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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n 02. 2023

호두과자를 기억하는 법


자정이 넘은 어느 날, 아빠는 호두과자 봉지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아빠는 호두과자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호두과자가 어디서 났냐는 내 질문에 아빠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 당시 아빠는 개인택시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인천에서 강원도에 간다는 장거리 손님을 태웠다. 저녁에 장거리 손님을 태웠으니 피로감은 있었겠지만 오래간만에 돈을 좀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분명 안고 있었을 터였다. 남녀 손님 2명을 태운 택시는 강원도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그들은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자고 했단다. 손님은 휴게소에서 산 호두과자를 아빠에게 건넸고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이었다. 아빠는 그들을 기다렸고 그들은 결국 오지 않았다. 허탕을 치고 집에 돌아온 아빠의 손에 들린 건 택시비가 아닌 호두과자였다.


“그걸 들고 왔어? 화나지 않아?”


그런 사람들이 준 호두과자에 뭐가 들어있을 줄 알고! 잔뜩 약이 오른 나와는 달리 아빠는 평소보다 더 차분해 보였다.


“그럼 가져와야지. 어떻게?”


아빠는 그 말과 함께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호두과자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호두과자를 주고 도망간 그들의 친절함에 나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따뜻했던 호두과자가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개인택시를 하면서 아빠는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택시비가 없으니 집에서 돈을 가져오겠다고 말하고는 감감무소식이었던 손님을 찾아냈던 일, 목적지가 정확하지 않았던 손님을 상대해야 했던 일, 정신이 이상한 여자를 태웠던 일,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벌이는 손님이 예상외로 꽤 있었다. 아빠는 택시에 두고 내린 휴대폰을 발견하면 꼭 찾아주려고 했다. 한 번은 승객이 내린 아파트를 기억해서 방송으로 찾아준 일도 있었다. 사례금을 조금이라도 받아 하루의 일을 줄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휴대폰이 주인에게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아빠의 그런 마음을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저 경찰에 갖다 주라며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빠가 택시 안에서 겪었을 수많은 감정들을 내가 알 수 있을까. 아마 난 그 감정을 평생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아빠가 매일 술을 마시는 게 너무 싫은데 가끔은 술이라도 마셔야 살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금 아빠는 택시기사가 아니다.





남편이 호두과자 한 봉지를 건넸다. 시골에 있는 시댁 김장을 마치고 돌아오며  휴게소에서 나와 아이 생각이 나 한 봉지 샀다는 말을 덧붙이며. 오는 길에 다 식어버린 호두과자를 받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매년 김장 시즌이 되면 나는 혼란이 빠진다. 시댁 어른들은 결혼 후부터 김장을 하면 우리 친정 김치까지 챙겨 보내주신다.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마음 어딘가가 항상 불편했다. 김장 행사에 참여해야 되는 의무가 내게 생긴 것 같아서였다.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남편이 휴가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밖의 다양한 이유들로 김장을 할 때마다 빠졌다. 한두 번 참여한 김장에서도 내가 한 일은 크게 없었다. 김치를 백 포기 이상 한다는 건 그야말로 강도가 높은 노동인데 일흔이 넘은 분들이 그것을 해내고야 만다는 사실에 나는 매년 놀랐다. 시댁 어른들이 대놓고 내게 무엇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남편도 매년 돌아오는 김장에 대해 늘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렇게 김장을 많이 하면 힘드시니 시골에서 드실 것만 하시라고 우리는 늘 그렇게 이야기한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은 없다.


대체 김치가 뭐길래! 김치를 즐겨 먹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김치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좀 아쉬운 정도다. 늘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있어서 김치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김치가 없으면 아쉬울 테지만 김치가 꼭 있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 타입은 아니다. 이런 말을 하면 ‘배가 불러서 그렇지!’라는 비난도 여기저기서 들려올 것만 같다. 내가 결혼한 이후로 친정 엄마는 거의 김장을 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건 친정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작년에도 나는 시댁 김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좀 이상하게 보일 수는 있는데 남편과 내 남동생이 그 김장 행사에 참여했다. 동생도 우리 시댁김치를 알게 모르게 가져다 먹고 있었다. 친정엄마가 조금씩 나눠주었기 때문인데 사실상 우리 남매는 친정엄마의 김치보다 시댁 김치의 맛을 더 신뢰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남동생은 스스로 나서 김장에 참여했다.


김장은 어떻게든 끝났고 남편은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그런 남편의 손에 들린 호두과자가 참 여러모로 복잡하게 느껴졌다. 김장에 같이 가지 않은 내가 밉지도 않을까. 밉다고 하면 또 싸움이 되기도 할 테지만. 남편의 마음은 그저 나와 아이가 호두과자를 보고 좋아할 순간에만 닿아 있었던 걸까. 고마웠고, 미안했고, 행복했다.


호두과자를 보면 아빠의 쓸쓸한 옆모습이 떠오른다.

호두과자를 보면 남편의 다정한 마음이 느껴진다.


호두과자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데 내가 기억하는 호두과자에는 그런 모습과 마음이 담겨있다. 다음에 휴게소에 들르면 호두과자  봉지를 사야겠다.  다른 말들이 담길 수도 있지 않을까. 자그마한 종이봉지 안에 들어있는 호두과자를 하나 꺼내 한입 베어 물고 싶다. 달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가득 지며 웃음이 나겠지 싶다.  안에 담긴 어떤 모습과 마음이 저절로 떠오르겠지 싶다. 나는 호두과자를 그렇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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