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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n 26. 2023

어색한 싸움


뜨개상점으로 출근을 시작하게 된 이후부터 재래시장을 자주 지난다. 집과 가게로 가는 지름길 중 하나가 재래시장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들어서면 늘 후각이 예민해진다. 갑작스레 머리가 공중으로 쭈삣 서는 모양새로 코가 반응한다. 시장의 종합냄새세트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 숨까지 거기에 포함되는 느낌, 거기서 일하는 상인들과 지나는 사람들의 숨이 한데 뭉쳐지는 느낌. 그 느낌은 내 숨이 가진 냄새를 의식하게 만든다. 그 길을 다 지나가고도 거기 나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그곳의 냄새를 통해 나를 확인한다. 나는 그곳에서 낯선 나를 느낀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행동도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시장은 좀 다르다. 자주 가지 않아도 한 번이라도 구매를 했던 가게라면 눈여겨보게 되고 반갑게 인사하게 된다. 그 부분이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서로 무관한 관계여야 무엇을 사고팔 때는 더 편리하기도 하니까. 자주 가는 분식점에 손님이 많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내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잘 되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놓인다. 같은 길을 지나다 보니 상품 진열을 잘하는 가게가 어디인지도 파악하게 된다. 싼 가격에 시들시들한 상품 말고, 적당한 가격에 싱싱한 상품을 파는 가게를 열심히 찾아보게 되는 날도 있다.


내가 지나다니는 재래시장에서 가장 많은 건 반찬가게다. 장사라는 걸 시작하면서 시장 상인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매일 자신의 가게를 열고 닫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공유상점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출퇴근이 자유롭다. 만약에 내가 혼자 다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시장 중간쯤을 지나 코너를 돌 때면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좁은 공간에 함께 앉아 있을 수 있다니! 할머니가 되면 몸이 전체적으로 작아지는 건 아닐까 싶다. 어딘가 모르게 몸이 둥글어지는 것만 같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이런 그지 같은.. “


“뭐어!”


할머니들의 소동이라고 해야 할까. 그 광경을 본 지 시간이 꽤 지난 터라 정확한 단어는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특정한 단어가 아니라 할머니들의 싸움이 무척 어색했다는 사실이다. 분명 서로에게 욕을 하고 있는데 그게 욕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욕인데 욕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고 부족했다. 정말 욕이라면 어떤 분노나 미움이 담긴 욕이어야 하는데 할머니들에게는 그럴만한 기력이나 노력이 없어 보였다. 서로에게 분명 저주를 퍼붓고 있긴 한 거 같은데 그 말들이 워낙 연약해서 저주가 잘 전달될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싸움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 싸움은 정말 볼품없이 금방 끝났다. 말리는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 등을 떠민 것처럼 두 할머니 모두 자기 가게에 들어가 버렸다. 숨어 버리면 그만인 싸움이었다. 말끝을 흐리면 끝인 싸움이었다. 금방 끝났기 때문에 뭐 때문에 싸움이 시작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사실 싸움이 나면 피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 거기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서다. 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뛰어드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보통은 그 싸움을 통해 타인의 사생활을 알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날 그랬다. 싸움이 나는 것 같아 발걸음을 늦췄다. 최대한 천천히 걸으면서 어떤 상황인지 들으려 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들의 싸움은 어떤 정보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커지지 않았다. 불을 붙이자마자 꺼져버렸으니 불이 켜진 적이 있었는지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어색한 싸움 구경은 처음이었다. 욕이 있는데 욕이 욕으로 느껴지지 않는, 저주가 있는데 저주가 상대에게 다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한, 그런 어색한 싸움 구경을 지나치며 나는 할머니들의 하루가 어떤 식으로 떠오르고 지는지 궁금해졌다. 컴컴한 가게 안 문 앞에 앉아 마늘을 까는 할머니, 문 안쪽에 있는 평상에 누워 잠을 청하는 할머니, 시장을 지나가며 두 할머니의 일상을 가끔 엿본다. 생선에 모여드는 똥파리를 파리채로 휘휘 저으며 시장 안에서 하염없이 세월을 보내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은 희다. 가게 안에 우두커니 앉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할머니의 시간은 때때로 희다.


욕의 높낮이도, 분노가 담긴 나쁜 말도, 잘 모르는 할머니들.

그 할머니들은 아무래도 많이 싸워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곳을 지나며 그곳의 냄새를 맡고 나의 숨을 내뱉는다.

할머니들이 내뱉은 숨을 마시며 나는 그 맛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그건 참 어색한 싸움이었다.

돌이켜봐도 이상하고 쓸쓸한, 그런 말들이 작은 몸에서 들썩거렸다.

희고 가만한 냄새가 시장 안을 가득 채울 때마다 나는 습관적으로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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