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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eok Nov 25. 2021

나의 첫 번째 근로 계약서

대학교 2학년, 휴학을 하고 첫 번째 근로 계약서를 쓰게 되었다.

당신은 왜 대학교에 다니시나요?


꿈, 일, 직업이라는 복잡한 고민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대학교에 왜 다녀?" "언니는 학교 왜 다녀요?" 나의 질문에 단 한 명도 통쾌한 답을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유가 없는 사람이 많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려면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니까.라는 대답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답변이었다. 나만의 대답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내가 하는 일에 이유가 없다면, 목표도 없다면, 더 이상 이어나가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창하고 심각하지만, 그냥 좀 지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대학생들이 선택하듯,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1년 휴학을 계획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학교 밖에서 내가 학교에 왜 다니는지 이유를 찾아보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도 다 해보고, 나를 알아나가야지! 하는 그런 뻔한 다짐을 했다. 그때, 나에게 마을공동체에서 활동가로 함께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그다지 깊은 고민 없이 승낙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일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첫 번째 근로계약서


그렇게 우연히 스물두 살에 첫 번째 근로계약서를 쓰게 되었다. 계약기간은 3월부터 12월까지. 나의 갑은 서울시장 박원순이었다. 계약서도 쓰고, 월급도 받았지만 청년커뮤니티 공간 활동가의 일은 명확히 정해진 것이 없었다. 어떻게 일해야 할지 몰랐고, 나에게 어떻게 일하라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마을공동체 활동가로 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만나지 못한,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공동주택, 공유 주방 등 당시에는 생소했던 다양한 공유의 실천을 경험했고 정규 교육과정 대신 자신만의 길을 찾는 청소년 친구들과 자발적인 학습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꿈을 꿈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나의 '일'로 만들어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내 가슴도 두근거렸다.


중도포기의 두려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활동가 생활은 그다지 아름다운 결말을 맺지 못했다. 내부 구성원 간의 갈등이 있었고, 정의되지 않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끝내 떨치지 못한 나의 역량 부족도 원인이었다. 2달만 있으면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에 중도 포기 서류를 보냈다. 내 인생에 첫 '중도 포기'였다. 이전까지 한 번도 무언가를 내 의지로 그만두어 본 적이 없었다. 프로그램이 종료되거나, 학교를 졸업하거나, 기한이 만료되어 맞이한 '끝'만 있었을 뿐, 내 의지로 '끝'을 고하고 맺어본 적이 없었다. 무언갈 중간에 그만두어야 한다는 두려움도 컸지만 그보다 더 두려웠던 건 내가 가장 이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실망이었다. 앞으로 내가 무슨 꿈을 찾고, 무슨 목표를 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 괴로웠다.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나는 목표를 세우는 데에 주저했고 예전처럼 낭만적인 꿈을 꾸지 못했다.


빛을 잃은 나를 다시 밝혀내다


중도포기 이후 몇 달간 꿈꾸는 일이나 나의 '일'을 고민하는 건 마음속 저 너머에 던져뒀다. 대신, 끝없이 설거지를 해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철학 공부를 하는 세미나를 했다. 철학의 거대한 개념에 위로받았고, 함께 공부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삶의 의미를 찾아나갔다. 그렇게 '일'에 대해 다 잊어갈 때쯤, 정치철학에 관한 세미나를 준비하며 쪽글을 쓰다 내가 하고 싶었던 '세상에 화두를 던지는 일'을 떠올렸다. 스무 살에 시프리를 만들었던 이유에 대해, 마을공동체 활동가로 일했던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에 화두를 던지는 일, 세상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문제 삼지 않았던 일을 생각해보고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 그것은 정치이기도 했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이런 나의 '일'에 대한 꿈을 무슨 '직업'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기에 이르렀고 그 당시 내린 답은 '기자'였다. 그중에서도 IT를 기반으로 할 수 있는 '데이터 저널리스트'가 되면, 내가 던지고 싶은 화두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엔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에 갔다.


기자는 안 하고 싶게 만드는 저널리즘 스쿨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 첫째, 대한민국에서 내가 기자가 되긴 어렵겠다. 둘째, 기자가 되는 것과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셋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곧 저널리즘이다. 넥저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꿈, 일, 직업을 다 떼내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세상에 화두를 던지고 싶다는 꿈을 갖고 저널리스트가 하는 일은 하고 싶었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그래서 뭘 하고 싶은 건데?라는 대답에 명쾌한 답을 내릴 순 없었다. 그래도 답답하진 않았다.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부유했지만, 진짜 내가 가고 싶은 자리와 진짜 만나고 싶은 팀원들을 만나기 위해 주어진 매일을 열심히 살았다. 한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언젠가 보기만 해도 꽉 끌어안아주고 싶어지는 동료들을 만나게 되는 날이 올 테니까. 그 후로도 방황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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