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제품 및 단체 등은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실제 현실과 유사한 인물과 단체가 묘사될 수는 있으나, 이는 모두 우연으로, 창작물 특성상 창작 내용이 실제 세계와 간혹 유사한 부분을 갖는 경우에 불과합니다. 이 글은 작가의 영감으로 창조된 순수창작물이며,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 또한 가공의 인물임을 알려드립니다.
* 또한 순수창작물인 이 글에 대한 전적인 권리는 저작권자 본인에게 있으며, 소설의 게재를 중단할 지의 여부에 대한 권리 역시 전적으로 작가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람은 손으로 재고 판단하는 동물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육신이라고 나누어주는 빵이라고 말해주어도, 손이 감각하는 크기로 은총을 잰다. 그러니까 돈을 아끼지 말고, 큰 것으로 많이 사라. 형편에 맞게 한다고 하나 사서 작게 자르지 말고, 한 손 가득 들어가는 크기로 잘라 나누어주라. 은사님께서 성찬례 빵을 두고 한 말씀이었다.
성찬례 있는 날이면 항상 생각나곤 하지만, 이따금 무언가 받아쥘 때도 귓가에서 메아리치곤 한다. 사람의 호의와 은덕을 감히 내 손으로 어림하는 게 아닌 건지 돌아본다.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된 건, 순전히 은사님의 말씀 덕이다.
이렇게 그 분을 추억하며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 성찬례을 은사님 말씀대로 하진 않는다. 그렇게 큼직하게 자르면 안 그래도 바쁘게 돌아가는데, 다들 뺨 한 가득 입에 물고 우물거리느라 시간도 길어지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그리고 입가와 바닥에 엉겨붙는 빵 부스러기가 아주….
그래서 그냥 남들만큼만 한다. 집게 손가락 끝으로 집을 정도보다는 크게, 한입 가득 채울 정도보다는 작게. 혀를 살짝 덮을 정도로의 크기로. 그러면 진행도 적절하고 깔끔하다.
어쨌든 우리 교회도 성찬례를 할 때가 왔다. 분주한 날이다. 어느 집단이나 기념일엔 모두가 일하느라 바쁜 법이니까. 우리 같은 경우는 전날부터 대청소 한 번 하고, 포도즙을 따라낼 작은 잔들을 깨끗이 씻고, 접시도 광을 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빵을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성찬례용 빵을 빚는 회사가 있어 거기서 주문한다. 당연히 우리 성도님들이 일하시는 회사.
문제가 있다면, 빵이 전보다 좀 작아졌다는 점이다. 대충 손어림으로 계산해 보니, 지금 식수인원과 빵의 크기가 맞지 않았다. 지금와서 더 주문하자니 배송시간이 안 맞을 것 같고, 설령 온다고 해도 무리다. 버리면 안 되는 빵인데, 남으면 곤란하다.
똑같이 성찬례에 썼다면 빵집에서 사오건 업체에서 떼오건 결국 똑같은 빵 아닌가 싶지만, 그, '아우라'가 다르다. 아무리 같은 재료로, 같은 제법으로 만든 빵이라고 해도.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성도님들이 직접 빚은 빵과, 같은 성도인지 아닌지도 모를 보통 사람이 빚은 빵의 아우라는 다르다. 그렇기에 성도님들이 만든 빵을 두고 남으면 버리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매우 죄스럽다.
사실, 성찬례 빵이 남으면 이웃과 나누어 주님의 은혜를 함께 하라는 권장사항이 있긴 한데, 말이 그렇지. '빵 남았는데 좀 드실래요?' 하면서 돌아다니는 건 역시 아니고, 성도님들과 나누자니, 내가 식성을 뻔히 아는데.
설령 받아서 집에 갖고는 가도, 입도 안 대고 버릴 게 뻔하다. 그러니 그냥 내가 먹는 게 제일이다. 일전에 세 덩이 주문했다가 남은 적 있었는데, 그때도 처리가 곤욕스러웠다. 방법이야 남은 빵 처리법 검색하면 나온다. 딸기잼 발라먹기, 버터 녹인 팬에 구워 계란과 우유 등을 넣어 굽는 등. 막상 하려니 그건 좀 그랬다.
아니, 말이 빵이지 다 예수님의 살인데, 그걸 갖다 이렇게 저렇게 조리해서 야무지게 먹는다는 것부터가 좀.
어쨌든 넘치면 모를까, 모자란 게 분명하니 대비는 해둬야했다. 권사님께 심부름 좀 부탁했다. 예비로 좀 쓰게, 읍내 제과점에서 큰 빵 하나만 사와줬으면 좋겠다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맘모스빵 같은 건 안 됩니다. 속에 뭐 든 건 절대로 안 돼요. 식빵도 안 되고."
"걱정 말어요. 것도 모를까봐."
그냥 빵이라 하지 마시고 성찬례 빵이라 해야 알아듣는다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하긴, 나보다 성찬례 많이 보신 분이니까 설명 잘 하시겠지. 어쨌든 그 빵집 아저씨도 성찬례 빵이라 하면 아실 거다. 신앙 없어도 성경 귀절 몇 줄은 알듯이, 제빵사도 성찬례 빵이 뭔지 모르랴.
그러는 동안 어느새 저녁. 기다리는 동안 준비는 끝났고, 이제 간단한 세팅만 남았다. 기도를 쉴 새 없이 하는 작업인 만큼 목을 축일 물을 잊으면 안 된다. 한 선배 목사님께서는 시작 전에 날계란을 삼키고 하면 목이 부드러워진다며 그 방법을 추천했지만, 그 방법대로 했다가 토할 뻔한 뒤로 다시는 날계란을 먹지 않았다. 비린내가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와서.
준비 끝나고 시간이 다 돼가는데, 권사님이 통 오시질 않으셨다. 하기사, 식빵도 아니고. 그런 빵을 빵집에 항상 구비해둘 리가 없으니. 아마 반죽부터 새로 만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새로 만든다는 걸 감안해도 너무 오래 걸렸다. 모르긴 몰라도 그 빵집, 이십 년은 넘은 빵집이라 사장님도 척하면 척하고 구울 텐데?
가볼까 말까. 갈팡질팡하다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다시 나누자고 시선과 손뼘으로 빵을 재어가는 순간.
"왔어요."
권사님이 오셨다. 그런데 빵은 권사님 손엔 없고, 뒤에 있는 빵집 사장님 손에 있었다. 저렇게 큰 빵 상자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파란색 바탕에 금빛 필기체 글씨가 가운데에 박힌 것이, 디자인이 지금 기준으로 좀 낡고 세련미가 떨어져 그렇지. 선물용 포장이라는 걸 알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놀라게 한 건 빵집 주인 어른의 태도였는데, 아기 예수를 안은 성자마냥 엄숙한 품이었다. 그 모습에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뵙는 분이니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했는데, 빵집 아저씨는 "이쪽인가?" 하고 나를 쳐다도 안 보고 탁자에 조심스럽게 내려두셨다. 아, 열지 않아도 안다. 갓 구운 빵의 따뜻한 향이 이미 상자 밖으로 새어나와 주변을 덥히고 있었으니까. 정성 엄청 들여서 만든 것이다. 이미 냄새에서부터 맛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아마 맛있겠지.
상자를 열고 빵을 은빛 쟁반 위에 얹어두는데, 이거. 주변에서부터 '우와!' 하는 감탄사와 웃음이 터져나왔다. 향기. 옅은 조명 아래에서도 노릇함을 과시하는 진한 색. 두툼하고 껍질과 적절한 굴곡으로 느껴지는 중량과 볼륨감. 빵의 이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멋진 빵이었다. 지나치게 비싼 건 아닐까 하고 지갑 걱정부터 들었을 정도로.
참, 만든 분들에게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왜 우리 빵이 더 초라해보이는 건지. 그 어떤 빵도 바로 구워낸 빵을 이길 수는 없다고 말을 하려고 해도, 이건 뭐, 딱 봐도 수준이 다르다.
그건 그렇고 좀 의외였다. 이 분이 왜? 이렇게까지? 사실 이 동네 오래 사신 토박이셔서 존재는 아는데, 딱 그것뿐이라. 내가 빵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분도 우리 교회랑은 큰 인연 없는 분이시라 서로 볼 일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름도 여태 모르고 살았는데, 이렇게 뵙게 될 줄은.
주인장이 빵을 몸소 모셔왔다는 것부터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직업인의 프로의식이라기엔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을 자세히는 못하겠지만, 그, 뭐냐. 무슨 명품도 아니고, 빵 하나 샀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잖은가.
"마침 좋은 날에 오셨습니다. 오신 김에 성찬례 함께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환영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어째 얼굴이 사뭇 엄숙하고 긴장되어 보였다.
"안 그래도 그럴라고 왔어요. 끝까지 보고 갈라고."
할렐루야. 복받을 사람이 늘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일단 이 분의 빵은 예비용 빵이니 다시 덮고 연단 뒤에 두었다.
"근데 왜 거기다?"
반사적으로 '예비로 사온 거니까 일단은 뒤에 둬야죠.' 하려는데, 어쩐지 눈치가 심상찮았다. 직감적으로, 그 말은 꺼내선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오신 분이니 궁금한 것도 있어 다른 말부터 던졌다.
"그러고 보니 신앙 있으신 줄은 몰랐는데요."
그러자 빵집 사장님은 당혹스러움인지 수줍음인지, 말을 더듬었다.
"나도, 딱히 없었는데. 이게, 우리집 빵이 귀하게 쓰이는 자리라니까."
확실히 성찬례는 빵이 귀하게 쓰이는 자리이다. 그런데, 말하는 투도 그렇고 뭔가 낌새가 이상해 더 캐물었다. 그렇게 사장님이 여기까지 오시게 된 경위를 듣게 됐는데,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전말은 이랬다. 권사님이 성찬례에 쓸 빵이니 정성껏 만들어달라고 주문하셨는데, 빵을 굽는 동안 한약방에서 약 달이듯 나가지 않고 계속 지켜보시더란다. 빵 만드는 걸 기다리시면서까지 감시하는 손님은 생전 처음인 데다, 권사님 태도로 보아 보통 예사스런 일에 쓸 빵이 아니라고 생각해 직접 왔다고.
그리고 빵이 성찬례에서 어떻게 쓰이나 구경 좀 하러오셨다고 한다. 그럼 자기 작품이 썰리고 먹히는 걸 보기 위해 평생 안 오던 교회에까지 오셨단 말인데, 이거 참.
그러고 보면 셰프를 음식의 예술인이라고도 부르던데, 지금 생각하니 참 묘하다. 그렇다면 셰프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먹혀야만 완성되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저 분은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러오신 건가. 그런 마음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런 걸 그냥 예비용으로 쓰자니,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생각 좀 하고, 성찬례 계획을 조금 바꿨다.
그건, 성도님들도 다른 사람도 아닌 빵에게서 눈을 못 떼시는 사장님 때문이 아니라, 사장님의 정성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걸 그냥 예비로 쓰면, 이 분의 정성을 무시하는 것밖엔 안 되니까.
사온 빵 모두를 연단에 두고, 미리 썰어두었다. 인원을 보니 둘 다 애매하게 남을 것 같으니 남지 않도록 아예 큼직하게 썰었다. 썰어놓고 보니, 안 그래도 입안이 말라있는 어르신들 힘들어할 게 딱 보여서 포도주스도 아예 몇 병 더 사왔다.
주문한 빵과 사장님이 갖고 오신 빵을 번갈아 성도님 입에 넣어주었다. 난장판이다. 바닥엔 부스러기에, 주스와 물을 병째로 돌려가면서 서로 따라마시느라 요란스럽고 시끄러웠다. 경건함이라곤 전혀 없고, 그냥 먹고 마시고 떠드는 잔치 같았다. 그래도 다들 즐거워했으니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싶었다. 성도님들도 작년보다는 표정이 좋았고, 빵집 사장님도 뜻모를 미소를 남기셨으니, 아마 성도 아닌 분에게도 꽤 괜찮은 분위기 아니었나 싶었으니까.
다 끝나고, 어떻게든 큰 일 잘 넘긴 것 같아 안심되기도 해서 긴장이 탁 풀렸는데, 아직 사장님이 남아계셨다. 그래, 계산을 해야지. 근데 문제가 생겼다. 아까 어르신들 목 축이시라고 주스 사온 것까진 좋은데, 그거 사느라 지갑이 비었다. 어르신들만 신경쓰다 가장 중요한 걸 놓치다니. 리더로서 실격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도 그만 우물쭈물했다. 돈 문제로 곤란할 때 누구나 그러듯, '저기, 사장님. 잠시 얘기 좀.' 따위의 말로 주의를 환기하고 설명하려는데, 혀에 시동도 걸기 전에 말을 꺼낸 건 사장님이셨다.
"좋은 구경하고 갑니다. 현찰은 안 들고 왔는데, 빵값으로 치죠."
아,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 큰 은혜에 감사드리고, 다음엔 사장님 댁에서 주문하겠노라고 약속도 했다.
빵 하나를 지켜보며 기다린 권사님과, 지극정성으로 만든 제빵 명인의 온기가 교회를 덥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