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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Apr 08. 2023

귓바퀴가 닮았다

내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이유

 우리 부부는 원래 딩크족을 꿈꿨다. 나는 원래 아기를 별로 안 좋아했다. 친구네 아기를 봐도 불편하고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몰랐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서 우는 아기 소리가 나면 짜증부터 났다. 식당에서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흘겨보면서 말리지 않는 부모들 욕을 하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연애 기간 동안 거의 싸운 적도 없이 워낙 둘 사이가 애틋하고 좋아서 아기 없이도 둘이서도 충분히 백년해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이제는 없어진 아현동 포장마차에서 남편은 결혼을 재촉하던 나에게 30대 초에 집이 망하면서 모아둔 돈이 거의 없어 결혼하자고 말을 못하겠다고 하여 둘이 포장마차의 두루마리 휴지 한통을 통째로 쓰면서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신혼생활은 1.5룸 오피스텔에서 시작했지만 깔끔한 신축 대단지 오피스텔이라 좋았다. 오피스텔과 아파트가 같이 있는 특이한 신축 단지였는데, 바로 같은 단지 30평대 신축 아파트에 1년 전 결혼한 친한 친구가 자가로 살고 있다는 것도 별로 비교되지 않았다. 둘이서만 살면 굳이 큰 집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다. 남편과 나는 회사 사무실이 매우 가까워 같이 출퇴근 하며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치솟는 집값에 나도 불안함이 엄습했다. 결혼을 꽤나 늦게 해서 나는 30대 중반이고, 남편은 마흔에 접어들었다. 아이를 낳지 않을 거지만 그래도 내 집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찌하여 나의 친구들의 상당수는 괜찮은 서울 아파트 자가로 시작했는지 슬슬 비교가 되었다. 주말마다 서울에서도 그나마 싼 동네의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고, 은행 빚을 무겁게 지고 작은 평수지만 방3 화2(방 3개, 화장실 2개)가 있는 번듯한 '우리'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우리집으로 이사온 우리 부부는 더욱 좋았다. 더욱 즐겁게 지냈다. 나는 마침 회사를 관두고 백수 생활을 하면서 남편의 일을 틈틈히 도와주기도 했다. 그저 평온한 나날들이었다. 나는 여전히 남편이 너무 좋았다. 어느 날, 나보다 먼저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걱정이 많은 나는 갑자기 이 사람이 없는 세상은 어떨까 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소중한 내 사람이 없어지면 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너무 슬펐다. 깊은 눈매가 매력적인 우리 남편...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서 갑자기 이 사람의 유전자를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소중하고 멋진 내 남편의 유전자가 아깝다고 생각했다. 하하 지금 글을 쓰는 중인데도 피식 웃음이 나는데, 그때의 나는 매우 진지했다. 남편이 없으면 자식이라도 의지하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나의 남편의 유전자를 이 세상에 계속 남겨야 하겠다는 그 생각이었다. 아기를 낳겠다고 결심했으나 그 결심의 이유는 여전히 남편이었던 것이다.


 남편에게 나의 임신 결심을 알렸을 때, 남편은 별말 하지 않았다. 늘 내가 하자는 대로 같이 해주는 사람이라  그러자고 했다. 3개월 간 술도 마시지 말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아이를 가지자고 했다. 한 번은 실패하고 친구들과 와인을 마신 적이 있긴 하지만, 바로 얼마 후 늦은 가을날 나는 임신 테스트기에 흐린 2줄을 확인했다.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했을 때는 그저 신기하고 들뜬 마음이었는데, 산부인과에서 ‘임신입니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벅차 눈물이 났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요즘, 종종 친구들 또는 회사 사람들과 아기를 어떻게 낳을 결심을 하게 되었냐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나와 같은 이유를 갖고 아이를 낳은 사람을 나는 아직은 못 보았다. 친구들도 이런 이유로 아이를 낳은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하면서, 다들 신기하게 생각하거나 웃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특이하고 웃긴 이유긴 하다. 그렇게 태어난 우리 애기는 지금 다섯살이 되었고, 나의 바람대로 남편을 똑닮았다. 남편의 아기 때 사진을 보고 우리 애기가 자기 사진이라고 할 정도로 정말 닮았다. 갈색 머리, 뽀얀 피부, 큰 눈망울, 코끝 가운데 얇은 주름, 웃을때 볼에 패이는 인디언 보조개까지 남편의 어린 시절을 빼다 박았다. 아직 남편처럼 쌍꺼풀은 없지만, 자고 일어나서 잠깐씩 지는 쌍꺼풀이 곧 남편의 눈매를 그대로 따라갈 것 같다.


 그래도 나를 닮은 것도 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귓바퀴는 나와 똑같이 생겼다. 나의 귓바퀴의 윗 부분은 작은 혹처럼 톡 튀어 나와있는데, 우리 애기 귓바퀴도 똑같이 생겼다. 어느 날 옆으로 누워자는 아기의 귓바퀴를 찬찬히 눈으로 훑으며 따라가는데 갑자기 톡 튀어나온 부분이 내 눈에 익숙했다. 이건 내 귀를 닮았네. 내 귀는 우리 친정 아빠를 닮은건데. 그저 남편만 빼다 박은 우리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귓바퀴에서 발견한 그 톡 튀어나온 부분이 우리  집 핏줄의 명확한 증거인 것 같아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외모는 남편은 닮았지만 성정과 행동은 또 나를 닮은 것 같다. 나는 옆으로 자기를 좋아하고 희한하게 종종 손목을 안으로 꺾고 세워 자기도 하는데, 어느 날 옆으로 누워 손목을 안으로 꺾어 세운 채로 자는 우리 아들을 보았다. 그 이후로도 곧잘 손목을 꺾고 자는 아이를 보면서, 나를 닮은 건 아닌가 신기하면서도 걱정되기도 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차분하고 과묵한 남편의 성격까지 다 닮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다섯살이 된 아이의 성격은 나를 닮기도, 남편을 닮기도 한 것 같다. 종종 흥이 넘칠 때 까부는 모습은 나를, 과묵하고 진중한 성격은 남편을 닮았다. 아이를 보면서 남편과 ‘누구를 닮아서 저럴까’라는 대화를 많이 한다. 졸려도 늦게까지 자지 않고 버티는 모습은 아빠를 닮았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면서 춤추며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은 엄마를 닮았다. 놀이터 가자고 했는데 한참을 미적대는 아이를 보며 내가 혼잣말로 ‘누구 닮아서 저렇게 꿈적거릴까?’라고 했는데 아직 말도 잘 못하는 우리 아이가 바로 ‘아빠 닮았어!’라고 큰 소리로 대답한다. 아차!


 남편의 유전자를 남기겠다는 결심으로 낳은 아이는 이제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 남편을 닮아서가 아니라, 내 아이 그 자체로 그저 경이롭고 이 세상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은 오히려 나의 2순위 사랑으로 떨어졌다. 물론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지만 아이를 낳고 부쩍 많아진 나의 잔소리를 듣는 남편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이제는 아이를 안 낳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아찔할 정도다. 얼굴은 아빠를 닮았지만 귓바퀴는 나를 닮은 우리 아들, 누가 보아도 우리 부부의 아들이다. 아이를 보면서 남편을 보고, 나를 본다. 추운 날에도 털모자를 쓰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아이를 혼내다가도 모자를 쓰기 싫어하는 내 모습이 생각나 닮은걸 어쩌랴 싶어 관둔다. 그저 남편의 유전자를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낳은 아이인데 아이가 커갈수록 이제는 욕심도 생긴다. 이제는 어떤 모습은 안 닮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닮아도 어쩌랴 싶다. 코끝 주름부터 귓바퀴까지 닮은, 아빠도 닮고 엄마도 닮은 우리 아이는 내가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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