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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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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Nov 03. 2023

잠결

짧은 소설



꿈을 꾸었다. 어떤 사람이 내게 물었다. 나를 모르느냐고. 옷차림새는 어렴풋 본 것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애써 기억하려 할 때마다 목구멍에 작은 솜뭉치를 삼킨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평소 얼굴을 자세히 보는 편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가까스로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 사람 얼굴이 물에 번진 글씨처럼 순식간에 이목구비를 잃었다. 그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 얼굴이 있긴 했었나. 존재하는 것을 잃는 것인지, 원래 없었던 것을 잃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형태를 잃은 존재에게 나는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 존재에게 분명히 미안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얼굴처럼 불분명한 이유로 나는 미안함을 느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 그곳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으면서도 결코 응시하지는 않으려는 태도, 그건 습관에 가까웠다. 거기 있으면서도 늘 딴 곳에 가 있는 것처럼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런 얼굴, 그건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꿈에서도 그랬다. 나는 그 사람을 보고 있었다. 보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이 정말 본 게 맞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연둣빛 옷을 입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사람의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 무엇을 아는지, 나는 대답할 수 없다. 그랬다. 나는 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보지 않고 있었다. 그 사람을 알고 있다고 착각했을 뿐 실제로는 알지 못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목적지가 없는 심부름을 떠난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나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 서있었다. 사방은 막혀 있지도 뚫려 있지도 않았다. ‘왜?’라고 물으면서 대화를 시도하려고 할 때마다 잠은 녹진하게 쏟아져 내렸다. 꿈과 현실은 희미하게 닿아 있었다. 너무 가까워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누군가 등을 손으로 밀어 올려줄 때마다 더 높이 올라가는 그네처럼 꿈은 붕 떠올랐다가 발로 바닥을 차며 현실로 돌아왔다.  


부드러운 감촉, 유연한 마음.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잠결의 언어. 나는 꿈을 꾸었다. 그런 마음을 그런 언어로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꿈을, 아무리 기억해 내려 애써도 미안한 기색 외에는 그 무엇도 다시 알아낼 수 없는 꿈을. 쏟아져 내리는 잠 속에서 나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늘 거기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것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을 뜨면 무엇을 보았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방바닥에 발바닥이 닿는 순간 꿈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잠결이어서, 그런 말을 몸 안으로 뱉으며 음악을 재생했다. 익숙하고 평범한 음악을 재생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사람처럼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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