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살줄 아는 녀석
모든 것은 진화한다.
기술도 진화하고, 사람도 진화하고, 벌레도 진화한다.
하지만 올빼미 나비만큼 예술적으로 진화한 것은 몇 없을 것이다.
영어로는 'Owl Butterfly', 한글로는 '부엉이 나비, 혹은 올빼미 나비'.
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뭐 겉모습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부엉이 나비는 거대한 날개에 부엉이의 눈을 빼닮은 무늬가 선명하게 찍혀있는데,
이것을 제외하고도 이 나비 종은 여러가지로 참 신기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은근히 인생 제대로 살 줄 아는 녀석'
이 거대한 나비를 한 줄로 설명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뭐 종에 따라 차이가 좀 있지만, 주로 미국 중부와 남부에 서식하는 나비부엉이는
주로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을 섭취하며 살아가는데, 무더운 날에는 이런 과일들이 물러
자연 발효가 되는 성질을 이용하여 나비들은 즙을 마시며 하루종일 음주를 즐긴다.
단체로 과일주에 취해 비틀대기도 하며, 심지어 숙취로 하루 내내 바닥에 붙어있기도 한다.
마땅히 특별한 작업을 하지도 않고, 과일주를 마시고 쉬고 마쉬고 쉬고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비부엉이의 날개에 있는 눈 모양의 둥근 패턴은 외부의 제3자에게 있어,
이 대상이 나비가 아니라 부엉이, 혹은 양서류의 하나라고 오인하게끔 하여,
나비가 더욱 편하고 안전하게 과일주를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위장색으로도 보인다.
물론 이러한 눈 패턴이 실제로 나비가 그것을 의도하여 진화해온 방향의 결과물인지는 알 수 없다.
지역의 기후때문에 우연히 나비의 날개에 눈 모양의 패턴이 생겨난 것일 수도 있고,
나비 몸에서 생성되는 어떠한 호르몬이나 단백질에 의해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눈 모양이라는 것도 사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아 동물의 눈을 닮았다라고 말하는 것이지,
나비의 눈에서는, 더 나아가 곤충의 눈에서는 전혀 다른 것을 닮아있을 수도 있다.
부엉이 나비의 날개 패턴은 우연의 산물인지, 아니면 치열한 적자생존 속 진화의 산물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부엉이 나비의 번데기를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것이다.
대담 부엉이 나비의 번데기는 놀랍도록 정확하게 뱀의 상체를 닮아있다.
인간의 눈으로 보나, 벌레의 눈으로 보나, 명백하게 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양쪽에 있는 뱀의 눈을 시작으로, 뱀 표면의 비늘 표현, 그리고 반짝이는 재질 디테일까지,
부엉이 나비의 날개에 있는 눈 패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번데기가 뱀의 모습을 가지게 되도록 만약 진화를 한 것이 맞다면, 그 이유는 명확하다.
천적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기 꺼려지도록 만들어 번데기 상태를 안전하게 넘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자리에 가만히 매달려 성체가 되길 기다리기만 해야하는 번데기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폼(form)으로는 독사 형태만한 것이 또 없다. 심지어 지나가던 사람도 피할 것 같은데.
진화를 한 것이 맞다면 그 이유는 이렇게 분명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떻게'이다.
부엉이 나비는 도대체 어떻게 뱀의 형태로 '번데기화'할 수 있도록 진화할 수 있었을까.
주요 서식 환경에 의해 개체의 크기가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아니면 신체 기관의 형태가 조금 바뀌거나 하는,
그런 제법 간단한 진화는 이해라도 되겠는데, 이렇게 디테일한 진화는 도통 그 작동 방식이 가늠이 안간다.
(물론 제법 간단한 진화라고 해도 뭐 수십, 수백만 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일이지만.)
변신의 귀재라 불리는 문어도, 흉내내고자 하는 대상을 눈으로 제대로 본 뒤에 그 특성을 분석하고,
유연한 신체를 이용하여 몸을 바꾸는 방식으로 대상을 모방하는데, 부엉이 나비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비교를 하자면, 사람이 개 짖는 소리를 따라하는 것과, 얼굴이 개가 되어 짖는 것의 차이다.
어떤 부엉이 나비의 유충 집단이 처음으로 '우연히' 뱀과 닮게 번데기화가 되었다고 하자.
첫 시도였으니만큼 위 사진의 번데기만큼 뱀 디테일이 잘 표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뱀과 닮게 번데기화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더 많은 개체가 성공적으로 성체가 되고,
그 성체들의 자식들 중 '더 뛰어나게 뱀을 모방한' 번데기가 더 많이 생존하고, 이것이 반복된다.
이 사이클이 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어 최종적으로, 지금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보면 어떨까.
이 설명이 흔히 말하는 진화의 정석이긴 하지만, 아직 찝찝한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다.
부엉이 나비의 번데기를 노리는 포식자들이 잡아먹을 번데기를 고르는 과정에서
뱀의 외형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렇다면 그들이 뱀의 외형을 정확하게 알고있긴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지금처럼 완벽하게 뱀을 모방하도록 진화하게끔 그들의 취향과 선별력이
일관적이고 탁월한지 확인해야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진화의 세월 도중 그들이 모방하고자 하는 뱀이 멸종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는 안되고, 뱀과 대등한 위협적인 개체가 추가로 등장하여 번데기 선별자들이 그것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만일 그 서식지의 모든 개체들이 인간의 생김새를 알고, 인간을 끔찍히도 두려워한다면,
이러한 트렌드(?)도 섞여 번데기들은 뱀과 더불어 인간까지도 모방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부엉이 나비의 번데기들은 마치 대규모 플래시 몹 참가자라도 된 것마냥
'뱀'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만을 설정해두고 지금까지 그것을 철저히 지켜온 듯하다.
'무한 원숭이 정리'라는 것이 있다.
'만일 무수히 많은 원숭이가 타자기 앞에 앉아 무한한 세월 동안 키보드를 마구 두들긴다면
결국은 언젠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을 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 이론은,
충분한 시간과 시도가 있다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확률의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행기를 구성하는 부품들을 모두 상자에 넣고 흔들다보면 언젠가는 비행기가 완성이 될 것'이라는 말도
이와 같은 얘기로 보이나, 비행기를 제작하는 데에는 단순 조립 이외에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기에, 사실 다르다.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 꽤나 중요한데, 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스킬을 요구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무한한 시간과 시도가 뒷받침된다 한들, 단순 반복으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한 원숭이 정리'를 앞선 부엉이 나비의 진화에 들이대본다면 어떨까.
1번 원숭이의 타이핑은 번데기 외형 결정 DNA의 1세대 적응 방향에 대응된다.
2번 원숭이의 타이핑은 번데기 외형 결정 DNA의 2세대 적응 방향에 대응된다.
n번 원숭이의 타이핑은 번데기 외형 결정 DNA의 n세대 적응 방향에 대응된다.
이런 과정이 무수히 많이 반복되며, 원숭이들은 결과적으로 뛰어난 소설을 완성해냈고,
부엉이 나비 유충은 완벽하게 뱀을 모방한 번데기 형태로 진화를 해냈다.
문득 글을 적다 든 생각인데, 역시 인생에서 운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 하더라도, 일단 한번 터지기만 하면 확률이 100% 이다.
부엉이 나비는 운이 너무 좋아서 번데기도 뱀처럼 생겨서 살아남기 유리하고,
성체인 나비도 날개에 눈이 그려져 있어서 포식자 눈치 안보고 편하게 술을 마신다.
역시 인생 제대로 살줄 아는 녀석이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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