못갈까 유골도 버렸어. 나는 너한테 미움받는 걸 싫어하잖아. 자주 보러 가려고 늘 산책 하던 곳에 뿌렸는데 그 뒤로는 혼자 거기를 못 가겠더라. 내가 너한테 짐이라면 내가 울든 원망하든 뒤돌아보지 말고 제발 편히 가던 길 가라고 빌었어. 그래도 너는 꿈에도 안 나왔잖아.


   그런 우리가 가족이었니.


   고슴도치. 성체가 되면 핸들링이 어려울 정도로 본능적인 고슴도치. 잠을 방해하지 않고 밀웜을 줄 땐 가시를 세우지 않았던 너. 아프리카 고슴도치에서 유래되어, 사람의 이기심으로 억지로 잡아다 길들이고 태어나게 한 동물. 그렇게 반려 고슴도치로 태어나 성체가 될 때까지 입양을 못 간 채로 인간에게 또다시 버려질 뻔한 너에게, 인간인 나는 이 땅의 겨울처럼 맞지 않는 환경은 아니었을까. 너를 괴롭히던 존재는 아니었나.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우리가 가족이었을까.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 사랑은 깊이와 형태를 달리해 너를 두드린다. 이런 나의 두드림은 너에게 발길질이었을까, 부드러운 파동이었을까. 지금도 닿고 있을까.


   하필 이번 연휴가 너무 길어버렸지 뭐야. 미뤄두었던 너와의 이별을 집에서 마주해야 했어. 그런데 울면서 본 반려동물 이별 타로에서 네가 나를 많이 걱정한다잖아, 또. 언제까지나 가족이라고. 매번 다른 영상에서 너는 늘 똑같은 말이야. 나 따라다니니.


   혼자만의 두드림인 줄 알았던 우리 관계는 하나의 형태로 익어가고 있었나 봐, 연아. 깊이를 더 해 변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가족인 채로.


   그래, 나는 언제나 너의 언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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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고슴도치인 인연이와 개 몽글의 언니.

아직 먼저 간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간간히 잠깁니다.

이제는 보이지 않아도 선명히 그려냄으로써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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