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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eok Oct 25. 2022

외로움과 독감을 이겨내고 최종 면접까지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와 엔씨 신입 공채 최종 합격

외로운 취준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


하반기 공채 전형을 열심히 지나고 있던 10월 말, 우연히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이하 외않기) 공고를 봤다. 진아 님이 하시던 사이드 프로젝트로, 내가 참여한 3기를 끝으로 현재는 종료된 상태다. 외않기의 모집 공고를 읽으며 취업 준비와 별개로 외않기 활동을 시작하는 것 만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이 있었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그동안 해온 일을 정리하며 찾아낸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무가 나의 결과 맞아 행복하면서도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서 불안하던 마음이 있었는데, 외않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 불안함을 조금은 가라앉혀주지 않을까 싶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건축, 광고, IT 등 여러 업계에서 기획자로 일하는 여성 선배들과 만나는 것이나 다양한 경력과 나이를 가진 동료 여성들과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기획안을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넥슨에 최종 불합격한 다음 날도 외않기를 가는 날이었다. 외않기의 여러 과정 중에서도 내가 제일 기다리던 '서비스 기획자' 선배인 옥지혜 님이 오는 날이었다. 그런데 일어날 힘이 없었다. 불을 끄고 방에 누워있었는데 아빠가 나를 불렀다. '너 오늘 어디 간다며!' 눈이 번쩍 떠졌다. 그래, 그래도 다녀오자. 계속 이렇게 축 처져있을 수는 없지. 을지로 위워크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외않기 동기들에게 '저 최종 면접 본 거 떨어졌어요!' 말해버리니 마음이 나아졌다. 나보다 경험 많은 언니들에게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제일가고 싶었던 것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 삶이 망한 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알려줬다.


외않기 마지막 날 집에 가는 길에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에 당시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이 생생히 담겨있었다.

을지로 위워크에서 집으로 돌아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심리상담을 끝내고 이런저런 말들을 써 내려갔던 어느 가을날의 151번 버스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 시간이 나의 지금을 채워줄 것만 같아서. 101번 버스를 탔다.

오늘은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의 마지막 날이었다. 달꽃에서 열렸던 1기부터 그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나와 연결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3기 마지막 날에 와서야, 외않기가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되어줬는지 무얼 일깨워주었는지 회고할 수 있게 됐다.

대학교 4학년, 아니 사실 5학년 막 학기에 들어서면서 이제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극심한 무기력과 우울에 시달렸던 시간을 보내고 올여름 시원한 인도에서 휴식을 취하며 마음을 가득 채운만큼, 다 쏟아부어서 취업준비를 해야지 맘먹었다. 우연히 한 게임회사의 서비스 기획 직무를 발견했고, 이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IT엔지니어 직군의 서비스 기획이라는 직무는, 내가 가진 모든 콤플렉스를 커버하면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자소서와 포트폴리오에 매달렸다. 9월 내내 저녁도 제대로 먹지 않고, 대충 주먹밥 같은 거 주워 먹으면서 도서관 4층 붙박이로 살았다. 고생에 보답이라도 하듯, 지원한 모든 게임회사의 서류를 통과했다.

서류합격, 테스트 합격, 1차 면접 합격...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다 거품이었다. 내 실력과 내가 거품이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가 모든 걸 성공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거품. 그 거품은 한 달 새에 점차 사그라졌다. 여러 전형을 통과하며 나는 확신보단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였다. 그때부터 경미한 조울증 증세가 재발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미 나의 상태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나는 잘 몰랐다. 그냥 얼렁뚱땅 취직해서 얼렁뚱땅 돈 벌고 돈 모아서 얼렁 대출도 다 갚으면 뚱땅거리면서 잘 살게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11월 말이 되고 성공의 거품이 꺼져가는 걸 보며,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롤러코스터에 강제 탑승해버렸다. 가족들이 집에 없는 오전과 오후에는 언니가 새로 산 디지털시계를 하루 종일 쳐다보면서 누워있었다. 하염없이 울었다가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했다가, 그냥 다시 누웠다.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그런 내가 죽지 않고,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고, 더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내가 무슨 상태에 있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우리 가족들. 아빠, 엄마, 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11월 내내 나와 함께한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의 존재 덕분이었다.

외않기 마지막 날, 다 같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면서 무언가가 내 등을 톡톡 두들기는 느낌이 들었다.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그거 맞아? 네가 원하는 게 니 페이스북에 있는 글 셀프 검열하고 일단 게임회사에 취직하는 거 그거 맞아? 그게 네가 원하는 게 맞아?라고 자꾸만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돈은 많이 벌고 싶고, 남들한테 인정도 받고 싶고, 서비스 기획일도 해보고 싶고, 게임회사도 재밌어 보인다.

아직 전형이 끝나지 않은 그 회사에 합격하게 되면 감사히 입사해야지, 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도 맞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

오늘 진아 님이 해주셨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혼자서 유리천장은 깰 수 있지만, 혼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 수는 없다." 나 혼자 탈출할 수는 있지만, 어차피 탈출해봤자 여긴 지옥이다. 더 지옥에서 덜 지옥으로 탈출하는 게 나에게 큰 의미가 있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물음뿐이다. 지금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 그저 내가 잊고 있던 나의 마음을 다시금 일깨울 뿐. 그래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찾고, 알고, 알아내고, 쟁취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넘치면 넘치는 만큼 그 모든 게 다 나니까.

나를 부정하면서 살지만 말자, 자꾸만 나를 조울의 늪으로 빠뜨리지만 말자. 이런 순간이 분명 또 오겠지, 어느 순간이든 내 등을 두드리며 여기라고! 여기! 여기야!라고 말하는, 나의 세계들을, 나의 표지들을 외면하지 말자.
그냥 오늘은 그렇게 다짐하고 싶었다.


최종 면접 3일 전, 독감에 걸려버렸다.


하반기에 지원한 회사에 다 떨어지고 마지막 하나 엔씨가 남아있었다. 1차 면접을 잘 보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기대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고, 신입으로 시작할 수 있는 좀 더 규모가 작은 회사의 공고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기대 없이 보내던 중 1차 면접 합격 메일이 왔다. 이제 마지막 남은 최종 면접이었다. 마지막 기회를 어떻게든 후회 없이 보내보려고 열심히 준비했다. 학교 취업 준비 센터에서 해주는 모의 면접도 보고, 친한 오빠의 누나가 엔씨에서 서비스 기획자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질문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직자'의 이야기는 소중했다.)


최종 면접을 3일 앞둔 일요일,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심한 감기를 앓곤 했었는데 타이밍이 안 좋았다. 일요일 밤에는 열이 39도가 넘어가면서 정말 말 그대로 사경을 헤맸다. 머리가 뱅뱅 돌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음 날 오전에 학교 모의면접이 있어서 일찍 집을 나섰다. 학교 앞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B형 독감에 걸렸다고 했다. 의사는 일주일 동안 집 밖으로 안 나가는 게 좋다고 했다. '저 3일 뒤에 최종 면접 보러 가야 되는데요ㅠㅠ?' '많이 중요한 면접이에요?' '네..' '그럼 마스크 끼고 가서, 면접 볼 때만 마스크 벗어요. 약 잘 먹고, 면접 전날까지는 집에 가만히 있고!'


나의 강한 의지가 독감 바이러스도 이겼는지, 약이 잘 든 건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이틀 정도 앓고 나니 면접 당일에는 많이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덕분에 차분해져서 평소보다 흥분하지 않고 말을 잘하고 왔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준비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나누고 건물을 나왔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파랗던 겨울이었다.


최종 발표가 나기 전날에도 3030 보드에 차분히 기록을 남겼다.


결과가 어떻든, 넌 더 멋있는 사람이 될 거야.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다 내 안의 경험이 쌓이는 거니까.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한다 해도, 넌 못난 사람이 아니야. 쓰고 싶었던 글도 쓰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도 만나. 운동도 하고 눈도 밟고. 잘할 수 있어. 잘 살 수 있어.


근로 종료 기한이 없는 세 번째 근로 계약서


엔씨에 최종 합격을 했고, 근로 종료 기한이 없는 정규직 근로 계약서를 썼다. 마을 공동체 활동가, 아름다운 가게를 지나 나의 세 번째 근로 계약서였다. 신입 공채 OT에 참석해서 동기들을 만나고, 회사 건물을 둘러봤다. 사원증 촬영, 채용 검진까지 마치고 나니 진짜 새로운 회사에 입사할 준비가 끝났다. 새로운 시작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추운 겨울에 좋은 소식을 전하니 다들 제 일처럼 기뻐해 줬다. 새로운 챕터가 또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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