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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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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Dec 15. 2023

크리스마스가 지나기 전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크리스마스 카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구매하고 싶어져 휴대폰으로 검색을 했는데 예상외로 크리스마스 카드가 다양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크리스마스 카드가 떠올랐다. 추억의 상자를 기억해 낸 나는 기어이 베란다 창고  위칸에 있는 편지 보관함(신발 박스) 하나 꺼내 열었다. 쾌쾌한 냄새와 함께 빼곡하게 놓인 편지들이 보였다. 크리스마스 카드만 골라서 바닥에 펼쳐 놓기 시작했다. 간간히 손에 잡히는 편지를 을 때,  시절의 나와 교실에서 나던 어떤 공기 냄새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중에는 원고지에  (아빠가 켜서 쓴 것으로 보이는) 반성문도 있었고, 첫사랑이 나를 괴물처럼 그려놓은 편지도 있었고,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가 또박또박 야무지게 써 내려간 편지도 있었다.  시절 나는 아주 많은 말들을 누군가와 주고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내성적이라고 생각했을 시절,  또한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여기던 시절(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밖에서는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활약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이렇게 편지를  보관하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건지 나도 신기할 정도다.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말이다. 그때마다 편지가 담긴 신발박스가 쓰레기통으로 가지 않고 고이 모셔져   보니 내게  편지들은 버려질  없었나 보다. 

   

소환하지 않아야  것을 소환한 나는 거실에 혼자 앉아 편지를 한참 뒤적거렸다. 올해 돌아가신 작은 엄마가 써주신 크리스마스 카드, 서툰 마음을 써 내려간 엄마의 크리스마스 카드, 장난기 가득한 친구의 크리스마스 카드,  진지한 분위기로 편지를 마무리하는 사촌의 크리스마스 카드,  시절 우리가 주고받았던 크리스마스 카드는 낭만  자체였다.  시절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문구점에 가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샀다. 멜로디 카드부터 입체카드, 평범한 카드까지. 친분에 따라  카드는 누구에게로 갈지 정해졌다. 카드를 고르면서 듣는 크리스마스 캐럴, 건 그 시절의 일상이었다. 지금은 그런 감성과는 조금 멀어진 기분이 든다. 초등학생인 아이봐도 그렇다.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사서 쓰거나 그럴 생각은 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면 얼마나 기분이 설레는데,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으면 얼마나 기분이 들뜨는데!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카드는 언제나 온몸으로 그렇게 외치고 다.


 시절 우리는 영원이라는 말을 남발하며 편지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았다. 그때는 ‘영원이라는 단어가 낭만인  알았는데 지금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저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낭만  자체라는 것을 조금   같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과거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소환했다.  언젠가 내가  마음도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까. 가끔 불쑥 나와  존재를 드러내기도 할까. 나는 내가  크리스마스 카드가 누군가에게도 이렇게 아직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아쉽게도 그들과는 대부분 멀어졌다. 지금도 연락하며 같이 추억을 떠올릴  있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름들과 얼굴들이 내게서 멀어졌다. 그들에게 나도 그렇게 멀어졌겠지 생각해 본다. 영원하기를 바라는 순간들이 인생에 얼마나 있었을까. 변하지 않고 이대로  것만 같은 순간들도 결국  지나가버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럴 것을 알면서도 어느 날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배를 붙잡고 웃다가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다가 손을 흔들며 다음을 기약한다. 낭만은 그저 흔들리는  손에 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기 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야겠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기 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야겠다. 영원이 없음에도 영원을 바라며 흔해 빠진 말들을 적어 봐야겠다. 손을 흔들며 헤어지기 전에 그런 말들을  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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