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인생
서른이 넘은 직장인이 드라마에 나와 '이 나이에 이러고 있을 줄 몰랐다'라고 한탄하는 순간, 혹시 공감하셨나요? 그 직장인은 평범한 회사에 다니고, 애인이 있거나 가족이 있습니다. 혹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회사에서 잘렸거나 사랑했던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룬 것이라고는 '영끌 해서 집 장만' 뿐인 주인공, 인생의 주인공이 나인 줄 알았는데 사는 내내 엑스트라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하게 된 주인공, 한 번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을 다해 해본 적이 없었던 주인공, 그런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등 떠밀리듯 지금까지 살아온 주인공,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봅니다.
어린 시절에는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직업도 생기고, 폼 나는 차와 내가 원하는 집도 생기는 줄 알았습니다. 앞으로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도 했습니다. 그때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찬 마음도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그럴듯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한 미래를 그려온 것이죠.
나이가 지긋이 든 노인분들이 지나가는 말로 '참 좋을 때다'라고 말해도,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교복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좋은 시절이구나 생각하는 제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화장 안 해도 이쁠 나이라고 하는 말에도 전적으로 동감할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막연하다는 말이 희망적으로 다가왔던 시절이 지나갔습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씩 겪어내면서 좌절하고, 성장하기를 반복할 뿐이죠. 인생의 매일이 축제일 수도, 모든 식사 메뉴가 달콤한 사탕일 수도 없습니다.
드라마에 나온 대사처럼 저는 아직도 이러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이러고 있는 내가 싫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럴듯한 인생이란 건 사실 드라마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드라마 주인공도 매일 싱글벙글 즐겁지 만은 않습니다. 그렇게 즐겁기만 하면 사실 주인공이 될 수 없거든요. 해피엔딩을 위해 얼마나 수많은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지, 못된 짓을 하는 이들이 어떻게 벌을 받는지, 우리는 그 희로애락을 보기 위해 기꺼이 드라마 앞에 시간을 내어 놓습니다. 현실에서는 못된 짓을 하고도 잘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착한 일을 하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어떤 것이 그럴듯한지는 남이 판단해 주지 않습니다. 소녀시대 멤버 서현이 '최후의 승자는 결국 선한 사람'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의 삶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면 꽤 그럴듯한 인생인 겁니다.
오늘 그럴듯한 인생을 보내셨나요? 이 나이에 이럴 줄 몰랐다고, 여전히 한탄하면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가 싫지 않다면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미래가 잘 실현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한 번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을 다해 해본 적이 없었던 주인공'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기 있는 글이 아니더라도, 작가가 아니더라도, 그저 마음을 다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에게는 지금이, 여전히 참 좋을 때입니다. 당신에게도 지금 이 순간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추천해 드릴 곡은 토이의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이 곡 들으시면서 아름다운 밤 보내세요. 저는 밤에 읽는 라디오, '지 작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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