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테슬라가 있다면 스위스에는 사르코가 있다
누군가 스위스를 얘기한다면, 나는 두 가지를 떠올릴 것이다.
첫번째는 눈으로 사방이 뒤덮인 환상적인 풍경일 것이고,
두번째는 안락사가 허용되는 나라. 뭐 이 정도일 것이다.
사실 스위스가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멀기도 하고, 일반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나라도 아니라
상징적인 것 몇개 제외하고는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만 잘 모르는 거일 수도 있지만.
최근 스위스에서 다소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자살 조력 캡슐 '사르코'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뭔가 잘못 사용되었다고 한다.
자살 조력은 뭐고, 사르코는 또 뭐고, 어떻게 잘못 사용되었다는 것일까.
일단, 정확히 말하자면 스위스에서는 '안락사'라는 표현보다는 '자살 조력'이 허용되는 나라이다.
아무나 신청하면 죽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꽤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여 '죽을 자격'을 얻어야 한다.
또한 자살 조력의 기준도 꽤나 까다로운데, 자살 조력자는 순전히 자살 희망자의 자살 의지만을
위해 자살을 도와야하지, 개인의 이익이나 목표를 위해 자살을 도우면 안된다.
스위스에서는 더 쾌적한(?) 자살 조력을 위한 시도가 예전부터 계속되어왔는데,
그 영역의 최전선에는 '사르코(Sarco)'라는 장치가 늘 자리해왔다.
'사르코'는 사람이 한 명 들어갈 정도의 크기를 가진 자살 조력 캡슐 장치이다.
사르코의 탑승자, 다시말해, 자살 희망자가 캡슐에 들어가 자살에 동의한다는 최종 응답을 건내면,
캡슐 내의 질소 포화도를 급격히 올려 사용자는 정신을 잃고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된다.
도중에 내릴 수는 없다고 하니, 일단 질소가 퍼지기 시작하면 끝인 셈이다.
'사르코'가 자살 조력 장치로 스위스 내에서 허가가 난 것은 아니다.
2022년부터 '사르코'가 실사용될 것이라는 소식은 여기저기서 들렸지만,
질소를 통해 사망에 이르게 만드는 방식의 안정성이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자살 조력을 하나의 서비스로 포장하여 '자살 조력'의 본래 의미가 퇴색된다는 점을 들어,
'사르코'는 2024년 말 지금까지 사용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에나 있는 법.
의사를 통해 자살 조력 약물을 처방 받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기존의 방식은,
장례 비용 포함 대략적으로 천만 원 중반대의 총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사르코'를 통한 죽음은 질소 캡슐 하나 가격인 2만 8천 원 정도만 지불하면 된다.
그렇기에 자살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사르코'의 허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수백 명의 사용 희망자들이 이 죽음 캡슐의 대기줄에 웨이팅을 걸어놓고 있다고 하는데,
뭐 흔히 먼저 가는 데에 순서가 없다고 하지만, 이 경우에는 순서가 있는 셈이다.
여기까지가 어떻게 보면 이번 사건의 이해를 위한 배경 설명이고, 실제 벌어진 일은 이렇다.
얼마 전, '사르코'의 첫번째 실사용이 일어났다. 물론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마음이 급한 한 여성이 어떠한 경로로 '사르코'에 탑승한 뒤 사망에 이른 사건이다.
원래 캡슐의 목적이 자살 조력이기에 사용자가 사망에 이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 싶겠지만,
'사르코'의 1호 탑승자의 목에는 특이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사람 손에 의한 목 졸림 자국.
캡슐에 일단 들어가면, 도중에 외부인이 직접 접촉을 할 수 없을테고,
살인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캡슐을 통한 자살 조력을 하는 것이 더 편했을텐데,
도대체 왜 누군가는 자살 희망자를 굳이 번거롭게 직접 졸라 살해한 것일까.
일단 허가가 나지 않은 기기를 멋대로 사용하게 두었고, 더더욱 사람이 사망했으니,
'사르코'의 주요 멤버들은 현재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사르코'는 별다른 기능이 없는 깡통 캡슐이고,
실제로 자살 조력을 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섬뜩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리뷰가 있을 수 없는 서비스니 참 무섭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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