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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Jun 19. 2021

내 작은 기억의 생태계

생각해보면, 나는 소중한 시간을 다시는 경험할  없다는 사실에 슬퍼한 적이 많았던  같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이란 개념은 아이에 없는 것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했다. 과거 또는 미래만을 살아가는 우리는, 행복했던 시간을 다시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 기억만을 가지고 잡히지 않는 순간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 믿었다. 하지만 ‘순간이란 것은, 오히려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우리 집을 들어오면, 그랜드 피아노가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피아노는 내가 대학교 1학년시절, 조금씩 돈을 모아 겨우겨우 마련한 것이다. 피아노를 보러갈 때, 한 번은 입시를 같이한 친구인 보경이가, 또 한 번은 과 동기인 정아가 같이 가 주었다. 정아와는 피아노들을 구경하고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스테이크를 먹었고, 보경이와는 낙원상가에 갔다가 허물어져가는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마음에 드는 피아노를 고르지 못했던 나는 나의 선생님께 문자를 드렸고, 선생님께서는 피아노 판매업자 한 분을 소개해주셨다. 그 분 차를 타고 고양 근처의 중고피아노 매장에 갔는데, 나의 음색과 가장 잘 맞는 피아노를 그 곳에서 드디어 찾았고,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나는 내 피아노 이름도 ‘삐삐’라 지어 주었다. 사람들을 모아서 ‘지원 홀 개관 기념 음악회’랍시고 거실에 의자를 쭉 깔고, 피아노 위에 조명을 달아 정식 연주회를 한번 한 적도 있었다. 모든 것이 이제는 다시 겪을 수 없는 행복했던 과거이지만, 그 추억과 기억들이 ‘피아노’라는 물체 안에 온전히 녹아있다. 이 검정색 피아노를 보면 보경이, 정아, 그리고 지원 홀 음악회의 연주자들이 생각이 난다. 그때의 기억이 마치 오늘 일처럼 생생하다.


책꽂이의 두 번째 칸에는, 입시 작곡할 때 썼던 노트들이 빼곡이 꽂혀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말부터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입시선생님께서 서울에 살고 계셨기 때문이다. 같은 클래스 친구들은 레슨이 끝나면 우리 집에서 배달음식을 먹고 가곤 했다. 숙제가 많은 날이면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24시간 카페를 찾아 밤을 새고 레슨을 가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것 같다. 혼자 밤을 새는 건 힘들지만, 함께 곡을 썼기에 동이 트는지도 모른 채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명이 선생님께 혼나서 울고 있으면, 다른 세 명이 맛있는 거 먹으러가자며 잡아 끌었다. 그리고는 또 밤을 새며 곡을 썼다. 그때는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 시절이 지난 후 돌이켜보니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추억이었다. 입시 때 썼던 오선 노트들을 보면 그 시절 우리가 나눴던 대화, 우리가 했던 생각, 그리고 우리가 꾸었던 꿈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우리 집 냉장고를 보면 이사하던 날 아빠랑 같이 낑낑대며 냉장고를 옮겼던 게 생각나고, 집 한 구석에 놓여있는 청소기를 보면 할머니가 청소 안하고 산다며 핀잔을 주다가도 손녀딸 집의 방바닥을 쓸고 닦으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집 전신거울은 우리 아빠가 나 지휘연습 편하게 하라며 사준 거고, 모니터는 선생님께서 나 공부 편하게 하라며 사주신 거다. 전자키보드는 엄마가, 그리고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아는 음악감독님께서 주셨다. 어떻게 집에 있는 물건 중에 단 하나도 추억이 깃들지 않은 게 없을 수가 있는지. 또 어떻게 그 물건들 중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련 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는지. 이걸 깨달은 순간, 나는 ‘내 방’이라는 이 조그마한 공간이 하나의 생태계처럼 느껴졌다.


‘내 방’이라는 곳은, ‘내 기억의 생태계’였다. 기억은 살아있을 수 있다. 추억은 우리 곁에 늘 존재한다. 그것도 만질 수 있는 ‘물건’이라는 형태로써 말이다. 갑자기 선생님이 사준 모니터로, 그리고 아빠가 사준 스피커로 악보를 보며 음악을 듣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오랜만에 모니터 전원을 키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들었다.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방 안의 물체들을 둘러보았다. 책장의 악보들을 보니 열 아홉의 내가 스물 둘의 나와 함께 이 음악을 듣고 있는 것만 같았고, 피아노를 보니 스무 살의 나, 그러니까 피아노를 사러 가던 설렘 가득한 그 순간의 내가 지금의 나와 함께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방 안에 존재하는 나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와 함께, 이 순간 이 음악을 같이 듣고 있는 거라면, 음악이야말로 개별로 존재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유기체로 엮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은 세계는,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것들이 손에 잡을 수 있는 물체와 하나가 되고, 또 그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음악’이라는 추상적인 것들에 의해 하나의 생태계가 되는 것. 추상이 객체가 되고 객체를 추상이 엮는 것. 파동이 입자가 되고 입자가 또 다시 파동이 되는 이 우주의 원리가, 내가 살아가는 이 조그마한 세계에, 어쩌면 당연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깨달은 순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닌 감동에 젖어 흘리는 눈물이었다. 내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모든 것들에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것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음악’ 이었다는 것이, 어쩌면 이 세상은,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이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싶었다. 소중하다. 너무 소중하다. 내 작은 공간이, 그것에 깃들어있는 추억들이, 그리고 이 모든 걸 깨달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난생 처음으로 삶이란 게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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